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2.

버추얼 트레이닝센터에서 인공지능(AI) 기반 무인 자율 굴착기 솔루션 ‘리얼-엑스’를 훈련시키는 모습. 에이치디(HD)현대 유튜브 갈무리
지난달 29일(현지시각) 스위스 투겐의 옛 채석장 자리. 에이치디(HD)건설기계의 22t 중형 굴착기(디벨론 DX225LC)가 산기슭에 도랑을 냈다. 산사태 방지를 위해 암석을 채울 자리였다. 운전석에는 작업자가 없었다. 주변에서 원격 제어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길이 300m, 폭 6m, 깊이 3m 크기 도랑을 파라는 임무를 부여하자, 운전석 지붕에 장착된 카메라와 라이다가 주변 지형을 360도 3디(D) 스캔을 시작했다. 최적의 경로를 선택해 움직이고, 도면과 실제 지형 차이를 파악해 어디를 얼마나 파낼지 결정하고, 흙을 퍼냈다.
현지 건설기업 키바그(KIBAG) 소속 현장소장은 작업 속도와 완성도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독일 토목·건설 전문매체는 “숙련 노동자 부족 문제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토공 및 상차 작업 효율을 높이는 자율주행 장비는 매력적 투자 대상”이라고 전했다. 에이치디건설기계는 “인간 작업자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피로도 증가와 집중력 저하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유인 운전 대비 120%의 생산성을 올릴 수 있다”고 했다.
무인 자율 굴착이 가능한 것은 인공지능(AI) 기반 무인 자율화 솔루션 ‘리얼-엑스’를 탑재했기 때문이다. 작업 지형을 살펴 위치를 잡고 굴착기의 팔과 손 구실을 하는 붐, 암, 버킷의 각도와 힘을 정밀하게 제어해 최적의 경로를 따라 굴착을 한다.
리얼-엑스 개발에 참여한 에이치디현대사이트솔루션 에이아이(AI)융합센터의 장계봉 수석연구원이 스위스 현장에서 실증 작업을 지켜봤다. 장 수석연구원은 한겨레에 “굴착기는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는 건설기계다. 배수로 작업에서는 땅만 파는 것이 아니라 배관도 옮긴다. 암석을 만나면 돌을 깨야 한다. 이런 자율 작업을 하나씩 개발하고 있다. 현재는 땅을 파는 디깅, 트럭에 싣거나 특정 위치로 옮기는 덤핑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세계를 놀라게 한 올해 1월 미국 시이에스(CES) 행사에서는 인공지능이 결합한 건설장비 역시 큰 관심을 모았다. 미국 건설장비 기업 캐터필러가 만든 자율주행 트럭은 전 세계 채석장과 광산에서 700여대가 쉼 없이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미국 일부 작업장에서는 100t급 자율주행 트럭이 교대조 없이 24시간 일한다. 혹한과 폭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업체는 자율주행이 가능한 굴착기·불도저·로더 등도 공개했지만, 굴착 등 복잡한 무인 자율 기능 상용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버추얼 트레이닝센터에서 인공지능(AI) 기반 무인 자율 굴착기를 훈련시키는 모습. 에이치디(HD)현대 유튜브 갈무리
흙먼지 날리는 오프라인 훈련장과 대형 모니터가 갖춰진 버추얼 트레이닝센터가 ‘인턴 직원’ 리얼-엑스의 연수원이다. 숙련 작업자의 굴착 노하우를 데이터화해 학습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붐, 암, 버킷, 선회축 등 구동부에 굴착기 자세와 위치를 측정하는 상태 센서가 설치된다. 인간 작업자가 조종석의 좌우 조이스틱을 이리저리 움직여 기계 팔과 삽을 펴고, 접고, 회전시킬 때 발생하는 제어 신호를 추출한다. 동시에 모터에 걸리는 부하, 실린더 압력 등의 상태 정보도 실시간으로 수집한다.
장 수석연구원은 “조종석에 앉은 작업자가 주변 지형 정보를 시각적으로 인지하고, 이에 맞는 적절한 작업을 판단하고, 조이스틱으로 굴착기를 제어해 작업을 수행하는 순간순간이 작업 시간축을 따라 영상 데이터와 액션 데이터로 수집된다. 이를 반복 학습하면 비슷한 상황에 마주쳤을 때 굴착기 스스로 질문하고 키를 찾는 파이프라인을 내재화하게 된다”고 했다.
가령 무인 자율 굴착기가 카메라를 통해 전방에 돌을 인지하게 되면, 기존에 수집한 인간 작업자의 행동 중 피하거나 파헤치는 최적의 행위를 분석한 뒤, 이에 따른 작업을 실행한다. 마치 신입 직원이 베테랑 선배의 작업을 보고 묻고 설명을 들으며 배우는 것과 같다. 다만 사람에게서 풍부한 작업 경험과 임기응변을 통째로 배운 무인 자율 굴착기는, 앞으로 자기 노동을 스스로 발전시키고 복제해 또 다른 굴착기에 전수하게 될 것이다.
토목·건설업은 수익률이 낮다. 공기 단축 요구가 크다. 숙련 작업자의 육체노동 의존도는 높다. 한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젊은 신규 인력이 줄면서 숙련 작업자의 고령화는 가속하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 자료를 보면 건설업 종사자의 평균 근속 기간은 4.1년(2024년 기준)이다. 지난해 미국 국립건설교육연구센터(NCCER)는 미 건설업체의 94%가 인력난을 겪고 있으며, 2031년까지 건설 인력의 41%가 은퇴할 것이라 예측했다. 세대교체가 지연되면, 기술과 경험은 전수되지 않고 하나의 공사가 끝나는 동시에 증발한다.
소형 건설장비 기업인 두산밥캣은 올해 시이에스에서 인공지능 기반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통해 초보 작업자도 50여가지 장비 기능을 음성으로 조작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인 ‘밥캣 잡사이트 컴패니언’을 공개했다. 작업자가 원하는 작업을 말하면 장비 설정, 엔진 회전수 등을 알아서 최적화해준다. 두산밥캣은 “초보 작업자의 진입 장벽은 낮추고, 숙련된 전문가는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했다. 대표적 일자리 창출 산업인 건설 현장의 인공지능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사람을 어떻게 이동시킬 것인가
올해 1월 나온 한국노동연구원의 ‘AI 기반 제조업 혁신과 고용’ 보고서는 로봇을 썼을 때 숙련 직군별 작업시간 절감률을 조사했다. 물리적 작업이 수반되는 건축·건설 직군은 35∼45%로 비교적 높은 절감률을 보였다. 인공지능이 로봇과 결합하면 이 수치는 더 올라간다.
인공지능, 로봇, 데이터가 결합한 새로운 건설기계와 장비가 건설 현장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를 다루는 새로운 직무도 나타난다. 그만큼 기존 건설기술·기능 자격증으로 커버되지 않는 영역도 넓어진다. 무인·자율 기술은 따라가기 벅찬 속도로 빠르게 고도화하고, 현장의 숙련자·엔지니어는 점점 중간 보조자 역할에 가까워지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지난달 펴낸 700쪽이 넘는 ‘AI 시대가 바꾸는 건설산업’ 연구보고서에서 “숙련 인력은 현장 이탈과 조기 은퇴를 선택하게 된다”고 이 문제를 지적했다. 건설 현장에서 숙련된 작업자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보고서는 “로봇의 작업을 정밀하게 관리하고 작업 품질을 최종 확인하며, 예기치 못한 현장 변수에 대응하는 역할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라고 했다. 작업을 직접 수행하던 숙련자의 역할은 관리, 판단, 책임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전반적인 고용 축소는 불가피한 만큼 이행 속도와 수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보고서 집필에 참여한 김영덕 건설산업연구원 미래산업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기존의 업무 영역, 노동 방식, 노동 시간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전제 아래에서는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감소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인구 감소, 고령화, 생산성 저하 등 우리 경제와 산업이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가 있고, 이런 상황에서 인공지능의 활용은 인력과 생산성을 보완하는 기능을 할 것이다. 다만 단순 노동 영역은 줄어드는 것이 분명한 만큼, 재교육 등을 통해 어떻게 이들을 전환시킬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건설업 특성상 재교육에는 장벽이 많다. 공사가 우선인 건설 인력은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교육 받기 어렵다. 일당 중심 임금 구조여서 교육 참여는 수입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중소 업체의 경우 인력풀이 얕아 교육에 따른 결원을 감당하기 어렵다. 교육 프로그램 역시 취업 연계형이어서 이미 취업 상태인 작업자의 생활 사이클과 맞지 않는다. 보고서는 “사람을 어떻게 이동시키는가에 대한 국가적 설계 부재”를 해결해야 한다며, △교육받은 시간에 비례해 수당을 지급하는 소득 보전형 훈련 △중소 건설사에 대체 인력 투입비용 지원 정책 등을 제시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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