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잘 하는 것을 따라가는 용기

dalmasian 2026. 1. 26. 07:15

[빛과 소금] 2026.01.24.

           신은정 미션탐사부장
자신의 재능을 십분 활용해 일하거나 봉사하는 것은 효율적이면서도 행복한 일이다. 잘하지 못하는 일로 괜히 괴로워하지 않고, 잘하는 일을 통해 성과를 내며 동시에 의미까지 찾을 수 있으니 말 그대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덕업일치’라 부를 수도 있겠다. ‘덕질’과 ‘업’이 하나로 맞닿아,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것과 관심사를 좇으며 돈을 벌거나 그 일로 효용을 드러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상황이 또 있을까.

지난해 연말 젊은 미술가의 프로젝트를 보며 그런 부러움이 밀려왔다. 손수정 작가는 소록도의 한센인 어르신들을 알게 된 후 식사를 돕고 대화를 나누는 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자신이 잘하는 그림으로 어르신들의 아픔과 상처를 위로하는 2주간의 미술 수업을 구성했고, 그 자리에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전시회까지 열었다. 대학원생으로 재정적 여유가 없었지만 젊은 작가 후원 사업으로 받은 지원금이 큰 힘이 됐다. “지원금을 받지 못했어도 하려고 했다”는 손 작가의 말에는 진정한 행복이 묻어 있었다. 그의 덕업일치는 무거운 소명의식이 아니라 깃털처럼 가볍고 즐거운 모습이었다. 어르신들과 과일을 나누고, 손녀처럼 옛날이야기를 듣는 시간 속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날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 드리는 게 제 유일한 목표였어요.” 자신의 하루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고백처럼 들렸다.

덕업일치는 어쩌면 힘을 빼는 그때부터 시작되는지 모른다. 영화 ‘신의 악단’의 김형협 감독은 신앙인으로서 기독교 메시지를 대중에 전달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묻는 한 기독교 매체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신앙인 감독으로 어떤 영화를 만든다는 게 모든 걸 다 짊어지고 간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열심히 하다 보면 그게 영화에 녹아들고, 그 모습들을 통해 대중과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애초에 이 작품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의 말처럼 덕업일치는 억지로 짊어지는 무거움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열정 속에서 빛을 발한다.

몇 해 전 미국에서 잠시 지내며 교제했던 한 이민 가정이 들려준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막 미국에 도착한 뒤 고교생 자녀가 학교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는 학교를 찾아가 선생님과 면담을 했고, 그 자리에서 한국어 수업을 들어보라는 조언을 받았다. 무언가를 배울 때 부족한 점을 채우려는 게 당연한 이치라 생각했는데, 선생님의 의도는 그와 정반대였다. 잘하는 것을 통해 자신감을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부족한 것을 억지로 메우기보다 이미 가진 강점을 살려 성취감을 느끼게 하라는 조언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장점을 살리기보단 단점을 메우려 애쓰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과정에서 자신감을 잃고 결국 일을 망쳐버린 경험도 있었다. 아이 교육에서도 그러지 않았나 싶어 반성이 된다. 부족한 점만 집요하게 찾아 학원으로 채워 넣는 방식은 의미 없는 고생만 늘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

최근 모임에서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낸 한 선배를 만나 큰 깨달음을 얻었다. ‘중2병’을 겪던 자녀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던 그는 긴 시간을 지나 이제는 편안한 얼굴로 서 있었다. “어떻게 키워야 하냐”는 내 질문에 선배는 되물었다. “아이가 뭘 좋아해?”

그 순간, 속 시원하게 답하지 못했다. 알면서도 외면했거나 아직 모르거나의 중간쯤에 내가 서 있는 듯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달란트와 소명은 누구에게나 분명히 있다. 그러나 세상의 가치에 따라 본질을 흙 속에 묻어두고 다른 것만 바라본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눈앞에 놓인, 잘하는 일을 따라가려는 용기. 그 용기를 먼저 나와 내 아이에게 불어넣어 주려 한다. 그것이야말로 덕업일치의 출발점이며,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올바른 길이 될 것이다.
신은정 미션탐사부장(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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