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2.
클리셰 살리되 작법 비튼
K드라마 국내외서 인기

SBS 수목 드라마 ‘키스는 괜히 해서' /SBS
영화·드라마에서 흔한 ‘키스’ 장면이 장르 관습을 파괴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키스나 ‘남녀 영혼 바꿔치기’ 같은 익숙한 소재를 새롭게 변주한 드라마들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지난 12일 첫 방송을 시작한 장기용·안은진 주연 SBS 수목 드라마 ‘키스는 괜히 해서!’는 전형적인 ‘재벌남-캔디녀’ 드라마. 재력·외모·능력 다 갖췄지만 사랑을 믿지 않는 재벌남 공지혁(장기용)과, 가진 건 없지만 세상에 굴하지 않는 캔디형 여주인공 고다림(안은진)이 우연히 만났다가 헤어진다. 이후 집안 문제로 사채 빚을 떠안고 유아용품 업체에 유부녀 사원으로 위장 취업(?)까지 했는데, 하필 그 회사가 남주인공 회사여서 사랑을 이룬다는 신데렐라 스토리.
지상파 방송사가 6년 만에 도전한 수목극이지만, 캐릭터만 봐선 요즘 드라마인지 30년 전 로맨틱 코미디(로코)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왔다. 전형적인 클리셰 드라마라는 것. 그런데 중반으로 치달으면서 시청자들이 몰리고 있다. 해외 반응이 더 뜨겁다. 글로벌 OTT 순위 집계 서비스 플릭스 패트롤에선 방영 셋째 주인 지난달 30일 글로벌 3위에 진입했다. 국내서도 첫 회 4.5% 시청률(닐슨 전국 기준)로 일단 눈도장을 찍고, 지난 27일 순간 최고 시청률 8.1%까지 치솟으며 동시간대(목요일 방송 기준) 시청률 1위를 기록 중이다.
흔히 말하는 ‘클리셰 범벅’인데, 미국 대중문화 전문 매체 스크린 랜트는 “올해 최고의 K드라마”라고 평했다. 인기 비결로 “K드라마의 로맨스물 작법을 완전히 뒤틀었다”고 했다. 스크린 랜트는 “보통의 K로코물은 서사를 만들어가는 이른바 ‘빌드업’ 과정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중반 이전까지는 키스를 하지 않는데, 이 드라마는 첫 회부터 주인공들의 의도치 않은 키스 장면을 내보내며 장르적 관습에 맞섰다”고 했다. 미국 연예 전문 매체 콜라이드는 “K드라마가 보수성을 벗었다”면서 “로맨스물의 천편일률적 전개에서 벗어난 점과 함께 여주인공을 짝사랑하는 ‘서브 남주’, 빌런인 ‘서브 여주’ 같은 상투적인 설정에서 벗어나, 각자가 사랑을 맺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주는 것도 흥미롭다”고 했다.
가족이 진 빚 때문에 잡혀간 여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사채업자들에게 블랙 카드를 내밀며 “내가 사지. 얼마면 돼. 카드 되나?” 하는 장면의 경우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원빈의 “얼마면 돼”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구하는 클리셰는 시청자를 편하게 해주는 요소. 스크린 랜트는 “영문 제목 ‘다이너마이트 키스’처럼 폭발력 있는 키스가 의외성을 주지만, 여주인공이 보여주는 가족애처럼 K드라마의 미덕도 갖췄다”고 했다.
MBC 금토 드라마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이하 ‘이강달’)엔 ‘영혼·바디 체인지’란 클리셰가 등장한다. 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소재를 사용한다. 자리를 위협받는 세자 이강(강태오)과 기억을 잃은 부보상 박달(김세정)이 홍연(인연을 말하는 붉은 실)으로 연결돼 있다는 설정. 두 사람의 영혼이 뒤바뀌는데, 서로 핍박받으며 고통에 쌓여 피를 볼 때마다 서로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몸과 영혼이 바뀌는 설정으로 비틀어놨다. 보통 영혼 체인지 극은 예상치 못한 신체적 접촉(‘내 안의 그놈’ 등)이나 입맞춤(‘브랜딩 인 성수동’ 등) 등을 통해 몸이 바뀌었던 것과 달리 ‘이강달’에선 이를 비틀어 필요할 때마다 서로를 구원하는 수단으로 바꾼 것이다. 이 드라마 역시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가 높다. 동남아 최대 OTT인 Viu에서는 전체 1위, 미국 OTT 비키에선 2위를 달리고 있다. 한국 드라마를 지켜보는 해외 시청자들의 눈이 더 깐깐해진 데 따른 변화라는 지적이 나온다.
☞클리셰(cliché)
본래 인쇄 연판(鉛版)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을 가리킨다. 부정적 의미로만 쓰이다가 최근에는 ‘아는 맛’이라는 뜻을 담아, 익숙한 클리셰가 있어야 보기 편하다는 뜻으로도 확대됐다.
최보윤 기자 spic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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