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1.

지난 9월 2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캐피털 컨퍼런스 2025’ 참석자들이 “코스피 5000을 향해”를 외치고 있다. photo 뉴스1
지난 10월 29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증권가. 전광판이 초록빛으로 깜박이며 코스피 지수가 4080포인트를 넘었다. 사상 최고치에 근접한 수치다. 증시 안팎에서는 "'코스피 5000시대'가 눈앞"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오가지만, 20년 넘게 시장을 지켜온 베테랑 투자자는 고개를 저었다. "숫자가 오르는 게 경제 체력이 좋아진다는 증거는 아니죠. 1997년 외환위기, 2007년 금융위기 직전에도 다들 그렇게 믿었습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두 번의 위기를 기억하는 투자자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주가 상승이 곧 경제 회복'이라는 착각이 위기로 이어졌던 기억이 생생한 투자자들이다.
지난 10월 21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코스피가 상승하는 것을 강조하며 "비생산적 분야에 집중됐던 과거 투자 방식에서 벗어나 자산 증식 수단이 차츰 다양화·건실화되는 과정이라 생각된다"고 했다. 여기서 '비생산적 분야'는 부동산이다. '코스피 5000시대'가 다가오니 부동산에 투자하지 말고, 주식에 투자하라는 권고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에서는 주식으로 돈을 벌면 '그 돈으로 강남 아파트를 사려 할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최근 한국 증시는 '유동성 장세' 논란 속에서도 거침없는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미·중 무역갈등,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글로벌 긴축 재개 같은 악재조차 상승세를 꺾지 못했다. 이 대통령이 집권 초기부터 내세운 '코스피 5000시대' 공약은 투자 심리에 강한 자극제가 됐다.
'코스피 5000'은 투기 신호?
새 정부 출범 이후 지수는 실제로 4000선을 돌파하며 목표에 바짝 다가섰다.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내세워 자본시장 신뢰 회복,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배당 확대, 외국인 투자 유치 등 제도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물론 증권가 일각에서는 "과열 신호일 수 있지만, 구조개혁이 실물경제로 이어진다면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신중한 낙관론도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평가는 다르다. 이재명 정부의 '코스피 5000' 구호를 "정책적 착시이자 위험한 숫자 놀음"으로 규정한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병폐(생산성 둔화, 실질임금 정체, 제조업 경쟁력 약화)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가지수 상승만을 강조하는 것은 경제의 체질적 취약성을 가리는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일단 '코스피 5000'이라는 목표를 세워 놓은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비판이 대다수다.
최성진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정부처럼 '숫자 목표'로 공개적으로 주가지수를 제시한 적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시장에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부양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투자자 입장에선 일종의 '투기 사인'이라 볼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역시 "정부가 '코스피 5000'을 언급한 건 기업 활동 촉진 의도지만, '주가지수를 목표치로 제시'하는 건 코미디에 가깝다"며 "정책 신뢰성과 일관성을 해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또 "주가를 성과의 잣대로 삼는 행위는 경제 정책의 왜곡이다"라고도 했다.
평생을 증권가에서 보낸 임우택 작가('코스닥 X파일' 저자)는 '코스피 5000' 목표 설정을 "아무 근거 없는 구호"라 단언한다. "'코스피 5000'은 경제 펀더멘털이 아니라 정치적 상징"이라며 "정부가 '주가를 올리겠다'는 인위적 경기부양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고 있는 걸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권혁욱 니혼대 경제학과 교수도 "주가를 경제정책 목표로 삼는 나라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권 교수는 "주가는 미래 성장 가능성을 반영하지만, 숫자 목표 제시는 전례가 없다"며 "정부가 '주가를 인위적으로 올리겠다'고 알리는 순간 시장은 일종의 '투기 신호'로 받아들인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29일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광장에서 ‘코스피 5000시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photo 뉴스1
공적 자금 대형주 '몰빵' 우려
이재명 정부가 '코스피 5000'을 국정 과제로 강조하면서 압력을 느낀 공적 자금의 시장 투입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자본시장 본연의 기능을 훼손한다는 비판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2015년 '국가팀' 투입으로 벌어진 증시 폭락과 2010년 일본은행(BOJ)의 상장지수펀드(ETF) 매입 사례를 거론하며 걱정한다. 2015년 중국 '국가팀' 사태는 중국 정부가 증시 폭락을 막기 위해 국유 금융기관들을 동원해 대규모 주식 매입에 나섰다가 단기 반등 이후 폭락해 외국인 자금이 대거 이탈한 사태다. 2010년 일본 중앙은행은 경기부양을 위해 상장지수펀드를 사들였는데 단기적으로 닛케이 지수가 올랐지만, 향후 기업 실적이 아닌 중앙은행 매입 타이밍에 따라 주가가 오르내리게 되었다.
최성진 교수는 "정부가 지수 목표를 공개하는 순간, 국민연금·국부펀드 투입 기대가 커지고, 단기 상승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연기금 손실 위험과 자본시장 왜곡에 빠진다"고 진단했다. "특히 AI 관련주에 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이 산업은 고용 창출 효과가 미미해 거품 붕괴 시 경제 충격이 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 교수는 "중국의 '국가팀' 증시 개입이나 일본은행의 ETF 매입 사례에서 보듯, 이러한 정책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자정 기능을 훼손하고 오히려 외국인 자금 이탈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고 덧붙였다.
임우택 작가도 "공적 자금이 특정 대형주에 몰리는 '몰빵 장세'가 형성될 수 있다"며 "만약 정치권 인사가 내부 정보를 알았다면 관련 주식을 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권혁욱 교수는 "일본은행 사례처럼 중앙은행이 시장에 개입하면 시장은 '체온계 기능'을 상실한다"고 지적했다.
'주가 허상'에 가려진 실물경제 위기
2025년 10월 현재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2.5%다. 낮은 금리의 그늘은 깊다. 가계부채 규모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91.7%를 기록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2024년 말 기준 신용대출 잔액은 180조원을 넘어섰다. 실물경제의 성장세가 미약한데, 주가는 '기술적 착시'처럼 급등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코스피 시장은 경기 회복이 아닌, 유동성에 의해 부풀려진 자산 거품이라고 경고한다. 미국·유럽·일본이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초저금리와 대규모 통화 완화 정책을 이어가면서, 넘쳐나는 글로벌 자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찾아 신흥국 증시로 몰려든 결과라는 것이다.
결국 현재의 주가 상승은 기업 실적이나 생산성 향상과는 무관한, 저금리 유동성 장세가 만든 인위적 상승이라는 비판이 증권가 안팎에서 제기된다. "지금의 증시는 실적이 아닌 기대감 위에 세워진 탑"이라는 경고가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성진 교수는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도 주가만 급등하는 최근 한국의 모습은 베네수엘라, 튀르키예, 아르헨티나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2022~2023년 튀르키예와 아르헨티나에서도 환율 불안과 고(高)인플레이션 속에 주가만 급등하며 '착시 효과'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는 종종 '탈동조화(따로 움직이는 현상)'된다"며 "코로나 이후 전례 없는 통화, 재정 완화가 장기 금리를 낮추며 자산 가격이 실제 경쟁력보다 과도하게 상승했다"고 덧붙였다.
투자 절벽과 기업의 '탈한국' 가속
지난 10월 초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전기부품 기업. 이 회사는 올해 예정했던 설비투자 계획을 결국 접었다. 사장의 설명은 이렇다. "시장 수요가 불확실한데다, 환율 변동에 전기요금 인상, 노조법 변화까지 겹쳤습니다. 지금은 투자를 결정할 만한 확신이 없습니다." 현장의 투자심리는 얼어붙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6월 국내 설비투자는 전월 대비 3.7% 감소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연간 설비투자 증가율 전망을 1.2%로 하향 조정했다. 반도체 분야를 제외한 제조업 투자는 전반적으로 정체 상태다.
'토빈의 Q'라는 이론이 있다. 주가가 올라서 기업가치가 높게 평가받게 될 때 새로 투자하면 더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주가가 상승하면 투자가 늘어나는 선순환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다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에 몰리지만, 한국 기업들은 국내 설비투자 대신 미국에 공장을 새로 짓는 등 해외 투자로 눈을 돌리고 있다. 현대차, 삼성전자, LG에너지솔루션 등이 미국 공장 신설에 열중한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나. 임우택 작가는 "관세 전쟁, 수출 부진과 인플레이션에 의한 인건비 상승, 위기에 가까운 인구 감소가 겹쳐 '투자 포기' 현상이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임 작가는 "기업들은 돈을 벌어도 국내 대신 미국·동남아로 생산 거점을 계속 옮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혁욱 교수도 "주가 상승이 곧 투자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 경영진은 단기 주가에 신경 쓸 뿐, 투자 환경이 불투명하면 과감한 장기 투자를 꺼린다"고 강조했다. 김태황 교수는 "주가지수 상승이 증자나 우선주 발행 등 기업 투자로 연결되지 않으면 단순 투기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심리적 랠리가 아닌 실질 투자 동반이 중요하지만, 지금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경제 이론으로 설명해도 한국은 어렵다. 최성진 교수는 "전통 경제학의 토빈의 Q 이론은 주가 상승이 기업의 자본 조달비용을 낮춰 투자를 촉진한다고 설명하지만, 현실에서는 법·제도적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가 즉각 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지금의 주가 상승은 이미 발행된 주식이 2차 시장에서 거래되며 나타난 결과일 뿐, 실제 설비투자나 고용 확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구조는 아니다"라며 "기업이 투자를 늘리려면 신규 주식 발행이나 회사채 발행 같은 1차 시장을 통해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정부의 규제와 노동·세제 정책이 기업 환경을 제약하고, 한·미 통상협상의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기업들이 투자를 단행할 확실한 동인이 부족하다"며 "결국 주가 상승이 곧바로 실물 투자와 일자리 확대로 이어지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터질까 두려운 'AI 버블'
인공지능(AI) 관련 주식만 오르는 양극화도 문제다. 최근 만난 서울 강남의 개인투자자는 "대형주만 치솟고, 나머지는 움직이지 않아 불안해 따라 들어갔으나 손실만 봤다"며 "이른바 '포모(Fear Of Missing Out·놓치면 불안)' 심리가 거품을 키우는 악순환"이라고 말했다.
실제 코스피 상승세는 소수 대형주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AI와 관련된 기업들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연초 대비 50% 가깝게 급등했지만, 다수의 중소형주는 정체 상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두 종목이 코스피 시가총액의 약 30%를 차지하는 등 시총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다. 지수는 올랐지만, 다수 중소형주는 정체 상태다. 다수의 개인투자자들은 체감 수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보고서에서 "글로벌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비중이 1999년 닷컴버블 당시 수준에 근접했다"고 경고했다. AI 관련주 중심의 상승세가 꺼질 경우 주가 급락뿐 아니라 시장 신뢰 붕괴, 개인투자자 피해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극화와 거품을 걱정한다. 권혁욱 교수는 "양극화가 심화되면 일부 성장주에 투자금이 집중돼 시장 건전성과 개인투자자의 이익을 해친다"고 진단한다. 김태황 교수는 "AI 산업으로 자금이 빠르게 쏠리는 현상은 기술 혁명의 표현일 수 있으나, 과열 조정 위험도 크다"고 덧붙였다.
'산업 체질' 개선이 급선무
현재의 상황은 "체력 없는 주가 상승은 마라톤 전 도핑(약물)과 같다"는 말이 잘 설명한다. 단기 기록은 좋아 보이지만 내실이 뒷받침되지 않은 성장은 결국 부작용을 낳는다는 경고다. 실물경제의 기초체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주가만 급등하는 '불균형 랠리'가 이어지자, 증권가 안팎에서는 "이건 경기 회복이 아니라 일시적 착시"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외부 충격에 취약한 상태에서 한·미 통상 압박이 강화되고, 미국발 AI 버블이 붕괴할 경우, 한국은 수출·금융·환율의 '3중 복합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리스크가 시장의 최대 불안 요인이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달러 강세 전환 시 외국인 투자자가 한순간에 빠져나가면 '코스피 5000'은커녕 '코스피 2500'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는 말도 나온다. "1997년 외환위기 전 '펀더멘털은 건재하다'라는 정부 발표가 반복됐다"며 "이번에도 정치 논리에 따른 낙관론이 시장 판단을 흐릴까 우려된다"는 걱정이다.
현재 상황에 대해 임우택 작가는 "지수 목표 설정은 근거 없는 전략이라 단기 부양은 가능해도 장기 왜곡과 시장 신뢰 훼손을 낳는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한국 경제는 숫자의 게임이 아니라 실질 축적과 내실 강화가 중요하다. 정부는 주가 부양보다 산업 체질 개선과 투자 환경 조성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최성진 교수는 정부의 '코스피 5000' 목표 설정이 단기 성과에 급급한 위험한 정책임을 경고했다. 그러면서 내실 강화를 주문했다. "'코스피 5000'은 시장에는 '정부가 주가를 인위적으로 부양하려 한다'는 신호가 되고, 결국 자원 왜곡과 시장 신뢰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제는 숫자 게임이 아니라 실질 축적과 내실 강화가 중요하다. 정부는 주가 부양보다 산업 체질 개선과 투자 환경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 최 교수는 "결국 지수를 정책 목표로 떠받치면 펀더멘털과 무관한 왜곡이 심화될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태황 교수 역시 "주가는 경제 성과의 결과이지 목표가 아니며, 숫자 집착은 경제 왜곡을 초래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경제학계 전문가들의 해법을 종합하면 △시장 인프라 강화와 투명한 지배구조 구축 △투자 환경 개선과 규제 완화 △대학·기초연구 재정 강화 △지수 목표 폐기와 펀더멘털 강화에 집중할 것을 권한다. 결국 "숫자에 집착하느라 근본 체력을 놓친다면 코스피 5000은 허상에 그칠 뿐"이라고 모두 입을 모은다. '코스피 5000'의 꿈이 진정 현실이 되려면 숫자 너머 경제 체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이정현 기자 john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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