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대통령의 '네 탓이오' 질타하는 리더십…국정동력까지 흔들

dalmasian 2026. 2. 13. 13:14

2026.02.13.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월 6일 경남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경남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 미팅에서 질문을 받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유예 종료를 앞두고, 지난 1월 말부터 연일 다주택자를 겨냥한 고강도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2월 6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는 "(서울은) 아파트 한 평에 3억씩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수도권 일극 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그간의 집값 폭등이 정부의 정책 실패가 아니라 '다주택자의 탐욕'과 '구조적 불균형' 탓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비판을 대하는 대통령의 태도 역시 위태롭다. "(집값 안정은) 주가 5000 달성보다 쉽다"는 본인의 주장에 야당이 "그토록 쉬운 일을 왜 여태 해결하지 못했느냐"고 꼬집자, 곧바로 "언어 해독 능력이 유치원생 수준"이라고 받아쳤다. 언론의 지적에도 "억까(억지로 까기)"라고 맞섰다. 합리적 토론이 아니라 비판의 정당성 자체를 거세하려는 공격적 수사(修辭)였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 운영 현장에서는 '책임'의 언어보다 '남 탓'과 '질타'가 더 자주 들려온다. 환율 문제에서도 이런 태도는 반복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원·달러 환율 급등을 두고 "특별한 대책이 있으면 벌써 했겠죠"라며 이를 불가항력적인 글로벌 현상으로 규정했다. 물론 환율은 미국의 통화 정책과 지정학적 불안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대통령직은 변명을 쌓아 올리는 자리가 아니라, 모든 비난과 실패를 기꺼이 끌어안아야 하는 '무한 책임의 종착역'이어야 한다.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재인상 위협과 관련해 야당에서 '정부 책임론'이 제기되자, 이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우주인이 쳐들어오면 같이 힘을 합쳐야 하는 것 아니냐"며 화살을 야당으로 돌렸다. 국무회의에서도 "국회가 너무 느려서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태"라고 했다. 민주당 대표 시절 윤석열 정부의 핵심 법안들을 '원천 봉쇄'했던 이 대통령이 집권 후에는 '국회 탓' '야당 탓'을 하는 모습은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더구나 국민은 '누구 탓인지, 왜 안 되는지'가 아니라 '그럼에도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를 묻고 있다. 구조적 요인을 설명하면서 그 구조 뒤로 숨어버리는 것은 책임 정치가 아니다. 무엇을 먼저 할지, 그 선택의 대가를 누가 치를지를 국민 앞에 분명히 밝히는 것이 책임 정치다.

인사 실패를 둘러싸고도 '책임의 언어' 대신 '남 탓의 언어'가 등장했다. 이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갑질 논란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 어디에 기사라도 났으면 모르겠는데"라고 반발하며 사실상 '언론 탓'으로 돌렸다. 야당이 "그렇다면 청와대에 인사 검증 조직은 왜 존재하느냐"고 반박한 것은 정치 공세 이전에 상식의 문제였다.

안보와 외교에서도 비슷한 화법은 반복된다. 무인기 북한 침투 사건을 둘러싼 언론 비판에 대해 이 대통령은 "바보 같은 사설"이라며 "(북한과) 고자세로 한 판 뜰까요"라고 되받아쳤다. 정책 방향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비판 자체를 무력화하는 공격적 반문이었다. 기자간담회에서 쿠팡 사태와 관련한 질문에 이 대통령이 "범죄 행위자가 중국 사람이라는데, 어쩌라고요?"라고 반박한 장면 역시 국민의 우려를 해소하기보다는 문제 제기를 '혐중(嫌中)'의 산물로 치환하며 논점을 흐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독성 리더십'의 위험 지점

이러한 화법은 리더십 이론에서 말하는 '독성(毒性) 리더십'의 위험 지점과 맞닿아 있다. 미국의 리더십 권위자 진 리프먼 블루먼은 독성 리더를 "구성원에게 해를 끼치면서도 위기감과 분노를 동원해 지지 기반을 결집하는 지도자"로 정의했다.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바버라 켈러먼 교수 역시 "공개적 질타와 책임 전가가 초기에는 '강한 통치'로 포장되지만, 결국 협력과 숙의의 토대를 붕괴시킨다"고 경고했다.

이 대통령의 리더십은 앞선 이론들과 궤를 달리하면서도 미묘하게 겹친다. 트럼프식 분노 정치처럼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선동하지는 않지만, '일하는 대통령' 이미지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질타와 압박을 통치의 유효한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닮은꼴이다. 트럼프의 사례가 보여주듯, '질타 리더십'은 지지층에게 통쾌함을 줄 수 있지만 사회 분열과 정치 불신이라는 부작용 또한 크다.

이 같은 외부를 향한 질타가 내부로 향하는 것도 득보다 실이 크다. 지난해 국무회의와 생중계 업무보고에서 반복된 공개 질책은 정책 실패의 책임을 하부 조직으로 이전하는 '책임의 외주화(外注化)'로 비칠 소지가 컸다. 질타가 일상이 된 조직은 위험 회피와 침묵을 학습하고, 그 결과 정책 품질은 오히려 악화된다.

여론조사 지표는 이러한 위험 신호를 수치로 보여준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부동산 정책 평가는 정부 출범 초기인 지난해 7월에는 긍정(35%)이 부정(25%)을 앞섰지만, 지난 1월에는 부정(40%)이 긍정(26%)을 추월했다. 지난해 12월 전국지표조사(NBS)에서도 국가 경제 상황에 대해 '나쁘다'(60%)가 '좋다'(38%)를 압도했고, 향후 전망 역시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10명 중 6명에 달했다. 아직까지 정권 지지율은 유지되고 있지만, 주요 정책을 둘러싼 민심의 이반은 국정 동력이 내부에서부터 약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민생 경제의 해법을 제시해야 할 대통령이 '남 탓'부터 앞세운다면, 공고해 보이는 지지율도 언제든 아킬레스건으로 바뀔 수 있다.

권력자가 책임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것은 진영을 가리지 않는 권력의 고질적인 자기방어 기제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정책 실패의 원인을 전임 정권과 글로벌 유동성 탓으로 돌렸다.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은 계엄 선포의 책임을 "아무도 만류하지 않았다"며 국무위원들에게 전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보존적 투사'라고 부른다.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과오를 타인에게 떠넘기며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심리적 도피다. 이재명 정부의 '남 탓'과 '질타' 역시 책임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운 권력이 선택한 보편적 퇴행이라 할 수 있다.

리더십의 성패는 타인을 향한 삿대질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성찰에서 갈린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에서는 '책임'의 빈자리를 '질타'가 채우고, '대안'의 공간을 '남 탓'이 잠식하고 있다.

'내 탓'을 말할 용기를 잃은 권력은 책임을 해명하는 데만 몰두하다 책임 그 자체를 망각한다. 국정의 위기를 남의 허물로 돌리고 스스로를 외면하는 시선이야말로, 대통령의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하는 위태로운 신호다.

홍영림 전 조선일보 여론조사 전문기자
Copyright ⓒ 주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