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5.

지난 7월 1일 경북 구미 국가산업단지 5단지의 1·2단계 전경.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6월 28일 낙동강을 건너 찾아간 경북 구미시 산동읍의 국가산업단지 5단지 조성 현장에는 '공사중' 표지판과 함께 안전테이프가 곳곳에 둘러쳐져 있었다. 전체 면적만 약 270만㎡(82만평)에 달하는 낙동강 동안(東岸)의 이 땅은 구미시가 지난 6월 28일 반도체 공장(팹)을 유치하겠다며 내건 땅이다.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5단지 공장부지의 평(3.3㎡)당 시세는 148만원. 하지만 반도체 공장 유치를 조건으로 구미시가 내건 이 땅의 분양가는 평당 1000원이다. 반도체 공장을 유치할 수 있다면 사실상 땅을 공짜로 주겠다고 공언한 셈이다.
하지만 '평당 1000원'이란 파격가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결국 구미가 아닌 전남광주를 택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29일 청와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총 800조원 규모의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공식화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2기씩 총 4기의 반도체 공장(팹)을 광주에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경북 출신 대통령 지켜보는 구미
낙동강 상류에 있는 경북 안동 출신 대통령의 이 같은 모습을 지켜보는 구미의 심정은 남달리 착찹하다.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이 발표된 다음날인 지난 6월 30일 김장호 구미시장은 "평당 1000원의 부지까지 갖추어 대규모 팹이 당장 들어와 가동될 수 있는 최적의 준비를 마친 도시는 단연코 구미인데 배제된 것을 납득할 수가 없다"며 "41만 구미시민을 대표해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성토했다. 구미금오공대를 나왔다는 60대 회사원 권모씨는 "30년 전에는 출근시간마다 대우전자 등 대기업 공장으로 수천 명이 발걸음을 옮겼던 곳"이라며 "이제 구미는 죽은 도시가 됐다"고 개탄했다.
구미의 박탈감은 과거 구미가 한국 반도체 기술개발의 산실이란 점 때문에 더욱 크게 다가온다. 박정희 정부 때인 1969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인 옛 선산군 구미읍(현 구미시)에 공단이 조성됐고, 농촌의 여성인력과 낙동강의 풍부한 공업용수를 이용해 라디오와 TV를 만드는 전자공업이 구미에서 태동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전신인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도 1976년 구미에 들어섰다. 구미에서 TV를 생산하던 LG전자(옛 금성사)는 1979년 '대한반도체'를 인수해 '금성반도체'로 간판을 바꾸고 구미를 거점으로 반도체 산업에 진출하기에 이른다.
세계 최대 반도체 수요처 중 한 곳인 애플의 팀 쿡 CEO가 과거 하청업체를 찾아 방문했던 곳도 구미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자 패트릭 맥기가 쓴 '애플 인 차이나'에는 구미 1공단 내에 있는 허름한 리오관광호텔(현재 폐업)에 투숙한 '공급망의 귀재' 팀 쿡 애플 CEO의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던 경험담이 소개될 정도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의 싹을 키워가던 구미에는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추진된 '빅딜'로 인해 피바람이 몰아닥쳤다. 청주와 구미를 거점으로 반도체를 만들던 LG그룹에서 '반도체'를 떼어내 이천을 거점으로 하는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에 넘긴 것. 당시 반도체 산업을 사실상 강탈당한 LG그룹은 '전국경제인연합회'(한경협의 전신)에 발길을 끊을 정도로 강하게 반발했다. 오늘날 삼성전자(매출 333조원, 2025년 연결 기준)와 LG전자(매출 89조원)의 격차가 4배 가까이 벌어진 것도 당시 '빅딜'의 후환이란 평가다.

경북 구미 국가산업단지 5단지 인근에 반도체 팹 유치를 주장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정권 바뀌고 달라진 평가잣대
김대중 정부 때 '빅딜'과 마찬가지로 정권이 바뀌자마자 반도체 입지 평가잣대가 달라진 것도 구미의 분노를 더욱 키운다. 사실 구미는 윤석열 정부 때인 2023년 7월, 7 대 1의 경쟁을 뚫고 비(非)수도권 유일의 반도체 소재장비 특화단지로 지정됐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반도체 생태계 미비, 용수 부족 등의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구미에도 뒤처졌던 광주가 불과 3년 만에 반도체 전공정 팹을 유치하자 더욱 납득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이는 구미를 위시한 대구·경북 전체가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에 강하게 반발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반도체 팹의 3대 요소로 꼽히는 '전기' '물' '사람'을 거론하면서 "도대체 이 세 가지 중에 전남광주가 대구·경북보다 나은 게 하나라도 있느냐"(정장수 전 대구시 경제부시장)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통령이 "차별의 고통과 설움을 견뎌내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만들고 지켜온 호남에 대한 역사적·국민적 보상"이라고 언급한 광주 반도체 공장이 도리어 지역갈등만 더욱 키우는 모양새다.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실 국정기획비서관을 지내고 구미 반도체 특화단지 지정에 기여했던 강명구 국민의힘 의원(초선, 구미을)은 "수백조원이 걸린 국가적 결정이 정치적 논리에 따라 즉흥적으로 이뤄졌다"며 "구미를 비롯해 반세기 동안 이 나라 반도체를 떠받쳐온 국민은 배당 명단에서 지워도 좋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팹 4기를 건설하겠다는 큰 틀 외에는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전무하다"며 "필요하다면 국정조사를 통해서라도 그 과정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지금도 구미는 광주에 비해 반도체 생태계 측면에서 월등히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최대 반도체 수요처 중 하나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을 필두로, 삼성SDI, SK실트론, LG이노텍, 한화시스템, LIG넥스원 등 줄잡아 350여개(2025년 기준)의 반도체 전후방 기업들이 구미에 둥지를 틀고 있다.
광주와 마찬가지로 내륙도시지만 '물 먹는 하마'로 불리는 반도체 전공정에 필요한 용수공급 측면에서도 구미는 광주보다 우위에 있다는 평가다. 구미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낙동강 유역 면적은 약 2만7167㎢로, 광주를 지나는 영산강(약 3467㎢)에 비해 8배 가까이 넓다. 낙동강 상류에 있는 안동댐(총저수량 12억4800만t)과 임하댐(5억9500만t)을 비롯한 인근의 낙동강 수계 댐에서 쏟아내는 용수 공급능력 또한 '하루 111만t'에 달한다. 정부가 광주 반도체 팹에 필요하다고 밝힌 '하루 65만t'의 공업용수 조달도 거뜬한 셈이다.
에너지 인프라 측면에서 경북은 한울원전(울진, 8기), 월성원전(경주, 5기) 등 총 13기의 원전을 보유하고 있다. 한빛원전(영광, 6기)에 의존하는 광주보다 훨씬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여건이다. 공급망 관점에서도 삼성전자의 주력 팹(전공정)과 패키징(후공정)이 있는 용인·화성·평택·천안·아산(온양), SK하이닉스의 주력 팹이 있는 이천·청주 등 경기 남부권 및 충청권 반도체 클러스터와의 물리적 거리 역시 광주보다 가깝다.
이런 까닭에 광주 출신으로 국회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 특별위원장을 맡았던 양향자 전 의원(현 국민의힘 최고위원) 역시 2023년 당시 "낙동강으로부터 풍부한 공업용수 조달,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하다"며 구미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임원을 지낸 양향자 국민의힘 반도체 AI 첨단산업특별위원장은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 발표 직후에도 "전남광주 쪽은 재생에너지는 있지만 ESS는 어떻게 깔고, 변동 없는 안정된 기저전력을 어떻게 공급할 것이며 이런 것들이 아직 안 나와 있다"고 꼬집었다.

경북 구미 국가산업단지 5단지에 ‘공장 매매, 임대’를 홍보하는 부동산 현수막이 붙어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반도체 소부장 연쇄이탈 우려
하지만 돌연 광주가 경기 남부권 용인, 평택에 이은 '제2 반도체 클러스터'로 낙점되면서 비수도권 유일의 반도체 특화단지 구미는 관내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의 연쇄 이탈을 걱정해야 할 처지로 전락했다. 윤재호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은 "이미 기반이 다져진 구미 지역이 소외됐다"며 "구미에서는 팹과 관련해서 현재 있는 업체들이 광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관내 반도체 기업 관계자들은 정치적 후폭풍을 의식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기를 꺼리는 상황이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재선, 구미갑)은 "정부가 특정 지역으로 기업 투자를 유도하거나 압박하는 방식은 결국 우리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과 공급망 안정성을 훼손하는 자해행위"라며 "정부의 역할은 기업들이 가장 경쟁력 있는 곳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장을 맡고 있는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애초에 구미는 반도체 팹(생산공장)과는 결이 다른 사업으로 반도체 소재·부품 특화단지"라며 "정부 발표에는 구미 허브 유지를 위한 투자 계획도 포함돼 있으므로, 아직 소외됐다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이 불안해한다면 추후 실행 계획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그래야 지역 주민들의 이해도가 높아지고 인프라 구축도 지연되지 않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구미=권아현 기자 zinc@chosun.com
Copyright ⓒ 주간조선.
'★NEWS 다시 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국힘 ‘징계 내전’ 초읽기… 윤리위, 한동훈 선거 도운 의원 우선 겨눌듯 (0) | 2026.07.06 |
|---|---|
| 선관위 ‘채용비리’ 결론낸 감사원… 법원은 “감사 잘못됐다” 또 뒤집어 (0) | 2026.07.05 |
| 수익률 2배 꿈꿨는데… 삼전닉스 레버리지 줄줄이 ‘마이너스’ (0) | 2026.07.05 |
| 한동훈, 장동혁에게 위로 술 따라줘…장동혁 가족 장례식장서 만난 ‘앙숙’ 장동혁·한동훈·이준석 (0) | 2026.07.05 |
| "한국 여행 온 김에 다 할래"…오늘은 콘서트, 내일은 라식수술 (0) | 2026.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