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0.

2024년 9월 북한 평양 지하철 개선역에서 북한 주민들이 게시판에 걸린 노동신문 기사를 읽고 있다. photo 뉴시스
최근 한국 정부가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노동신문'에 대한 열람 통제를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한때 '특수자료'로 묶였던 이 신문이 이제는 미국 '뉴욕타임스'나 중국 '인민일보'처럼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신문이 된 것이다.
사실 이 변화 자체가 세상을 뒤흔들 만큼 극적인 조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간 북한 매체 통제는 상당 부분 상징적이었다. 통일부 북한자료센터나 북한대학원대학교 도서관만 찾아가면 누구든 북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북한 사이트는 차단되어 있지만,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북한학 연구자들은 토르(TOR)나 가상사설망(VPN) 같은 프록시 기술을 활용해 북한 매체를 꾸준히 들여다봤다.
조선중앙통신과 다른 점
북한에서 언론 자유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매체는 국가기관이 발행하며, 매체들 사이에 정치적 성향의 차이도 없다. 모두 '경애하는 김정은 총비서 동지'를 찬양하고, '한국 괴뢰' '일본 군국주의자' '미제 승냥이'를 규탄하는 데 한목소리를 낸다. 차이는 오직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 즉 독자층에서 생긴다.
북한 매체는 대체로 대내·대내외·대외 매체 세 부류로 나뉜다. '조선중앙통신' '조선' '오늘의 조선' 같은 선전지는 대표적 대외 매체다. 대외 매체는 외국인만 볼 수 있고, 북한 내부 주민은 원칙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하다. 2014년 조선중앙통신이 미국 오바마 당시 대통령을 '잰내비(원숭이)'라고 부른 인종주의적 표현도 대외 매체에서만 등장했다. 마찬가지로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북한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지지하는 입장을 처음 밝힌 것도 대외 매체를 통해서였다. 다만 2023년 3월경부터는 이 같은 발언이 대내외 매체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내외 매체는 북한 주민도, 북한 밖에 있는 사람도 동시에 볼 수 있는 매체다. 노동신문이 대표적이다. 순수 대내 매체나 순수 대외 매체보다 독자층이 훨씬 넓다.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주민이 보지 못하지만, 노동신문은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지면을 평양의 당 간부나 함흥의 어느 당원이 함께 읽고 있을 수 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남한 일간지와 비교했을 때, 노동신문의 가장 큰 특징은 '매우 얇다'는 점이다. 원칙적으로 6면짜리 신문이며, 당 대회와 같은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만 20면 이상으로 발행한다. 6면 가운데 5면은 국내 보도이고, 마지막 한 면이 국제 소식을 다룬다. 과거 제5면은 '남조선' 소식을 전하는 지면이었지만, 반(反)통일 노선을 앞세운 김정은은 '남조선'이라는 표현 자체를 금지어로 만들었다. 그 결과 제5면은 현재 일반 국내 보도로 채워지고 있다.
물론 북한에서 노동신문이 유일한 신문은 아니다. 그러나 나머지 신문들과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롯데리아의 양념감자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양념감자를 주문하면 치즈, 양파, 칠리 등 여러 양념을 고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감자는 그냥 감자'다. 북한 신문들도 대체로 '노동신문+양념'에 가깝다.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노동신문+경제',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중앙위 기관지 '청년전위'는 '노동신문+청년정책', 평양 당위원회 기관지 '평양신문'은 '노동신문+평양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핵심 내용은 모두 김정은의 위대성을 강조하고, 김정은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반복하는 것이다.
대내 매체의 대표적 예는 '조선인민군' 신문이다. 이 신문은 해외 수출이 금지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북한 내부에서도 원칙적으로 일반 민간인은 열람할 수 없다. 말 그대로 군 내부용 신문이다. 대내·대내외·대외 매체의 차이는 1970년대 김정일 세습 캠페인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조선인민군'은 김정일을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라고 직접 호칭하며 노골적으로 찬양했다. 반면 노동신문은 '김정일'이라는 이름 대신 '당중앙'이라는 암호명을 사용해 우회적으로만 언급했다. '평양타임스' 같은 대외 매체에서는 1980년까지는 김정일이란 이름 자체가 등장하지 않았다.
"정반대 효과 낳을 수도"
노동신문의 모체는 구(舊)소련의 '프라우다'다. 공산권이 확산되던 시기, 소련은 위성국가들에서도 정부 핵심 기관지 역할을 하는 신문을 창간하게 했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북한의 '노동신문'과 함께 중국의 '인민일보', 베트남의 '년전', 라오스의 '파사손', 쿠바의 '그란마'까지 5개 공산국가의 핵심 당기관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노동신문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단 하나, 바로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혁명활동 소식'이다. 쉽게 말해 '김정은 보도지'에 가깝다. 흥미로운 점은 김정은의 사진이 북한 주민에게 '신분상승 통로'가 된다는 점이다. 김정은과 함께 사진에 찍혀 노동신문에 실리면 그 사람은 곧바로 '접견자'라는 거의 최고에 가까운 사회성분을 얻는다. 이후 평생 취업이나 진급에서 각종 혜택을 받는 일종의 상징 자본을 손에 넣게 된다.
하지만 김정은 사진은 개인숭배의 핵심 상징이다. 이를 훼손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처벌이 뒤따른다. 초상화도 아닌 단순 구호를 훼손했다가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미국 관광객 오토 웜비어의 사례가 잘 알려져 있다. 오토 웜비어는 호텔에 걸려 있던 정치 구호를 떼어내려다 '체제 모독'의 본보기로 2017년 북에서 사망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노동신문이 해외로 수출될 경우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의 얼굴이 여기저기서 훼손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은 거의 확실하다. 이 같은 위험에도 북한 당국은 노동신문의 수출을 허용해 왔다. 외화를 벌고 대외 선전에 활용할 수 있는 현실적 이익을 더 중시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재명 정부의 북한 매체에 대한 통제 완화는 얼핏 보면 친북(親北) 조치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정반대 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더 크다. 노동신문은 북한이 스스로를 어떻게 포장하는지, 그 포장이 얼마나 극단적인 개인숭배와 선전 일색인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문서다.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께서는 한결같이 높이 우러러 모시는 위대한 태양이시다'와 같은 문장들을 직접 읽어 본 사람이라면,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식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과거 필자의 고향인 소련에서 북한 잡지 '조선'은, 오히려 북한을 전형적인 전체주의 국가로 인식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화려한 수사를 동원해 체제를 미화하려 했지만, 오히려 독자들에게 "저 나라는 정말 폐쇄적이고 경직된 사회"라는 인상을 각인시켰다. 노동신문 역시 한국에서 비슷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원하는 정상국가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스스로 전체주의적 실상을 적나라하게 증언하는 증거자료가 될 것이다.
이휘성(표도르 째르치즈스키) 박사·‘김일성 전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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