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말간 해처럼 솟아오르는 신앙심

dalmasian 2026. 5. 31. 21:14

2026.05.30.
[유성호의 문학으로 읽는 기독교] 박두진 시

게티이미지뱅크

1980년 제4회 MBC 대학가요제 은상 수상작인 마그마의 ‘해야’는 어두운 시대를 뚫고 빛을 찾아가는 젊은이들의 함성과도 같은 노래였다. 나중에 솔로로 독립해 인기 가수가 됐고 훗날 목회자의 길을 걸은 리드싱어 조하문이 열창한 이 곡은 강렬하고 실험적인 록 음향에 한 시대의 메시지를 담아낸 명곡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노래는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로 이어지는 박두진의 시 ‘해’를 원작으로 삼았다.

박두진은 1939년 당대 최고의 시인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왔다. 등단 무렵 그는 “이 길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일생을 도우셔서 이 길로 나가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올렸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자연을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산아. 푸른 산아. 네 가슴 향기로운 풀밭에 엎드리면, 나는 가슴이 울어라. 흐르는 골짜기 스며드는 물소리에, 내사 줄줄줄 가슴이 울어라. 아득히 가버린 것 잊어버린 하늘과, 아른아른 오지 않는 보고 싶은 하늘에, 어쩌면 만나도 질 볼이 고운 사람이, 난 혼자 그리워라. 가슴으로 그리워라.”(‘청산도’ 중)

이러한 목소리에서 우리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공간으로서의 청산을 만나게 된다. 옛 가요에서 청산이 속세와 절연된 곳을 뜻했다면 박두진이 노래한 청산은 시인이 궁극적으로 꿈꾼 신앙적 이상향을 함축한다.

박두진에게 가장 중요한 이미지는 단연 빛이다. 물이 부드럽고 여성적인 수직 하강의 이미지를 띤다면 빛은 솟구치는 형상을 통해 초월 지향적인 이미지를 구축한다. 이러한 밝고 희망적인 속성이 빼어난 형상으로 결합한 작품이 바로 ‘해’다. 이후 시인은 의연한 저항적 정열과 초월적 의지를 결합해 많은 시를 발표했는데 이때 그의 신앙과 지성은 하나로 맞물렸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민족과 역사를 바라보는 뛰어난 작품들을 써 내려갔다.

“마지막 내려 덮는 바위 같은 어둠을 어떻게 당신은 버틸 수 있었는가? 뜨물 같은 치욕을, 불붙는 분노를, 에어내었는가? 꽝꽝 쳐 못을 박고, 창끝을 겨누고 채찍질해 때리고 입 맞추어 배반하고 매어 달아 죽이려는, 어떻게 그 원수들을 사랑할 수 있었는가? 어떻게 당신은 강할 수 있었는가?”(‘갈보리의 노래 2’ 중)

이 격정의 노래에서 시인은 ‘뜨물 같은 치욕’과 ‘불붙는 분노’를 온몸으로 견디며 이겨낸, 공의와 자비의 메시아를 초대한다. 동시대 역사 속에 친히 참여하시는 하나님을 간절하게 불러내는 것이다.

박두진은 이러한 종교적 언어를 통해 역사 너머에서 이루어질 신성 회복을 평생토록 노래했다. 불가피하게 묵시록적 성격이 강했던 그의 시는 산과 돌과 별 같은 자연을 통해 속세의 기운을 벗어버린 신앙적 격조를 지향하는 일관성을 보여줬다.

“어떻게 당신을 뵈올까 달빛 꽝꽝 얼음 벌판 혼자서 가네 무릎 꿇고 우러르는 너무 많은 별자리 내리꽂는 은빛 화살 영혼 아픈 찔림 주여 주여 다시 불러 가슴 안는 이름 벌판 얼음 혼자 가며 달빛 흐느끼네.”(‘탕자의 노래’ 중)

시인은 당신에 대한 외경과 사랑을 이렇듯 일관되게 고백했다. 스스로 탕자라는 인식을 겸손하게 견지하면서 결국에는 신에게 귀속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궁극적 실존을 탐구한 것이다. 마침내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며 인간의 유한함과 신을 향한 구원의 갈망이 영원히 지속될 것임을 강조한다.

“보소서 살피소서 받아 주소서 방황하는 죄인 하나 어쩔 줄을 모르는, 절대사랑 당신의 품에 안아 주소서.”(‘절대사랑 당신의 품에’ 중)

그는 언어를 통해 신과 인간이 화해하는 길목을 터주었다. 이처럼 기독교 정신은 박두진 자신에게는 빛으로 솟아오른 신앙의 의지를 가져다주었고 한국 시단에는 시공간적으로 가장 광활하고 역동적인 언어를 선사해주었다. 산등성이에 막 모습을 비추기 시작한 해를 바라보며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하고 외치던 시인의 우렁찬 절창이 오늘날 우리의 귀에도 여전히 들리는 듯하다.

한양대 국문과 교수·꽃재교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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