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뉴스 읽기] 2026.06.18.
위헌·헌법불합치 법률 24개 미개정
위헌 국보법 조항 34년간 방치
헌법불합치 약사법 24년 유지
낙태죄 입법 공백, 부작용 속출
“국회의 무능, 정부 무관심 때문"

지난 1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2026년 1월 임시국회 1차 본회의에서 2차 종합특검법안이 여당 주도로 가결되고 있다. /연합뉴스
작년 2월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과 관련한 ‘명태균 특검법’이 국회에 발의돼 통과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16일이었다. 민주당이 주도한 이 법안은 당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에서 재표결까지 했지만 결국 부결돼 폐기됐다. 이후 민주당은 명태균 관련 의혹 등을 다 포함시킨 ‘김건희 특검법’을 작년 4월 발의해 41일 만에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둘 다 속전속결이었다.
반면 국회는 헌법재판소가 1992년 위헌 결정을 내린 국가보안법 조항(19조)은 34년간 방치하고 있다. 이 조항은 찬양·고무나 불고지죄의 구속 기간을 일반 형사사건 피의자보다 20일 더 연장하는 내용이다. 과잉 금지 원칙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이 나왔다.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지면 국회나 해당 정부 부처는 법에 어긋난 조항을 삭제하거나 새 조항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해야 하고, 국회는 이를 통과시켜야 한다. 기본적인 책무다. 그런데 이를 34년 동안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직무 유기나 마찬가지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국회가 정치적으로 이득이 되는 법안에는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그렇지 않은 법안 개정엔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쟁점이 복잡하거나 이해관계가 걸린 법안 개정엔 발을 빼는 경우도 있다. 법인의 약국 설립을 금지하는 약사법의 경우 2002년 “약사들로만 구성된 법인에도 약국 개설을 금지하는 것은 적정하지 않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다. 헌법불합치는 바로 위헌을 할 경우 발생할 혼란을 막기 위해 법 개정 때까지 한시적으로 효력을 인정하는 사실상의 위헌 결정이다. 당시 헌재는 개정 시한은 정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약사들이 강하게 반대하자 국회가 24년이 되도록 법 개정을 하지 않아 이 법 조항의 효력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이렇게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는데도 아직 법이 개정되지 않은 상태로 방치된 법률이 지난 15일 기준으로 24개에 달한다. 위헌 법률 13건, 헌법불합치 법률 11건이다. 더 큰 문제는 국회가 법 개정을 방치하면서 혼란과 국민 불편을 초래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픽=김현국
대표적 사례가 ‘해 뜨기 전, 해 진 후’에 옥외 집회를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0조에 대해 헌재가 2009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당시 헌재는 법 개정 시한을 2010년 6월로 정했는데 국회는 그 시한을 16년 넘긴 지금까지 개정을 하지 않고 있다. 개정 시한을 넘기면 기존 법의 효력은 사라져 입법 공백이 생긴다. 결국 집회가 사실상 24시간 허용되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당시 헌재 결정은 집회를 무제한 허용하라는 게 아니었다. ‘해 진 후, 해 뜨기 전’으로 돼 있는 집회 금지 시간이 과도하니 이를 합리적으로 재조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치권이 이를 방치해 집회를 24시간 허용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3년 전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민노총 노조원들이 텐트 20여 개를 설치하고 노숙 집회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경찰은 ‘사생활 평온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집회를 금지할 수 있다’는 다른 조항을 끌어들여 야간 집회를 금지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이 금지해도 심야 노숙 집회를 신고한 노조가 법원에 금지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신청을 내면 법원은 거의 대부분 노조 손을 들어주고 있다.
낙태죄 입법 공백으로 인한 혼란도 심각하다. 헌재는 2019년 모든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의 낙태죄는 불합리하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이듬해 말까지 법 개정을 주문했다. 낙태 허용 임신 기간 등에 대한 법적 기준을 마련하라는 취지였다. 당시 헌재는 ‘임신 22주’를 낙태 허용의 상한선으로 판단했다. 의료계에서도 임신 22주 내외부터 태아가 독자적 생존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회는 개정 시한을 5년을 넘기고도 관련 입법을 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사실상 모든 낙태가 합법화된 셈이다.
그 사이 위험하고 불법 소지가 있는 임신 말기 낙태 수술이 이뤄지는 사례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3년 전엔 서울의 한 산부인과 병원이 매년 낙태 수술을 400여 건 하고 있고, 이 중 약 30%가 임신 말기인 30주가 넘은 경우였다는 병원 내부 관계자의 폭로가 나왔다. 처벌 근거만 사라져 임신 말기 낙태가 암암리에 이뤄지는 것이다.
2년 전엔 36주 태아를 임신 중이던 젊은 여성이 자신의 낙태 이야기를 유튜브에 올렸다가 경찰에 붙잡힌 일도 있었다. 이후 검찰은 의사와 산모에 대해 낙태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해 기소했고 지난 3월 1심 재판부는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에겐 징역 4년, 산모에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범행 책임을 온전히 이들에게 묻긴 어렵다”고 했다. 입법 공백의 책임도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개정 입법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낙태죄 관련 해서도 그동안 정부, 국회의원들이 별도로 형법 개정안을 내기도 했다. 국가보안법 관련 개정안도 여러 차례 제출됐다. 하지만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는 일이 반복됐다.
법안마다 개정되지 않은 이유도 제각각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낙태 문제는 정치적, 종교적으로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문제여서 논의가 제대로 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국가보안법 개정과 관련해 “그동안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와 함께 다뤄지면서 법안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의지’의 문제라고 법조계 인사들은 말한다. 헌재는 2014년 재외국민 투표권을 제한하는 국민투표법 14조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이듬해까지 관련법을 개정하라고 했다. 하지만 국회는 개정 시한을 10년이 넘도록 방치하다 지난 3월 민주당 주도로 재외국민의 국민투표권을 보장하는 국민투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 계기는 우원식 당시 국회의장이 6·3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을 하자고 주장한 것이었다. 개헌을 하려면 국민투표를 반드시 거쳐야 하고, 그러려면 국민투표법 개정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헌법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위헌·헌법불합치 법률이 장기간 방치되는 것은 국회와 정부의 무능과 무관심 때문”이라며 “법 개정 의지만 있다면 못할 게 없다”고 했다. 정치적 득실을 따지기에 앞서 의무감을 갖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대놓고 헌재 결정 무시하는 법 통과시키기도
헌재의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을 국회가 대놓고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작년 12월 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항공안전법 개정안이 대표적인 경우다. 통제 구역 내 무인 비행기구의 비행을 무게와 관계 없이 금지한 이 법안은 사실상 대북 전단 살포를 우회적으로 금지한 것이다.
하지만 헌재는 2023년 9월 ‘대북 전단 금지법’으로 불렸던 남북관계발전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 법은 2020년 6월 북한 김여정이 대북 전단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고 하자 남북 이벤트에 목을 매고 있던 문재인 정권이 서둘러 통과시킨 것이다. 대북 전단 살포 행위에 대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김여정 요구에 따라 우리 국민을 처벌하는 법을 만들어 ‘김여정 하명법’이란 비난까지 받았다. 결국 헌재도 “국가 형벌권의 과도한 행사”라며 “정치적 표현의 자유 제한이 매우 중대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면 그 취지에 맞게 법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와 여당은 항공안전법 개정을 통해 접경 지역에서 무인 기구 비행을 일률적으로 금지했다. 헌재의 위헌 결정도 시대적 또는 사회적 상황이 변하면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헌재가 이 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한 이후 상황이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런데도 헌재 결정을 무시하고 법 이름만 바꿔 대북 전단을 다시 금지한 것이다. 헌법재판관 출신 변호사는 “정권이 스스로 헌재 권위를 무너뜨린 것”이라고 했다.
최원규 논설위원 wk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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