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한심한 K스타트업 지원책

dalmasian 2026. 2. 5. 20:12

[특파원 리포트] 2026.02.05.

지난 1월 미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 전시장에 마련된 한국 통합관. 여러 한국 스타트업이 부스를 차리고 기업을 홍보하고 있다./연합뉴스

미국 샌프란시스코 어느 호텔에서 한 기관이 주관한 K스타트업 데모데이 행사에 갔다. 한국 스타트업 10여 곳이 부스를 차리고 국내외 투자자와 릴레이 미팅을 하고 있었다. K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열기를 취재하고 싶어 투자자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물었다. 그 대표의 답변은 솔직했지만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내수 중심이라 미국 진출 생각은 없다. 지원을 받은 기관에서 비용을 대준다고 하니 왔을 뿐이다.” 미국 시장에 관심도 없는 기업을 데리고 행사를 연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이미 K스타트업 붐이다. 잘해서라기보다는 한국에서 이곳에 관심이 많아서다. 내수 시장은 쪼그라들었고, 창업가라면 미국 등 글로벌 시장 진출이 필수가 됐다. 스타트업 지원 기관이 이곳에 본부를 차리고, 정부도 돈을 많이 쓴다. 올해 정부가 창업 지원에 쓰는 돈은 전년 대비 5.2% 증가한 총 3조4645억원.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열리는 K스타트업 행사를 보면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의문이 든다.

기자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지난해 말 미국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준비 중인 기업 50여 곳을 심층 조사한 결과, 여러 기업이 정부의 창업 지원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먼저 이벤트성 행사에 치중한다는 점이었다. 실질적 매출이나 사업 확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실리콘밸리 견학’, 일회성 행사 개최가 대부분이었다. 혜택은 창업가가 아니라 멘토링 참여 강사들, 중간 브로커가 대부분 가져갔다. 두 번째 문제는 선택과 집중이 없다는 점이다. 많은 스타트업에 혜택을 주려다 보니, 초기 스타트업에 지원이 집중되고, 상당수는 매출을 올리거나 미국 고객을 확보하는 등 성과를 내는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미국에서 이 수준이라면 한국 상황은 불 보듯 뻔하다.

앞으로 이런 우려스러운 광경을 실리콘밸리와 한국에서 더 자주 목격하게 될 것 같다. 인공지능(AI)과 로봇 도입으로 고용이 줄자, 이재명 정부가 고용에서 창업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 국가 창업 시대를 열겠다고 한다.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나 창업하도록 인재 5000명을 발굴해 200만원을 지원하고 ‘창업 오디션’ 행사도 연다. 필요하면 추경 편성도 할 예정이다. “취업이 안 되니, 창업을 하라”는 안이한 발상도 놀랍지만, 더 큰 문제는 일회성 이벤트로 초기 창업자들에게 지원금을 뿌리는 식의 효과없는 정책을 추가 재원까지 마련해 답습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에 말하고 싶다. 있는 돈부터 잘 쓰면 어떨까. 미국 진출엔 관심도 없는 수십 개 스타트업 대표의 여행 경비를 대는 대신 엄격한 평가로 경쟁력 있는 소수의 기업을 선정하면 된다. 적은 돈을 여럿에게 주는 ‘양치기’식 지원 대신 잠재력 있는 기업에 질 좋은 맞춤형 지원을 하자. 이벤트성 행사를 열기보다 애로 사항을 듣고 도와야 한다. 그렇게 제대로 키운 스타트업 하나가 수천, 수만 명의 고용을 만들 수 있다.

강다은 기자 kk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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