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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연 판도라의 상자…‘소말릴란드 국가 인정’

dalmasian 2025. 12. 29. 07:31

[지금 중동은]2025.12.29.

소말릴란드 국가 인정 서류에 서명하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2025년 12월 26일)
“이스라엘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이스라엘의 소말릴란드 국가 인정을 놓고 유럽의 한 국제정치 평론 웹사이트에서 나온 평가입니다. 이스라엘의 소말릴란드 국가 인정이 동아프리카 지역에 가져올 파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26일, 소말릴란드를 국가로 인정하는 선언문에 서명했습니다. 그는 이번 결정이 트럼프 행정부 주도로 체결된 '아브라함 협정'의 정신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네타냐후 총리와 영상통화하는 압둘라히 대통령 (2025년 12월 26일)
■유엔 회원국 최초 소말릴란드 국가 인정

소말릴란드가 1991년 소말리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이후 유엔 회원국으로부터 국가로 인정받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지난 12일 취임한 압디라흐만 모하메드 압둘라히 소말릴란드 대통령은 X를 통해 이스라엘의 승인이 “역사적인 순간”이자 “전략적 파트너십의 시작”이라고 밝혔습니다. 압둘라히 대통령은 아브라함 협정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도 명확히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국가 인정 발표 이후 소말릴란드 수도 하르게이사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국립 박물관 외벽에 투사된 이스라엘 국기를 보며 축하했습니다.

국가 인정을 축하하는 소말릴란드 국민 (수도 하르게이사, 2025년 12월 26일,SNS 캡쳐)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소말릴란드의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한때 이 문제를 검토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것을 검토 중”이지만 “소말릴란드가 정말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반문하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는 소말릴란드의 ‘아브라함 협정’ 가입 의사에도, 미국에 군사 항구 제공 제안에도 “그게 대수냐”라고 답하며 “무관심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습니다. 미 국무부의 입장도 트럼프 대통령의 회의적 태도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큰둥한 미국...역내 국가들의 강력한 반발

반면 소말리아 정부를 비롯한 소말릴란드 주변국은 강력 반발했습니다. 소말리아는 이스라엘의 이번 조치를 소말리아 주권에 대한 “의도적인 공격”이자 “지역 평화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규탄하며, 소말릴란드는 소말리아의 “분리할 수 없는” 일부라고 못박았습니다.

소말리아의 우방인 튀르키예는 “이스라엘의 팽창주의 정책에 따른 이번 시도는 소말리아 내정에 대한 명백한 간섭”이라고 규탄했고, 이집트는 “분리 지역을 외부가 단독 인정하는 행위는 아프리카와 홍해 인근 지역의 불안정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집트는 이번 사안을 홍해와 수에즈 운하 안보와 직결된 사안으로, 이번 조치가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강한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말릴란드 국가 인정에 강력 반발하는 소말리아 주민 (2025년 12월 27일)
아프리카 55개국이 회원국인 정치·외교 기구 아프리카연합(AU)도 이번 조치가 “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평화와 안정에 위험한 선례를 남길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아랍연맹과 걸프협력회의도 이스라엘의 행보를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이들 기구는 아랍연맹 회원국인 소말리아의 입장을 두둔하면서, 이번 사안이 단순한 아프리카 내부 문제가 아니라 홍해 남단의 지정학적 재편 가능성과 해상 교통로·에너지 수송 안전성에 대한 새로운 변수로 인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소말릴란드가 “팔레스타인 사람들, 특히 가자지구 주민들의 강제 이주를 위한 목적지로 거론됐다”고 지적하며 이런 움직임에 공모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소말리아와 소말릴란드
■소말릴란드 아덴만 전략적 요충지

이스라엘의 소말릴란드 국가 인정이 소말리아를 비롯해 역내 국가와 정치·외교 기구의 거센 반발을 불러온 건 소말릴란드의 지정학적 전략적 가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소말릴란드는 아덴만(Gulf of Aden)의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지역은 홍해 남단과 수에즈 운하-인도양을 연결하는 핵심 병목으로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10~12%가 통과하는 중동 원유·LNG 수송의 필수 통로입니다. 특히 베르베라 항만은 상업·군사적 측면에서 잠재력이 상당한 곳으로, UAE(아랍에미리트)가 2016년 4억여 달러를 투자해 30년 운영·개발권을 확보했습니다.

소말릴란드는 인구가 400~500만 명으로 추정되며, 자체 화폐, 여권, 군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소말리아가 수십 년간 내전에 시달린 것과 달리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정권 교체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미승인 상태라 외국으로부터의 차관, 국제 원조, 해외 투자 접근이 사실상 차단돼 경제적으로 매우 빈곤한 상태입니다.

예멘의 후티 반군
■이스라엘, 후티 반군 예멘 홍해 건너편 전략적 위치 확보

이스라엘의 이번 결정 배후에는 지역 안보 이익이 깔려있습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에 대응하기 위해 홍해 지역에 전략적 동맹국이 필요하다”고 분석했습니다. 가자전쟁 이후 후티 반군은 홍해와 아덴만에서 이스라엘 연계 선박을 공격하며 홍해 항로를 위협했습니다. 소말릴란드는 후티 반군이 장악한 예멘을 홍해 건너편에서 지켜볼 수 있는 이스라엘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소말릴란드도 아브라함 협정 가입 의사를 천명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친이스라엘 외교 기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반대한 이스라엘 “자가당착”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이번 결정을 놓고 "자가당착"이라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을 반대해온 이스라엘의 논리적 일관성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겁니다. 이는 아랍연맹 등 아랍권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소말릴란드 입장에선 팔레스타인의 자결권을 강조하는 아랍권이 자신들의 역사적 주권을 외면하고 있다는 겁니다.

■동아프리카 지정학적 판도 격변 가능성

시큰둥한 미국에 이어 역내 국가들이 잇따라 국가 인정을 반대하고 나섰지만, 남수단이 소말릴란드를 국가로 인정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남수단도 수단에서 분리 독립을 이룬 국가입니다. 아프리카 내 다른 국가들의 소말릴란드 국가 인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소말리아 내에서도 푼틀란드와 주발란드가 연방정부와 대립을 이어가고 있어 연방 탈퇴 가능성이 적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소말릴란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에티오피아와 더불어 이스라엘, 에티오피아, 소말릴란드로 이어지는 비아랍권 전략적 삼각 축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는 동아프리카의 지정학적 판도가 통째로 바뀔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몇몇 국가에서 분리 독립 운동이 도미노 현상처럼 꼬리를 물 수도 있습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리 독립 세력에게 자신들도 국제적 승인을 받을 수 있다는 강력한 선례가 되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한 국제정치 평론 사이트가 이스라엘의 국가 인정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김개형 (thene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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