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2026.05.22.
이탈리아 로마를 연고로 하는 AS 로마와 라치오는 오랜 축구 라이벌이다. 2010년 라치오가 홈에서 인터밀란과 맞붙었는데 홈팬들이 대놓고 원정팀을 응원했다. 홈팀 라치오가 이길 경우 숙적 AS 로마의 우승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열성 홈팬은 경기 전부터 “똑바로 져라”고 했다. 라치오 선수 중 아르헨티나 출신만 상황을 모르고 열심히 뛰었다. 이긴 원정팀 선수와 진 홈팬이 함께 만세를 불렀다.
▶이란도 축구에 진심이다. 바로 옆에서 열린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홈 경기나 다름없어 많은 이란 팬이 경기장을 찾았다. 그런데 잉글랜드와의 첫 경기에서 이란 팬들은 이란 대표팀을 향해 야유를 보냈다. 상대가 골을 넣으면 환호하기까지 했다. 당시 이란은 히잡을 쓰지 않았던 여대생이 의문사한 사건으로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던 시기였다. 이란 선수들도 국가 제창을 거부하며 팬들과 마음을 맞췄다.
▶1990년 평양에서 ‘통일 축구’ 대회가 열렸다. 분단 이후 첫 체육 교류였다. 능라도 경기장에 15만 관중이 운집해 “조국 통일” “조국은 하나” 등을 외쳤다. 선수들끼리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함성이 컸다고 한다. 지금은 북에서 ‘통일’만 꺼내도 처벌 대상이 된다. 2019년 평양에서 열린 월드컵 남북 예선전은 21세기에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무중계·무관중·무취재로 진행됐다. 손흥민이 “안 다치고 온 것만 해도 큰 수확”이라고 할 만큼 북한 선수들은 거칠었다.
▶20일 수원에서 열린 수원 FC 위민과 북한 내고향 축구단 경기엔 5700여 관중이 들어왔다. 이 중 2000여 명이 세금 3억원을 받아 모인 ‘남북 공동 응원단’이라고 한다. 이들은 “남북 모두 응원할 것”이라고 했지만 북한팀이 동점골과 역전골을 넣자 더 큰 소리로 응원했다. 우리 선수가 페널티킥을 실축했는데도 도리어 환호성을 질렀다. 경기 후 수원 감독은 “저희가 대한민국 축구팀”이라며 “경기 내내 섭섭했다”고 했다. 마치 원정 경기를 치른 듯했던 수원 FC 위민 선수들도 그랬을 것이다.
▶이 경기를 TV로 본 사람들이 “저 응원단이 어떤 사람들이냐”고 궁금해 했다. 정부는 이 응원단에 국민 세금 3억원을 지원하면서도 그들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각종 시민단체들이 모인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하게 알기는 어려운 일이다. 지금 정부는 남북 문제에 안달을 하는 것 같다. 김정은 비위 맞추는 일이면 가리는 게 없다. 그 응원단이 우리 선수들이 아닌 북한 팀을 응원한 것도 그런 일환이란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일러스트=이철원
안용현 논설위원 ahny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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