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7.
지지율 낮은 게 '중국인 여론조사원' 때문?

지난 1월 29일 서울 종로구 한국갤럽 신관 전화조사실에서 여론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그 정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조작하겠습니까?" 지난 1월 29일 한국갤럽 신관에서 만난 장윤진 한국갤럽 여론분석실 팀장은 정치 여론조사를 둘러싼 오해를 두고 이같이 말했다. '한국 여론조사 대부' 박무익 회장이 1974년 설립한 한국갤럽은 업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민간 여론조사기관이다. 장 팀장은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면 '잘된 조사'라고 하고, 불리하면 '잘못된 조사'라고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격주 1회로 시행되는 전국지표조사(NBS) 참여기관인 케이스탯리서치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지난 2월 11일 서울 서초구 본사에서 만난 하동균 케이스탯리서치 전무는 "정치 여론조사는 회사 전체 매출의 10%도 되지 않는다"며 "이 조사로 먹고사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국내 대표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과 케이스탯리서치가 이 같은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정치권 일각의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태도가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해 12월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지지율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갤럽 조사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며 "우리 당 지지율이 더 높게 나오는 여론조사도 있다"고 조사 수치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야권의 당권파 인사들은 비공식 석상에서 '여론조사 업체 조사원들이 중국인'이란 말을 노골적으로 할 정도다. 여론조사가 민심의 나침반이 아닌, 입맛에 맞는 수치만 골라 쓰는 '데이터 쇼핑'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심지어 강성 팬덤을 보유한 '장외 스피커'까지 여론조사 시장에 뛰어들며 중립성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2022년 제20대 대선에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이 패배한 직후 방송인 김어준씨가 설립한 여론조사기관 '여론조사꽃'은 선거 때마다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에 주간조선은 각종 음모론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정치 여론조사' 현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지난 1~2월 한국갤럽과 케이스탯리서치 전화조사실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 2월 11일 서울 서초구 케이스탯리서치 전화조사실에서 여론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수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자, 응답자가 '내 번호 어떻게 알았어요?'라고 물으면, '선관위로부터 가상번호를 제공받아 연락드렸다'라고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지난 1월 29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한국갤럽 신관 전화조사실. 소형 헤드셋을 착용한 조사원들이 대형 독서실을 연상케 하는 100석 규모의 공간을 빼곡히 메운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날 진행되는 조사는 모 언론사 의뢰로 실시되는 '정치 현안 여론조사'. 조사 시작에 앞서 장윤진 팀장은 종이 뭉치를 한 장씩 넘기며 유의사항을 전달했다. 이윽고 교육이 끝나자 수화기가 '딸깍' 들리는 소리와 함께 수십 명의 목소리가 조사실 내부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잠시 시간 괜찮으실까요…." "여기는 한국갤럽입니다, 조금만…." "선생님, 잠깐이면 되는데…."
조사는 녹록지 않았다. 인사는 툭툭 끊기기 일쑤였고 아예 전화조차 받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나 무심히 종료되는 통화에도 조사원들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연결이 종료되면 화면에 곧바로 다른 가상번호가 떴고, 조사원들은 다음 응답자를 기다리며 잠시 숨을 고를 뿐이었다. 현장을 지켜보던 장 팀장은 "과거 20%에 육박하던 응답률이 10~15% 수준으로 떨어져 전화를 바삐 돌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사에서 흔히 접하는 '국정 운영 지지도'나 '정당 지지도' 등을 묻는 정치 여론조사는 이 같은 절차를 거쳐 완성된다. 언론사가 특정 현안을 주제로 조사를 의뢰하면, 담당 부서가 취지에 맞춰 문항을 설계하고 배열한다. 이후 의뢰사와 여러 차례 의견을 주고받으며 표현과 구성을 다듬는다. 한국갤럽의 경우 전체 문항은 10개 안팎을 권장하고, 난이도는 중학생도 무리 없이 이해하고 응답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한다.
행정 절차도 뒤따른다. 조사 실시 10일 전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가상번호를 신청하고, 소규모 언론사의 경우 이틀 전까지는 질문지와 조사 내용을 신고해야 한다. 이후 조사 당일 자정이 되면 응답자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가상번호가 일괄 제공된다. 장 팀장은 "전국 단위로 1000명을 조사하려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많다"며 "표본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3만개 안팎의 가상번호를 여유 있게 신청한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전화 수신 화면에 '여론조사' 여부를 표시해 주는 경우가 늘면서 통화 연결 성공률도 낮아지는 추세다. 여기에 과거보다 크게 늘어난 여론조사 업체 수도 시민들의 피로감을 더하고 있다. 실제로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여론조사업체는 2017년 27곳에서 출발해 2021년과 2022년 대선·지방선거 국면을 거치며 누적 91곳까지 급증했다. 2024년 등록 요건이 강화되면서 57곳으로 잠시 줄어들었지만, 현재도 약 60개 업체가 활동 중이다. 과거에 비해 여전히 많은 규모다.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조사 전화에 대중의 거부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럼에도 최종 수치가 완성될 수 있는 데에는 오랜 기간 경력을 쌓아온 조사원들의 숙련도가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 이날 현장에서도 한국갤럽 조사원들은 "금방 끝난다" "하나만 골라주시면 된다" "모르면 모른다고 답해도 된다"고 설명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한 명 한 명의 응답이 소중한 만큼, 5~6분에 불과한 통화 속에서도 설문을 끝까지 마치도록 이끄는 것이 이들의 몫이다. 이 같은 업무 특성상 조사원 성비는 약 90% 이상이 중년 여성으로 구성돼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일상에서 접하는 안내 음성이나 상담 음성은 대체로 여성인 경우가 많다"며 "전반적으로 남성 목소리보다 여성 목소리에 거부감을 덜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 11일 서울 서초구 케이스탯리서치 전화조사실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엿볼 수 있었다. 서울·경기·부산·대전충남 등 권역별로 나뉜 4개 부스의 120석이 전부 들어찬 가운데, 이날 출근한 남성 조사원은 7명에 불과했다. 김은진 케이스탯리서치 자료조사본부 이사는 "조사원 다수가 50대 중반 이상의 여성인 이유는 자녀를 모두 키운 뒤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생겨 소일거리를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목소리를 주로 사용하는 직무인 만큼, 이들 역시 대면 면접을 거쳐 선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갤럽 전화조사실 칸막이에 붙은 십이지(十二支) 띠별 생년월일 대조표.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믿고 싶을 때만 믿는 여론조사?
그러나 여론조사에 참여하는 조사원의 국적을 둘러싸고도 음모론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지난 2월 11일 서울 서초구 본사에서 만난 전화면접 경력 15년의 케이스탯리서치 조사원 김모(63)씨는 이른바 '중국인 음모론'에 대해 "현장에서 직접 여론조사를 해본 우리로선 절대 믿지 않는다"며 "지금도 일부 고령층 사이에서는 '여론조사가 전부 조작된 것 아니냐'고 말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조사업계에 따르면 일부 응답자들은 전화를 받자마자 "중국인이냐"고 쏘아붙이거나, 조사원의 국적을 취조하듯 확인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 같은 불신은 온라인 플랫폼을 타고 더욱 증폭된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서는 통화 녹음의 일부만 발췌하거나 맥락을 삭제해 편집한 뒤, 특정 정당에 유리하도록 질문을 설계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덧붙인 영상이 도처에 확산하고 있다.
한국갤럽과 케이스탯리서치는 '중국인 음모론'에 단호하게 반박했다. 장윤진 한국갤럽 여론분석실 팀장은 "조사원들이 악의적으로 편집된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조사원은 회사의 소중한 자산이며, 정확한 조사를 위해 내국인 채용과 표준어 구사 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동균 케이스탯리서치 전무 역시 "조작이나 외국인 투입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갤럽을 비롯한 주요 전화조사 기관들은 내국인만 조사원으로 채용하며, 발음의 정확성과 전달력을 고려해 표준어 구사가 가능한 인력만을 선발한다. 응답자의 이해도를 높이고 조사 편향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특히 여론조사 업체들은 '조작'을 감행할 만큼 정치 여론조사가 경제적 실익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 2월 11일 케이스탯리서치가 주간조선에 공개한 수주 내역에 따르면, 전체 매출에서 정치·선거 여론조사 수주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선거철에는 약 10%, 평소에는 약 7~8% 수준에 그쳤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매출은 일반 기업을 대상으로 한 브랜드 인지도 및 고객 만족도 조사 수주액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한국갤럽도 전체 수주액 중 정치 관련 조사는 10% 내외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하 전무는 "회사 매출의 극히 일부인 정치 조사를 위해 기업의 명운과 브랜드 가치를 걸고 리스크를 감수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정치권의 '이중잣대' 역시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갉아먹는 주요 원인이다. 몇 차례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출마했던 한 정치인은 2021년 7월에는 "한국갤럽의 편파 조사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날을 세웠다. 2017년 대선 당시 자신의 지지율이 실제 결과보다 8%포인트 낮게 발표됐던 점이 근거였다. 그러나 불과 석 달 뒤, 이 정치인은 페이스북에 "오늘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 나는 민주당 후보와 초박빙이지만, 우리당 다른 후보는 10.1%포인트 차로 뒤진다"는 글을 올리며 해당 조사 결과를 자신의 경쟁력을 입증하는 홍보 도구로 적극 활용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특정 정당의 지지율이 하락세에 접어들면 국면 전환을 위해 여론조사 음모론을 더욱 극렬하게 확산시키는 경향이 있다"며 "지지율 정체기에 빠진 정치권이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심정으로 무분별한 의혹 제기를 던지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이같이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공방 속에 여론조사 업체는 '신뢰도 방어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실제로 한국갤럽은 2012년부터 특정 언론사 의뢰를 받지 않는 정례 조사 '데일리 오피니언'을 운영하면서 자체 중립성을 높여왔다. 한국갤럽 관계자는 "지난해 실시된 21대 대선 사전 여론조사에서도 직전 대선의 성·연령대 투표율을 가중 적용하고 판별 분석을 통해 유보층을 배분한 결과, 예상 득표율은 이재명 49.3%, 김문수 41.4%, 이준석 8.3%로 나왔다"며 "실제 개표 결과는 이재명 49.4%, 김문수 41.2%, 이준석 8.3%로, 예측치와 거의 일치했다"고 말했다. 다만 사전투표와 본투표 간의 경계가 옅어지면서 2024년 대선부터 막바지 연구 조사는 진행하되, 출구조사 시점의 예측치 발표는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케이스탯리서치 역시 2020년 7월부터 엠브레인퍼블릭,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와 함께 외부 기관의 의뢰를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전국지표조사(NBS)를 실행하고 있다. 하동균 케이스탯리서치 전무는 "전화면접 조사원을 육성하고, 통계 분석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사용하면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특정 정치적 색채를 띤 신생 기관들의 결과는 실제 민심과 동떨어진 경우가 적지 않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는 김어준씨의 '여론조사꽃'에 대해 김철현 정치평론가는 "지방선거나 총선에서 적중 사례를 강조하지만, 빗나간 경우도 적지 않았다"며 "질문지 구성 과정에서 특정 응답을 유도할 여지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회원제로 운영되는 이 기관은 개표 결과와 큰 격차를 보이며 중립성 논란을 낳은 바 있다. 지난해 10월 부산 금정구청장 재보궐선거 사전투표 첫날 조사에서는 김경지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3.2%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최종 개표 결과는 윤일현 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약 20%포인트 차로 압승했다.
지난 22대 총선 격전지였던 부산 해운대구갑에서도 사전 조사에선 홍순헌 당시 민주당 후보가 9.1%포인트 우세한 것으로 집계됐으나, 실제로는 주진우 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같은 격차로 승리했다. 김 평론가는 "특히 접전 지역에서는 유권자들의 선택에 여론조사 결과가 생각보다 영향을 많이 끼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나이 낮춰 참여하는 응답자들
다만 여론조사 신뢰도를 둘러싼 논쟁이 모두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만 치부되는 것은 아니다. 학계에서도 조사 방식에 따른 신뢰도 차이를 두고 오랜 기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전화면접과 ARS(자동응답) 조사의 특성 차이는 선거철마다 도마 위에 오르는 '단골 주제'다. 한 전화면접 여론조사 업체 관계자는 "선거철이 되면 ARS 방식의 여론조사가 '떳다방'처럼 생겼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며 "일부 사례가 전체 여론조사의 신뢰도까지 훼손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갤럽, 케이스탯리서치 등이 속한 한국조사협회(KORA)는 응답 품질 저하를 이유로 ARS 조사를 수행하지 않기로 결의한 상태다. 반면 리얼미터 등이 속한 한국정치조사협회(KOPRA)는 ARS가 익명성을 보장하는 '비밀투표형' 방식이며 저비용·고효율의 장점이 있다고 맞서고 있다.
이 같은 인식 차이는 실제 조사에 참여하는 '응답층 성격'에서 극명하게 갈린다. 하 전무는 "전화면접은 무관심층까지 설득해 참여시키기에 이념 성향이 고른 반면, ARS는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양극단 성향이 강해 중도층 비율이 낮게 나타난다"며 조사 방식에 따른 인구 구성의 편향성을 지적했다.
특히 '연령 조작'은 ARS의 고질적 문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제21대 대통령선거 연령대별 투표율'에 따르면 60대는 87.3%, 70대는 87.8%로 전체 연령층 가운데 가장 높은 참여율을 기록했다. 정치 관심도가 높은 60·70대 응답자가 조사 초기에 집중적으로 참여해 할당량이 금방 채워지면, 일부 고령층은 조사에 참여하기 위해 자신의 나이를 낮게 속여 입력하기도 한다.
실제로 전화면접 시 조사원들은 "해당 아이돌 가수가 부른 대표곡이 무엇이냐"는 식의 돌발 질문이나 십이지(十二支) 띠와 생년월일을 교차 검증하는 방식으로 허위 응답층을 골라낸다. 조사원 경력 12년차인 케이스탯리서치 조사원 최모(66)씨는 "의심스러운 경우 솔직히 말씀해달라고 요청하면 '그려, 사실 나 76살이여'라며 실제 나이를 털어놓는 경우도 있다"며 "대면에 가까운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점이 전화면접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조사원 경력 22년의 또 다른 조사원 이모(65)씨 역시 "연세가 많은 분들이 전화를 비교적 많이 받는 편이라 하루 할당량이 빨리 채워지는 경우가 있다"며 "표본 구성상 다른 연령층의 응답이 필요하다고 설명해도 '젊은 사람들 말만 듣는다'며 항의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 양극화, 더 심해졌다
평균 경력 16년의 케이스탯리서치 조사원들은 정치 지형의 변화를 누구보다 생생하게 체감하고 있다.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도 함께 커지고, 그 여파로 적대적 반응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설명이다. 응답자를 가까이서 마주하는 조사원들은 "입에 담기 어려운 욕을 수시로 듣는다"고 말할 만큼 항상 폭언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업무 중이다" "운전 중이다"라며 전화를 끊는 경우는 오히려 양호한 편이다. 김씨는 "최근 한 조사에서 '한 번만 더 전화하면 죽여버리겠다'는 말까지 들었다"며 "조사원들끼리 '욕을 많이 먹으니 오래 살겠다'고 자조 섞인 농담을 나눈다"고 전했다. 최씨 역시 "농촌 지역 어르신들께 저녁 시간대에 전화를 드리면 '잠을 깨웠다'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노동 강도가 한층 높아졌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정치적 긴장도가 고조될수록 설문 분위기도 날이 서기 때문이다. '어떤 정치인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응답 태도가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 조사원의 정치 성향을 묻는 응답자도 종종 있다. 조사원들은 "예전에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예민해진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부터 전화조사원으로 일했던 이씨는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도 조사와 관련해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응답이라도 해 줬다"며 "요즘은 '이재명'이라는 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전화를 끊는 사례도 많고 훈수를 두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참여정부 때부터 부각된 정치 양극화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촛불'과 '태극기'의 대결 구도가 형성된 이후, 문재인·윤석열 정부를 거치며 진영 대립이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가짜뉴스와 SNS 등 뉴미디어 환경 속에서 여론조사 결과가 자신의 신념과 다를 경우 이를 쉽게 부정하는 경향도 강해졌다"며 "양당 모두 목소리 큰 강성 지지층에 끌려가는 구조 속에서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주경 기자 by_jk@chosun.com, 김효림 기자 kim.hyor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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