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무가치함과 싸우는 ‘관종’을 위해

dalmasian 2026. 5. 14. 21:24

[김승현의 시시각각] 2026.05.14.

               김승현 논설위원
다음 달 선거에 출마한 정치 신인들에게 ‘모자무싸’를 권한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라는 JTBC 드라마의 약칭이다. 한창 선거 준비에 바빠 주말 드라마를 시청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선 또는 낙선 뒤에 OTT로 보기 바란다. 드라마 제목처럼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게 될 앞으로의 정치 인생에 중요한 지침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드라마 속 영화감독의 불안과 찌질
무모해 보이는 신인 정치인 연상돼
무가치함의 끝에서 멋지게 빛나길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주인공 황동만(왼쪽·구교환)과 변은아(고윤정). 사진 스튜디오 피닉스·SLL·스튜디오 플로우

모자무싸는 정치와는 전혀 관련 없는 드라마다. 대학 영화 동아리 출신 선후배 8인이 영화판의 직업인이 되어 겪는 ‘찌질한 쟁투’가 그려진다. 20년간 시나리오 14편을 쓰고도 영화감독 데뷔를 하지 못한 황동만(배우 구교환)이 주인공이다. 영화판 이야기를 선거판에 갖다 댄 건 정치 신인들의 앞으로의 서사가 황동만의 불안함과 찌질함을 닮아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관심받지 못하면 죽을 듯이 괴로운 ‘관종(관심종자)’에게 제 뜻대로 되는 게 없는 삶은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황동만은 경쟁에서 밀린 질투심, 인정받지 못한 불안감을 주변 사람에 대한 경멸로 푼다. 왕따를 자처하며 40살 사춘기 소년처럼 구는 캐릭터다. 신인 정치인의 무모한 포부와 그에 정비례할 좌절감이 묘하게 닮았다. 당장 인정받기도 어려운 알량한 밑천을 갖고 국민의 행복, 국가의 역할을 운운하는 게 설득력이 있겠나. 흥행보다 쪽박, 당선보다 낙선에 가까워 보이지만, 머리 나쁜 순수함을 미워하기는 어렵다.

그런 무모한 도전자에게 모자무싸는 위로가 되는 주문이다. 초심으로 품은 가치는 틀린 건 없지만, 객기로 비칠 게 뻔하다. 몰상식과 비정상을 상식과 정상으로 바꾸겠다고 정치에 입문했는데, 오히려 자신이 비정상으로 몰리는 상황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당연한 가치가 이렇게 어렵다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걸 안다면 그나마 위로가 되지 않겠나. 누구는 처음부터 손익분기점을 따져가며 시나리오를 고치고 싶었겠는가.

선거에서 이기고 영화 제작에 성공한 이들에게도 무가치함은 예외 없이 닥쳐온다. 강성 지지층에 조아리고 영화제작자에게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다. ‘개딸’ ‘윤어게인’은 상전이 되어 간다. 그러는 사이 유권자와의 거리는 멀어진다. ‘대통령 공소취소 특검’을 잘못이라 여기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여당 의원이 되고, 계엄을 망상이라 내뱉지 못하는 야당 의원이 되는 것이다. 처참한 흥행 성적표를 받고 소주를 들이붓는 영화감독이 차라리 비장해 보인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후보자 등록 접수일인 14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후보자 및 캠프 대리인들이 후보 등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럴 때 다시 모자무싸를 되뇌어야 한다. 초심의 가치를 지키고 잠시 왕따가 되는 길도 감수할 수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각성한 황동만처럼 “무가치함의 끝에서 빛나는 진실을 건져올리겠다”는 패기를 보일 수 있는가. 6월 3일 선거에서 떨어질 수천 명의 후보 중에도 분명 내일의 정치 지도자가 있다. 당선만큼 중요한 건 자신의 무가치함이 덮쳐올 때 계속 싸울 수 있는 의지다.

선거판과 영화판에서 실패는 비일비재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수백만 유권자와 관객의 마음을 얻는 건 잔재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내 마음과 전혀 다르게 돌아가는 그 많은 우주를 몇 번의 악수와 눈인사로 장악하려는 건 도둑놈 심보다. 기나긴 숙성의 시간, 그걸 견뎌낼 신념이 필수다. 성공한 정치인이 되려면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또 싸워야 한다는 얘기다.

그 쉽지 않은 길에 뛰어든 용기를 추앙한다. ‘나는 특별한 존재’라는 몸부림이 과하고 민망해 보여도 그렇게 부딪치고 깨지는 과정을 겪은 이들이 자신의 결핍을 명품 영화로 승화시킨다. 사회적 갈등을 정치적 타협으로 끌어낼 수 있는 정치인의 성장사도 그러할 것이다. 보통 사람은 감당하기 어려운 관종의 바다에서 어금니 꽉 깨물고 버텨야 하는 것이다. “막아 봐라 막아지나”라며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이 시대의 수많은 황동만을 응원한다.

김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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