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다섯 달란트와 한 달란트

dalmasian 2026. 7. 19. 19:07

[임보혁 기자의 ‘예며들다’]
2026.07.18.
2026 북중미월드컵 그리고 홍명보 감독
홍명보(왼쪽)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2026 북중미월드컵 32강 진출 실패의 책임을 지고 지난달 29일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훈련장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홍명보(왼쪽)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2026 북중미월드컵 32강 진출 실패의 책임을 지고 지난달 29일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훈련장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국민일보DB

이번 2026 북중미월드컵에서 우린 영웅의 몰락을 지켜봤다.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 이야기다. 20여 년 전만 해도 그는 한국 축구의 영웅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 8강 스페인전. 당시 선수였던 홍 감독은 승부차기 마지막 다섯 번째 키커로 나서 골망을 흔들었다. 한국 축구 사상 첫 월드컵 4강행을 이끈 역사적인 골이었다. 골을 넣고 환호하던 그의 모습은 전 국민의 뇌리에 각인됐고 애국가 영상에도 삽입될 만큼 한국 현대사의 상징적인 장면이 됐다.

하지만 지금 그의 처지는 정반대가 됐다. 일부에선 애국가에서 그 장면을 빼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단지 월드컵 32강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생각이 들면 위로를 보냈을 터다.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음에도 축구 팬들은 대표팀을 위해 홍 감독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조별리그가 거듭될수록 경기력은 실망을 안겼고 전문가들은 전술적 색깔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무엇보다 팬들의 분노를 키운 것은 탈락 이후의 태도였다. 변명처럼 들리는 기자회견과 회견장을 나서며 주머니에 손을 넣은 모습은 국민이 느낀 실망을 분노로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성경 속 달란트 비유가 떠올랐다. 마태복음에서 한 주인은 여행을 떠나며 종들에게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그리고 한 달란트를 맡긴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은 즉시 장사해 갑절의 이익을 남겼지만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땅에 묻어두었다가 그대로 돌려준다. 주인은 앞선 두 종에게는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라고 칭찬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한다.

우리는 흔히 이 비유를 성공의 원리로 이해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은 주어진 재능의 양이 아니라, 맡겨진 것을 신실하게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책망의 이유도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주인을 신뢰하지 못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 감독은 선수로서는 천재적 재능을 발휘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그 정점은 2002 월드컵이었다. 당시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하게 월드컵 브론즈볼도 수상했다. 하지만 그 명성에 안주했을까.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이후 줄곧 현대축구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전략의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스포츠계에서 ‘게으른 천재’의 몰락은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타고난 재능이 평생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재능이 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이며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착각하는 순간, 그 재능은 조금씩 자신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영웅도, 천재도 예외가 아니다.

반대로 평범한 사람들은 어떨까. 세상에는 다섯 달란트를 가진 천재보다 한 달란트를 가진 평범한 사람이 훨씬 많다. 어쩌면 달란트 비유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향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가진 것이 적어 보여도 감사함으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또 다른 길을 열어주신다. 더 큰 달란트를 주셔서가 아니라, 작은 충성 위에 더 큰 사명을 맡기시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달란트 비유는 천재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하루를 살아내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복음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를 묻지 않으신다. 다만 우리에게 맡겨진 것을 얼마나 충성스럽게 사용했는지를 물으신다.

세상은 영웅의 몰락을 얘기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이름 없는 한 달란트의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나라를 세워 가신다. 어쩌면 진짜 성공은 다섯 달란트를 갖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한 달란트를 끝까지 충성스럽게 사용하는 데 있는지 모른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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