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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1500원 눈앞...기업 수천억 손실, '제2의 키코' 악몽 덮치나

dalmasian 2025. 12. 3. 19:46

2025.12.03.

2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환전소 앞 전광판에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photo 뉴스1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 근접하면서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제2의 키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환율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자동으로 손실이 발생하는 'FX 트리거' 계약이 발동하면 기업들이 수천억 원대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간조선이 3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외국계 은행 2곳과 맺은 FX 트리거 계약은 총 28건, 규모는 657억7088만원(448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FX 트리거는 환율이 특정 기준선을 넘는 순간 자동으로 작동하는 일종의 파생 상품이다. 평소에는 문제가 없지만 기준선(녹인·Knock-in)에 도달하는 순간, 기업은 시장 환율보다 더 낮은 값으로 달러를 은행에 팔아야 하는 조건이 강제로 실행된다. 즉, 환율이 오르면 손실이 커지는 구조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기업들의 트리거 기준선 대부분은 달러당 1490원 전후에 설정돼 있다.

예를 들어 한 자동차 기업이 B은행과 체결한 계약을 보면, 환율이 1490원을 넘으면 약 440억3100만원(3000만달러) 규모의 계약이 발동되고, 1500원을 넘으면 146억7700만원(1000만달러) 규모의 계약이 추가로 작동한다. 환율이 오르면 보통 수출 기업은 유리하지만, 트리거 계약이 발동되면 오히려 손실을 떠안게 되는 역전 현상이 발생하는 셈이다.

특히 FX 트리거가 위험하다는 지적은 2008년 한국 경제를 강타했던 '키코(KIKO)' 사태와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환율이 급등하자 수백여 개 중소기업이 큰 손실을 입었고, 그중 상당수가 도산하거나 법정관리로 내몰렸다. 당시 대법원은 계약 대부분에 대해 '적법한 금융상품'이라고 판단했지만, 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기업 측 위험이 과도하게 컸다는 비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 파악된 FX 트리거 계약 규모는 외국계 은행 2곳만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실제 전체 시장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전망되며, 업계에서는 "전체 계약을 합치면 최소 수억 달러 수준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환율이 1490원 선을 넘어설 경우, 충격 흡수 능력이 약한 중소기업부터 대규모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서하나 기자 hana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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