2025.11.24.
3년 9개월 우크라 항전, 최대 위기

22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오른쪽)와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가 키예프 국립박물관 홀로도모르 대학살 기념관 내 '어린 시절의 쓰라린 기억'이라는 제목의 어린이 동상에 헌화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 우크라이나에 ‘추수감사절(27일)까지 평화 협정을 수용하라’고 압박하고 나서면서, 3년 9개월 이상 러시아 침공에 맞서 싸워온 우크라이나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미국은 지난 20일 동부 돈바스 전역과 크림반도 등 현재 점령지 대부분을 러시아에 넘기고,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포기하는 내용을 담은 28개조 평화 구상안을 우크라이나에 공식 전달했다.
우크라이나에선 “강대국 간 타협으로 약소국이 희생되는 ’역사의 악순환‘이 되풀이됐다”는 탄식이 나온다. 핵 포기 대가로 안전 보장을 약속받고도 러시아 침략으로 휴지 조각이 된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의 재판(再版)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픽=김성규
’무력 획득 영토’ 사실상 추인
평화안의 핵심은 영토 조정에 대한 21조다. 2014년 강제 점령된 크림반도는 물론 도네츠크·루한스크주 등 돈바스 지역을 ‘사실상(de facto)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고, 우크라이나가 통제 중인 도네츠크 요새 지역도 러시아에 통제권을 넘기고 ‘비무장 중립 지대’로 두는 내용이다. 헤르손주·자포리자주는 현재 전선을 기준으로 교전을 멈추고 분할선을 그리며, 양측이 서로 소유를 주장하는 자포리자 원전은 공동 운영토록 했다. 결국 러시아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엔에서 정립된 ‘무력에 의한 영토 획득 금지’ 원칙을 깨고 차지한 영토를 미국 및 국제사회가 추인하는 셈이다.
반면 우크라이나의 안보·군사 정책엔 영구적 족쇄가 채워졌다. 6조는 정규군 병력을 최대 60만으로 제한해, 전쟁 이후 125만명까지 늘어난 병력을 절반 가까이 줄이도록 했다. 7조는 우크라이나가 헌법에 ‘나토에 가입하지 않는다’를, 나토 규약엔 ‘우크라이나는 가입할 수 없다’고 각각 명시토록 했다. 8조는 “나토 회원국은 우크라이나 영토에 병력을 주둔시키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영국·프랑스가 ‘의지의 연합’을 통해 추진해 온 안전보장군 계획을 봉쇄한 것이다.
트럼프 평화안은 대신 “우크라이나에 나토식 안전 보장을 하겠다”(5조 및 10조)고 밝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 ‘결정적 공동 군사 대응’과 ‘대(對)러 제재 복원’을 약속하는 대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면 안전 보장이 박탈된다. 미국은 트럼프가 의장인 ‘평화 위원회’를 설치해(27조) 이를 관리하고, 안전 보장의 대가로 일정한 ‘보상’을 받는다.
평화안은 러시아의 주변국 불가침 약속(3조),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11조), 재건 투자(12조)와 러시아 동결 자산 활용(14조) 등 우크라이나의 요구도 일부 담았다. 그러나 동시에 나토 추가 확대 금지(3조), 러시아 제재 해제 및 세계 경제 재편입(13조),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문화·언어 차별 시정(20조), 100일 내 우크라이나 조기 대선(25조) 등 러시아의 기존 요구 사항을 대부분 관철했다. 약소국에 대한 전형적 ‘불평등 조약’이라는 지적이다.
’나토식 안전 보장’ 신뢰할 수 있나
우크라이나와 유럽에선 이번 안이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의 재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당시 세계 3위 규모인 1700여 기의 핵무기를 모두 해체해 러시아에 넘기는 대신, 미국·러시아·영국에서 “우크라이나의 독립·주권·국경을 존중하고, 무력이나 위협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서면 약속을 받았다.
이 약속은 그러나 당사자인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무력 병합하고,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면서 무력화됐다. 이번에도 ‘나토식 안전 보장’을 한다지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차단된 상태에서 나토식 집단 방위가 작동할지는 미지수다. 국내 안보전문가는 “우크라이나가 공격받을 경우 이를 전체 나토 동맹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모든 회원국이 군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게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미 진보센터(CAP)는 “피해자를 처벌하고 가해자를 보호하는 합의”라며 “더 치명적인, 다음 전쟁을 부르는 처방전”이라고 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ploma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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