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엄미새’의 이면은 훈훈하지 않다

dalmasian 2026. 6. 19. 09:52

[카페 2030]  2026.06.18.

'엄미새'는 엄마와 유독 친한 자녀를 뜻하는 신조어다. 사진은 커플티를 맞춰 입고 BTS 공연장을 찾은 모녀. /윤수정 기자

친구에게 ‘엄미새’라는 말을 들었다. ‘엄마에 미친 새Ⅹ(사람)’의 줄임말이란다. 엄마와 유독 친한 자녀를 뜻하는 신조어. 순간 ‘마마걸’이 떠올라 울컥했다. 저녁 자리에서 엄마에게 인증 사진을 찍어 보내고, 일주일에 세 번 짧게나마 영상 통화를 할 뿐인데. 휴가철 엄마랑 여행 좀 가고, 소개팅 현황을 시시콜콜 공유하는 게 뭐가 어때서.

그런데 다소 과격하게 들리지만 ‘엄미새’는 칭찬(?)이었다. 요즘 청년들에게 엄마와 친한 것은 자랑이란다. 엄마가 골라 준 옷을 입고 엄마와 핫플레이스를 찾는다. 홍대 거리의 ‘인생네컷’ 부스 안에서는 머리띠를 맞춰 쓰고 포즈를 취하는 모녀(母女)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모녀의 커플 댄스 영상에는 부러움 섞인 댓글이 줄을 잇는다. 과거 ‘마마보이’나 ‘마마걸’이 독립성 결여를 꼬집는 멸칭이던 것과는 정반대 흐름이다.

대중매체의 영향이 적지 않다. 아이돌 블랙핑크 제니 등 이른바 ‘유복하게 자란 티’가 난다는 연예인의 공통점 중 하나는 엄마와의 끈끈한 관계를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엄마와 친구처럼 통화하며 인생의 롤모델로 꼽는 이들의 모습은 결핍 없이 사랑받고 자란 ‘정서적 부유함’처럼 소비된다. 성인이 된 뒤에도 이어지는 부모와의 밀착을 미성숙함이 아닌 안정감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확산한 배경이다.

엄마와 친한 자녀가 늘어나는 현상은 반가운 일이지만 마냥 훈훈하게만 볼 수는 없다. 정서적 밀착의 이면에 팍팍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어서다. 취업난과 경기 불안, 사회의 날 선 평가에서 오는 피로감 속에서 청년들은 새로운 관계 맺기를 부담스러워한다. 연애는 감정 소모가 큰 고비용·고위험 투자가 됐다. 그래서 찾아낸 답이 엄마다. 조건 없는 지지와 무한한 공감을 주는 유일한 존재, 넋두리마저 짜증스러운 기색 없이 받아 줄 사람, 때론 성인이 된 자식의 먹고살 걱정까지 대신 짊어지려 하는 무조건적인 내 편 말이다.

기댈 곳이 가장 원초적인 단위의 사적 관계뿐인 현실은 안타깝다. 이들이 부모 품으로 돌아오는 본질적 이유는 사회에서 겪는 불안을 완충해 줄 안전망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사회가 분담해야 할 청년 세대의 정서적 안전망 역할을, 개별 가정의 부모가 전부 떠안고 있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노후를 준비해야 할 부모 세대가 장성한 자녀의 불안과 생계를 대리 부담하기도 한다. 취업 시장 바깥에서 부모에게 생활비를 받으며 가사나 돌봄을 돕는 ‘전업 자녀’ 개념은 부모와의 밀착이 경제적 공생 관계로까지 확장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부모 세대는 성인이 된 자식이 찾아와 건네는 수다와 밀착을 기꺼이 받아줄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적인 가족 관계가 사회적 공백을 영원히 대신할 수는 없다. 가족에게 모든 부담을 지우는 이 구조를 개인의 선택이나 유행으로만 치부한다면, 청년 세대의 사회적 자립과 온전한 성장의 길은 더 멀어질지 모른다.

조유미 기자 youand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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