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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다음은 ‘超기업 교섭’

dalmasian 2025. 8. 29. 06:25

2025.08.29.
정부, 산업·지역별 노사협상 검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2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본지와 인터뷰하는 모습. 그는 원·하청 격차 해소를 위해 기존의 기업별 노사 교섭 대신, 초기업 단위 교섭 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성원 기자

정부가 기업별로 진행돼 온 노사 교섭을 산업·지역별 등으로 묶어 시행하는 ‘초(超)기업 단위 교섭’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단체교섭 효력이 미치는 범위를 개별 업체가 아니라 동일한 산업 등으로 확대하겠단 것이다. 이 교섭이 활성화되면 기업의 노사 관계뿐 아니라 임금 체계 등까지 일대 전환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취임 한달을 맞은 지난 2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통과 이후엔 기업별 노사 관계라는 기존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이 법 통과로 초기업 단위 교섭으로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정부는 초기업 단위 교섭을 촉진할 수 있는 절차와 법, 제도 개선을 고민하겠다”고도 했다.

초기업 단위 교섭의 본래 목적은 원·하청 격차 완화지만, 경영계의 우려는 크다. 힘센 노조를 가진 산업이 다른 산업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임금 불균형이 심해지고, 같은 산업 내라도 교섭안을 따를 여력이 없는 업체의 경우 심각한 경영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산업별로 동일한 조건을 적용받으려면, 표준화된 임금 체계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근속 연수에 따라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체계가 굳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렇게 될 경우 국내 신규 일자리 감소와 생산 시설의 해외 이전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노란봉투법 탓에 소송 봇물? 경영계 우려 잘 듣고 매뉴얼 만들겠다”

지난달 22일 업무를 시작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계뿐 아니라 경영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경영계에서는 고용노동부가 산재와의 전쟁 등 잇따른 기업 옥죄기 정책, 노란봉투법 통과 등 ‘고용’ 없는 노동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취임 한 달을 맞아 이뤄진 본지 인터뷰에서 김 장관은 제재처럼 보이는 노동 정책들이 오히려 기업의 생산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왜 초기업 단위 교섭이 필요한가.

“노란봉투법은 격차를 해소하고, 대화를 촉진하며 중대 재해를 줄일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이 법이 가진 한계 역시 뚜렷하다. 지금까지 우리 노사 관계를 지배해 온 가장 큰 원칙은 ‘기업별 노사’ 관계였고, 이는 기업별 임금 격차를 고착화시켰다. 노란봉투법 통과로 초기업 단위 교섭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디딤돌이 마련됐다.”

-초기업 단위 교섭은 표준화된 임금 체계 등이 필요해 노동 경직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초기업 단위 교섭이 격차 완화와 동반 성장이라는 공동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도록 정부는 임금·직무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모범적 교섭 사례를 확산하는 등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당 업종별, 산업별 특성에 따라 초기업 단위 교섭이 잘 이뤄진다면, 각 산업이 직면한 환경 변화에 노사가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본다.”

-전제가 되는 노란봉투법에는 시행령 위임 조항도 없다. 구체적인 내용은 법정에서 따져야 하기 때문에 결국 소송만 늘어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기업을 어렵게 하려고 시행령 위임 조항을 두지 않는 건 아니다. 장관 입장에선 시행령에 위임하면 제 권한이 커져 더 좋다. 경영계 인사들에게서 ‘실질적 지배력’ 조항에 대한 우려를 들었다. 교섭 거부에 따라 부당 노동 행위로 몰려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도 걱정하더라. 전문가 의견을 잘 들어 6개월 뒤 이 법이 빠르게 안착하도록 매뉴얼과 지침을 만들 생각이다.”

-최근 미국의 관세 정책 등으로 국내 기업의 해외 생산 시설이 늘고 있다. 국내 생산 시설 유지 방안을 고민할 때 아닌가.

“ILO(국제노동기구)가 지향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표준적인 노동 조건을 규범화하는 것이며 이는 공정한 무역의 전제 조건으로 작용한다. 만약 우리가 노조법을 국제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통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또한, 복합 원인이 있는 만큼 노조법을 비롯한 노동시장 제도로 인한 해외 이전 가능성을 얘기하긴 어렵다.”

-제조업이 이탈하면 일자리가 줄어 노동 정책도 무용지물이 된다.

“산업 정책과 노동 정책은 같이 가야 한다. 대기업은 기술 혁신을 주도하기 때문에 고용 없는 성장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방향이 됐다. 좋은 일자리는 결국 중소기업에서 만들어야 한다. 노동 질서가 잘 지켜지고 체불 임금, 산재, 직장 내 괴롭힘이 없는 튼튼한 기업을 만들어야 고용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산업재해에 ‘직을 걸겠다’ ‘지배 구조 발본색원’ 등 상당히 거친 발언을 쏟아냈다. 기업들은 제재 일변도 정책에 대한 우려도 있다.

“현재 일부 기업은 권한과 책임이 분산돼 있다. 그룹 차원에서 투자 결정을 하고, 책임은 자회사 대표이사 등이 진다. 이 불일치를 일치시켜야만 재해 요인을 예방할 수 있다. 이게 안 되니 사후적 처벌에 들어가는 것이다. 기업을 문 닫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지난 19일 사상자 7명을 낸 청도군 코레일 사고에 같은 잣대를 적용하면 국토부 장관,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정의 모든 책임자로서 대통령의 국정 철학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코레일의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경영 책임자가 누군지는 따져봐야겠지만, 이 사고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공기업의 경영 평가, 즉 경영 효율화와 산업 안전 지표가 동등하게 가고 있는지다. 구조적으로 비용 절감에만 골몰하게 하는 건 문제가 있다. 앞으로 ‘노동 안전 감수성’이 없으면 공직 맡기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근로감독관 수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다른 국가보다 적지 않다. 그럼에도 수천 명을 증원하는 이유는 뭔가.

“숫자만 놓고 보면 적다고 할 수 없지만, 우리는 다른 나라와 달리 근로감독관 80%가 체불 임금 문제에 매달린다. 앞으로 증원되는 인력은 산업 안전에 전면 투입하고, 임금 체불은 국세 체납에 준하게 강력하게 단속에 들어가려 한다.”

-정년 연장도 고용노동부의 주요 이슈다. 노동계는 65세 법적 정년 연장을, 경영계는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정년 연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평생을 국가를 위해 봉사한 공무원도 퇴직 뒤 연금 사각지대에 빠지는 시대다. 부끄러운 일이다. 양쪽 우려를 정확히 인식하고 해소할 수 있는 사회 연대적 세대 상생형 정년 연장 방안을 모색해 보겠다. 다만, 경영계가 주장하는 ‘퇴직 후 재고용’은 일부 인원을 ‘선별’로 재고용한다는 점에서 반대한다. 또 경영계가 임금 체계 개편을 정년 연장의 전제로 단다는 건 협상을 하지 말자는 얘기로밖에 안 들린다.”

-고용노동부 약칭을 고용부에서 노동부로 변경하고, 근로자의날을 노동절로 변경하는 걸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 고용 없는 노동부에 대한 우려가 많다.

“노동은 가치다. 고용을 앞세우면 고용되지 않은 노동자는 어디서 보호하나. 근로자라고 지목된 사람은 법 보호를 받고 근로자성 없는 사람은 법 밖에 있다는 건 헌법 정신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초(超)기업 단위 교섭

개별 기업 단위로 노사가 교섭하는 게 아니라, 산업이나 지역별로 노조가 연합해 교섭에 나서는 걸 뜻한다. 이 경우 표준화된 임금 체계가 필요해 대기업의 임금은 줄고, 중소기업은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김영훈은
‘민노총 위원장 출신’ 첫 고용노동부 장관이다. 1968년생으로 마산중앙고, 동아대 축산학과를 졸업한 뒤 성공회대 NGO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1992년부터 한국철도공사에서 기관사로 일하다 2010~2012년 민노총 위원장을 지냈고, 이후 기관사로 돌아가 계속 근무하다 이재명 정부의 고용노동부 장관에 임명됐다.

김아사 기자 asakim@chosun.com
정해민 기자 at_ham@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