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9.
1년 반 만에 시총 3.2배 급증
프랑스·독일·영국 제치고 5위
AI 시대 승자는 '반도체 국가'
미국·한국·대만·일본 등 질주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종가 기준 9,000선을 돌파하며 장을 마친 18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축하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증시가 1년여 만에 유럽 선진국 증시를 차례로 추월하며 세계 5위 시장으로 뛰어올랐다. 전 세계 산업 지형이 인공지능(AI) 시대로 급속히 재편되면서 반도체 기술 경쟁력이 세계 증시 지형도를 새로 그리고 있다. 과거 석유와 광물을 보유한 자원 부국이 세계 경제를 이끌었다면, AI 시대에는 첨단 반도체 기술을 확보한 이른바 '반도체 부국'이 증시 승자가 되고 있다.
1년 새 몸집 3배 넘게 키우며 톱5 진입

그래픽=송정근 기자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9,000을 돌파한 18일 국내 증시 시가총액은 5조2,000억 달러(약 7,975조 원)를 기록했다. 지난해 1월 초 1조6,000억 달러 수준에 머물던 시가총액은 1년 반 만에 3.2배로 불어나며 글로벌 증시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웠다.
이에 한국 증시는 11위에서 5위로 수직 상승했다. 이 과정에서 세계 인구 규모 1위인 인도, 유럽 경제 선진국인 영국, 독일, 프랑스를 차례로 앞질렀다. 현재 한국보다 앞선 나라는 미국, 중국, 일본, 홍콩 4곳에 불과하다. 금융 허브인 홍콩을 제외하면 인구 5,000만 명 규모의 한국이 세계 3대 경제 대국인 미국·중국·일본과 함께 글로벌 증시 최상위권을 형성한 셈이다.
최근 글로벌 증시를 관통한 키워드는 단연 AI다. 생성형 AI인 챗GPT의 등장으로 AI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AI 학습과 추론을 위한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증했고, 이를 구동하는 핵심 반도체의 가치가 치솟으며 '반도체 대호황' 시대가 열렸다.
AI 혁명의 진원지인 미국 증시의 시가총액은 같은 기간 무려 15조4,000억 달러 불어났다. 미국에는 AI 연산칩 시장을 주도하는 글로벌 1위 기업 엔비디아를 비롯해 브로드컴, AMD, 퀄컴, 마이크론 등 AI 생태계를 이끄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AI 열풍으로 이들 기업의 몸값이 급등했고, 미국 증시의 독주도 이어졌다.
한국도 AI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AI 연산칩이 두뇌라면, 두뇌에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공급하는 기억장치 역할을 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서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두 기업의 주가는 지난해 초 대비 각각 560%, 1,440% 급등했고,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4%에 달한다. 이들 기업 가치가 치솟으면서 국내 증시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갔다.
일본에서도 '일본 메모리 반도체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키옥시아가 도요타를 제치고 일본 전체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대만 시총은 세계 1위 파운드리 TSMC에 힘입어 1년 반 만에 두 배 급증했다. 반도체 굴기를 내세운 중국도 최근 메모리 회사들이 잇따라 상장하며 글로벌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반도체 없는 유럽의 몰락

한 백화점 루이비통 매장을 찾은 시민들이 길게 줄 서있다. 뉴시스
반도체 경쟁력이 부족한 국가는 증시에서도 소외됐다. 대표적인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는 2023년 시총 4조3,000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올해 3조4,000억 달러 수준까지 감소하며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프랑스 증시는 명품주 비중이 크다 보니, AI 반도체 랠리의 수혜를 거의 누리지 못했다. 프랑스 시총 1위인 세계 최대 명품기업 LVMH 주가는 올해 20% 하락했고, 이 여파로 프랑스 증시 상승률도 3%에 그쳤다. 독일(지수 상승률 1.8%), 영국(5.8%), 인도(-9.5%)도 사정은 비슷하다. 독일은 자동차·산업재, 영국은 에너지·금융, 인도는 소비재 중심의 산업 구조다 보니, AI 반도체 투자 열풍에서 상대적으로 비켜서 있다.
AI 시대가 본격화할수록 반도체 경쟁력에 따른 국가별 증시 격차는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AI 반도체는 기술 난도가 높아 후발주자 진입 장벽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는 모습은 100년 만의 홍수 같다"며 메모리칩 공급 부족으로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증권가에서도 AI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각각 최대 61만 원, 400만 원까지 제시하고 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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