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갈 길 못 보는 자의 끝은 멸망… 보아야 멈출 수 있다

dalmasian 2026. 1. 31. 07:59

2026.01.31.
[신학자의 미술관 산책] 브뤼헐의 ‘바벨탑’ ‘눈먼 자들의 우화’
그림은 화가가 그린 역사의 자화상이다. 붓질 하나하나에 시대의 맥락이 스며들며 순간을 넘고 영원한 증언이 된다. 그림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시대의 고민, 희망과 좌절을 드러낸다. 르네상스 이후 종교개혁 시기의 작품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찾고자 한다.

피터르 브뤼헐의 작품 ‘바벨탑’. 위키피디아 커먼즈

지구라트 아닌 콜로세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1525~1569)이 ‘바벨탑(The Tower of Babel, 1563)’을 그린 당시 유럽은 중세적 질서가 강하게 남아 있으면서도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결합한 새로운 세계관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저지대(네덜란드 지역)는 이미 15세기 후반부터 도시화·상업화·고학력화가 상당히 진행됐으며, 동부의 농업 지대와 서부의 상업·해운 도시들이 뚜렷이 구분됐다. 16세기 인문주의는 인간성 회복을 통해 문화·정치·교회를 개혁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공유했으며, 인간의 진보 가능성에 대한 공통된 이상을 형성했다. 교육·정치·예술을 개선함으로써 역사를 향상할 수 있다는 진보에 대한 신념이 싹트는 시기였다.

브뤼헐은 그러나 바벨탑에서 인간 문명의 야심이 신앙을 대체하려는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작품은 창세기의 바벨탑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했다. 하지만 그의 바벨탑은 고대 근동의 지구라트보다는 로마제국의 콜로세움을 닮았다. 바벨탑 뒤로 로마의 수로를 연상시키는 교량이 보인다. 로마는 카이사르가 영원히 지속하기를 원했던 도시였다. 로마는 당시 유럽인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문명의 상징이었고 제국의 질서와 기술, 권력의 결정체였다. 브뤼헐은 성경의 바벨탑을 과거에 가두지 않고 자기 시대의 초상으로 다시 그렸다.

바벨탑은 그림 중앙에 있다. 화면 위 끝까지 닿아있는 바벨탑 모습에서 하늘에 닿기 위한 인간의 욕망을 본다. 바벨탑을 건설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동원돼 작업하고 있다. 그런데 탑을 올려다보는 시선은 거의 없다. 그저 자기 구간의 일에만 몰두할 뿐이다. 이 그림이 주는 불안은 혼란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에서 비롯된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탑을 높이 쌓아 하늘에 이르려는 인간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바벨탑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몇 개의 아치는 이미 무너지고 있다. 화면 왼쪽 아래엔 탑의 건설을 지휘하는 왕의 모습이 보인다. 왕은 탑 앞에 서 있지만 탑을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다. 권력은 건축보다 사람들의 인정에 관심이 있다. 성경의 바벨 핵심 동기, “우리 이름을 내자”(창 11:4)는 여기서 시각적으로 완성된다.

바벨탑은 외형적으로는 여전히 웅장하지만 이미 무너지고 있다. 사람들은 탑이 무너지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계속 탑을 쌓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탑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브뤼헐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왜 이렇게 열심히 움직이면서도 방향을 잃어버렸나. 브뤼헐은 스스로 진리로 자처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교만함이 직면하게 될 재앙을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피터르 브뤼헐의 작품 ‘눈먼 자들의 우화’. 위키피디아 커먼즈

그의 또 다른 그림 ‘눈먼 자들의 우화(The Blind Leading the Blind, 1568)’는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사람이면서 눈먼 사람을 인도하는 길잡이들이다.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마 15:14, 새번역)라는 성경 구절을 모티브로 했다. 눈먼자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불안과 두려움에 빠진 인간의 비참함이 보인다.

눈이 보이지 않는 여섯 명이 막대기와 어깨를 잡고 걸어가고 있다. 맨 앞사람은 이미 구덩이에 빠져 있다. 두 번째 사람도 첫째 사람에 걸려 넘어지려 하고 있다. 세 번째부터는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채 뒤따르고 있다. 이들 뒤로 교회가 보인다. 반듯하게 세워진 교회 모습은 사선으로 기울어진 사람들과 대비된다. 진리를 알지 못한 채 스스로 진리임을 자처하고 자신의 삶을 완성할 수 있다는 인간의 교만함이 궁극적으로 맞닥뜨리게 될 모습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없을 때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길을 잃는다고 말한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어그러진 길을 사랑했다’고 표현한다.(렘 14:10) 어그러졌다는 말은 ‘길을 잃는다’ ‘방황한다’는 뜻이다.

두 그림을 나란히 보면 하나는 위로 향하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아무도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바벨탑에서는 위를 보지 못하고, 눈먼자들의 행렬에서는 길을 보지 못한다. 하나는 문명의 오만이고 다른 하나는 집단적 무감각이다. 그리고 이 둘은 언제나 함께 나타난다. 하나는 하나님 없이 높아지려는 시도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 없이 따라가는 삶이다. 하나는 스스로 방향을 정했다고 믿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 앞서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러나 둘 다 동일한 결론에 이른다. 붕괴와 추락이다.

흥미로운 것은 두 그림 모두 하나님의 개입을 직접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물러나 계시고 인간은 자유롭게 움직인다. 인간은 이 자유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를 드러낸다. 오늘의 신앙 역시 이 두 그림 앞에 있다. 우리는 여전히 쌓고 여전히 걷는다. 브뤼헐은 묻는다. 무엇을 보지 못했는가. 신앙은 다시 보는 은혜다. 그리고 보는 순간, 비로소 멈출 수 있다.

             라영환 총신대 교수

<약력> △총신대 신학대학원 △영국 브리스톨대(신학석사) △케임브리지대(신학박사) △현 총신대(조직신학) 교수 △‘반 고흐, 삶을 그리다’ ‘다시 시작할 용기’ 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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