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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억 대작, 여성 감독 손끝에서… 스릴러 판 키우는 女風

dalmasian 2025. 9. 15. 07:46

2025.09.15.
굵직한 사건·액션·공포·잔혹에 섬세한 심리 묘사 더한 ‘K스릴러’


드라마 ‘북극성’의 주인공 ‘문주’(전지현·왼쪽)와 ‘산호’(강동원). 유력 정치인 암살 사건의 배후를 쫓는 스릴러에 여주인공과 특수 요원의 로맨스를 녹였다./디즈니+

국내에서 주목받는 스릴러 드라마들이 연달아 여성 감독 손에서 나오며 최근 눈길을 끌고 있다. 방영 중인 드라마 ‘북극성’(디즈니+)과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SBS)을 비롯해 7월에 나온 ‘S라인’(웨이브), 이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이는 ‘당신이 죽였다’(넷플릭스)까지 모두 여성 감독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그래픽=백형선

일반 극영화와 드라마에서 주로 활동했던 여성 감독들이 최근 대형 작품 및 스릴러 장르로의 약진이 뚜렷하다. 작년 황정민·현빈 주연의 ‘교섭’(임순례)이 여성 감독이 만든 첫 제작비 100억원 이상 영화에 이름을 올린 데 이어, 올해는 김희원 감독이 700억원 대작 드라마 ‘북극성’을 내놨다. “통상 여성의 장르로 여겨지지 않던 스릴러에서 여성 감독의 강점이 드러나고 있는 것”(윤석진 충남대 교수)이다.

로맨스·가족·우정 등 스릴러와 결합

여성 감독의 스릴러는 사건 못지않게 인물 심리가 섬세하게 다뤄지는 점이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앞서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의 변영주 감독의 전작인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MBC)이나 심나연 감독의 ‘괴물’(JTBC) 등이 심리 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기존 스릴러가 굵직한 사건과 잔인하거나 공포스러운 장면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반면 여성 감독의 스릴러는 여성 서사 내지는 내면 심리 묘사를 충실히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작품이 좋은 결과를 내면서 여성 감독에게 기회가 더 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의 주인공 '정이신'(고현정). 과거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수감 중인 이신이 아들의 살인 사건 수사를 돕는다./SBS

방영 중인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역시 심리 연출이 몰입감을 불어넣고 있다는 평이다. 과거의 연쇄 살인마 엄마와 형사가 된 아들의 수사 공조 이야기다. ‘북극성’도 한반도 정세 소재 스릴러에 남녀 로맨스를 녹였으며, 안주영 감독의 ‘S라인’은 히키코모리 주인공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렸다. 이정림 감독의 ‘당신이 죽였다’는 비참한 두 여성의 연대를 그릴 예정이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교수는 “스릴러는 범죄 등을 모티브로 한다는 점에서 여성 감독이 진입하기에 힘든 장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감성과 정서가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장르”라며 “스릴러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여성 연출자 사례가 하나둘 누적되며 업계의 인식이 변화한 결과이기도 하다”고 했다.

OTT 시청자 성비 변화도 한몫

11월에 공개될 '당신이 죽였다'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희수’(이유미)./넷플릭스

TV 드라마에선 마이너 장르였던 스릴러가 OTT를 통해 대중화되고 시청자가 다양해진 것도 여성 감독이 연출한 스릴러가 인기를 얻는 데 영향을 끼쳤다. 김헌식 평론가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넷플릭스 등 OTT 여성 가입자가 늘었다”며 “예전 방식의 잔인하고 거칠기만 한 스릴러는 흥행이 어려워진 점도 있다”고 했다.

여성 감독의 본격 등판으로 국내 스릴러 장르가 발전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사람 간의 관계가 섬세하고 깊이 있게 표현되는 한국형 스릴러들이 탄생하는 데 여성 감독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며 “우리 대중문화 산업에서 여성들이 작품을 만들고 지휘하는 위치에 상대적으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면이 있는데, 앞으로 다양한 시각과 감성의 작품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했다. 드라마 제작 환경이 여성에게 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진화 중인 것이다.

다만 로맨스 등과 결합한 새로운 흐름도 좋지만 스릴러 장르에 기존 팬들이 가지고 있는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헌식 평론가는 “기존 스릴러의 문법과 상호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특정 성별의 서사에 치우치지 않는 보편적 스토리여야 글로벌 시장에서 먹힐 것”이라고 했다.

김민정 기자 mjkim@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