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2026.06.15.
대선 지고도 ‘네탓’만 한 야당
야당福 믿고 일방독주한 정권
오만한 정권에 철퇴내린 민심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인가

그래픽/이철원
무기력하게 정권을 내준 정당이 쇄신에 나서기는커녕 “너 때문에 졌다”며 집안싸움에 몰두한다. 지리멸렬한 모습에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당 안팎에서 패배주의가 팽배한다. 야당이 이 모양이니 정권은 마음놓고 무리한 법안·인사를 밀어붙인다. 대통령은 자신의 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인들을 정부 요직에 앉혀 사법리스크 무마까지 시도한다. 여기에 대외 실정(失政)까지 겹치면서 민심이 요동치더니, 여당이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에서 패하는 일이 벌어진다. 절망뿐이던 야당에 갑자기 한 줄기 서광이 비치는 듯하는데….
왠지 모르게 익숙한 이 장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대선 승리 이후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야당인 민주당이 뭘 잘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트럼프의 공화당에 넘어갔던 연방하원 다수당을 되찾아 올 것으로 점쳐진다. 상원 다수당 탈환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한다.
민주당은 2024년 대선에서 ‘후보 교체’ 쇼까지 벌였지만 완패했다. 7개 핵심 경합주가 모두 공화당의 빨간색으로 뒤덮였다. 민주당 전통적 지지 기반인 히스패닉, 젊은층, 블루칼라도 대거 트럼프로 이동했다.
대선 패배 후 민주당의 꼴은 더 처참했다. 당을 이끌어갈 차기 유력 주자나 지도자는 보이지 않고 정체성·노선 갈등으로 분열만 극심해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 독주에 제대로 방어선도 구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대선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의 ‘내부 총질’ 회고록은 안 그래도 쑥대밭 된 집에 기름을 제대로 부었다. 책에서 해리스는 바이든 전 대통령의 재선 도전을 ‘자존심이 부른 무모함’으로 규정했고, 후보가 자신으로 교체된 뒤에 바이든이 대선을 방해했다고 했다. 선거를 도왔던 당내 중진들에 대해서도 “겉과 속이 달랐다” “성(性) 정체성이 문제였다”며 독설을 퍼부었다. 지지자들이 하나둘 떠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각종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호감도는 “30년 만에 최악” “조사 사상 최저 수치” 등의 제목으로 발표됐다.
반전은 정권의 잇따른 실책에서 시작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존재감 제로 야당을 ‘패싱’하며 무리한 예산을 밀어붙이다 사상 최장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를 초래했다. 이란 전쟁을 감행한 이후 기름값과 인플레이션은 통제불능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 와중에 트럼프는 자신이 연루된 각종 재판에 참여했던 변호인단 출신들을 법무부 장·차관, 연방판사·검사장 등 요직에 앉혔고, 이들은 트럼프 정적(政敵) 제거에 앞장섰다. 최근 법무장관에 지명된 인물은 트럼프의 ‘성추문 폭로 입막음 사건’ 변호인 출신인데, 그는 트럼프 일가에 대한 국세청(IRS)의 세무 조사를 면제한다는 발표를 하면서 “이 조치는 ‘영구히’(forever) 유효하다”고 했다.
실점이 쌓이면서 공화당은 최근 ‘텃밭’ 선거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마이애미 시장을 28년 만에 민주당에 내줬고, 플로리다·조지아·텍사스주 상하원 보궐선거에서도 패배했다. 모두 지난 대선 때 트럼프가 두 자릿수 격차로 이겼던 곳들이다.
민심은 이토록 무섭다. 대선 때 표를 몰아준 정권이 야당복(福)에 겨워 독주하는 모습을 보이자 1년여 만에 바로 등을 돌리고 야당에 기회를 줬다. 야당이 딱히 예뻐서 그런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민심은 야당이 반사이익에 안주하는지, 이를 바탕으로 거듭나는지도 지켜볼 것이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불씨가 꺼지는 것도 한순간이 될 수 있다. 한번 뜨거운 맛을 본 정권도 바보가 아닌 이상 심기일전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미국 얘기다. 그런데 자꾸 국내정치가 어른거린다면 기분 탓일 것이다.
임민혁 국제부장 lmhcoo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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