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6.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전경. photo 고려아연 홈페이지
고려아연이 미국과 공동 투자 방식으로 미국 현지 핵심광물 제련소 건설에 착수한 가운데, 고려아연이 보유한 국가핵심기술이 미국으로 유출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고려아연의 국가핵심기술은 2차전지와 아연 등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쓰이는 기술들로, 정부로부터 법적 보호를 받고 있다. 미국에 설립 예정인 제련소 역시 니켈, 은, 아연 등 동일한 광물들을 제련할 목표를 세우고 있어, 고려아연의 독자 기술을 자연스럽게 미국이 취득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광물업계에서는 '사실상 우리나라가 일방적으로 기술을 뺏기는 상황'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고려아연이 보유한 두 개의 국가핵심기술은 '하이니켈 전구체' 가공기술과 '헤마타이트' 공정 기술이다. 국가핵심기술은 국내 주력산업에서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아 해외로 유출될 경우 안보와 경제 발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기술을 뜻한다. 그중에서도 정부 지원을 받은 기술은 산업통상부 산하의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사전심의를 거쳐 산업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수출이 가능하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의 핵심 기술은 대표적으로 반도체 11개, 자동차·철도 10개, 철강 9개, 조선 8개, 정보통신 7개 등을 포함해 총 76개가 지정돼 있다. 하이니켈 전구체 기술과 헤마타이트 공정 기술은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보호 대상에 해당한다.
이 경우 두 기술은 산업부 장관의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되고, 사전 신고와 산업기술보호위의 심의만 거치게 된다. 타 기술들에 비해 기업 입장에서 해외 반출이 더 용이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고려아연 측은 주간조선에 "공정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어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그 기술들이 (미국에서) 쓰인다고도 볼 수 있다"며 "아직 명확한 사용 여부는 답변하기 이르고 세부적인 내부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하이니켈 전구체 가공 기술은 전기차 배터리 양극재의 핵심 중간재인 전구체를 설계·제조하는 공정 기술을 말한다. 고려아연이 보유한 이 기술은 2023년 9월경 정부로부터 국가핵심기술로 인정받아 해외 유출 보호 조치를 받고 있다. 전구체는 니켈·코발트·망간 등 금속 원료를 정밀한 비율로 배합해 입자 크기와 구조를 제어하는 단계로, 사실상 배터리 성능을 좌우한다.
이 과정에서 니켈 함량이 80%를 넘는 하이니켈 전구체는 에너지 밀도를 크게 높일 수 있어 전기차 주행거리 확대에 필수적인 기술로 평가된다. 니켈 비중이 높아질수록 열 안정성과 수명 저하 문제가 발생해, 이를 제어하는 공정 기술이 기술 경쟁력의 핵심으로 꼽힌다. 공정 미세제어에 실패할 경우 화재 위험이나 성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 진입 장벽도 높다. 이 때문에 고려아연이 보유한 하이니켈 전구체 가공기술은 단순한 소재 제조를 넘어 배터리 안전성과 직결되는 전략 기술로 분류된다. 정부가 이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한 배경에도 이러한 산업·안보적 중요성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하나의 핵심기술인 헤마타이트 공정 기술은 국내에서는 고려아연만이 독자적으로 보유하고 운영할 수 있는 기술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월경 산업부가 핵심기술로 지정한 이 기술은 포스코 등 국내 기업들을 포함해 타 국가의 철강 기업들도 구현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헤마타이트 공정 기술은 아연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철 등 불순물을 안정적으로 제거하고 회수하는 기술이다. 철은 아연의 회수율과 품질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이를 어떻게 분리·제어하느냐가 공정 경쟁력을 좌우한다. 헤마타이트 공정은 철을 산화철 형태로 침전시켜 제거하는 방식으로, 저온·저압 조건에서 안정적인 처리가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기술은 공정 조건 제어가 까다로워 장기간의 현장 운영 경험과 기술 축적 없이는 구현이 어려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같은 기간에 고려아연은 기존 제련에 비해 제조 원가를 60% 낮출 수 있는 '안티모니 메탈 제련 기술'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줄 것을 신청한 바 있다.
니켈·아연 공정법, 美서 그대로 활용
문제는 고려아연이 미국에 짓기로 한 제련소에서도 두 기술을 활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현실화될 경우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와 관련한 핵심기술이 그대로 미국으로 넘어가는 셈이다. 미국이 쌍수를 들고 제련소 건설을 환영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이와 관련해 "미국을 위해 또 하나의 거대한 성과를 이끌어낸 트럼프 대통령에게 축하를 보낸다"라고 말한 바 있다. 현재 미국은 배터리, 반도체, 방산 분야 등에서 전략광물의 안정적 확보를 국가전략과제로 설정한 상태다. 희토류와 철광석을 포함한 다수의 핵심 광물은 중국이 대부분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고려아연의 기술력을 자국 경쟁력 강화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하이니켈 전구체 기술과 헤마타이트 공정은 타 국가의 철강 기업들도 시도하는 기술이지만 완성도 측면에서는 고려아연이 독보적이라는 평가다.
타 기업들의 경우 '원료 추출-정제-전구체 확보'까지의 과정을 분절적으로 진행해야 하지만, 고려아연은 이를 한 과정으로 연결해 설계하는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헤마타이트 공정에 있어서도 일본과 유럽 등 제련사들이 시범 운영에 그친 것과 달리 저온·저압 조건을 유지하며 장기간 동안 상업적 제련에 성공한 것은 고려아연이 유일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몇 년간 미국이 타국을 대상으로 자국 진출을 유도하고 기술을 차용하려 한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전기차 공급망 재편 정책 등을 골자로 해외 기업들에 미국 내 투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산업 동맹을 구축한다는 명분하에 수평적 해외 직접투자(FDI)를 동맹국들에 권유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생산 공정과 기술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미국으로 분산된다는 지적이 수차례 나온 바 있다. 앞서 대만에서도 TSMC의 미국 애리조나 현지 공장 건축 계획이 발표됐을 당시, 자국 경쟁력 저하에 대한 우려가 연달아 나왔다. 또 해당 시기에 미국 기업 인텔은 TSMC의 전 임원 뤄웨이런(Wei Jen Lo)을 영입하기도 했다. 이에 TSMC는 "명백한 배신이자 기술 유출 시도"라고 반응하며 해당 임원과 기업 일부 관계자에게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현 고려아연의 미국 진출과 관련해서도 국내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이 노리고 있는 부분은 한국과의 산업적 협력이나 동맹이 아닌, 한국의 독자적인 기술력"이라며 "기업(고려아연)은 물론 정부 입장에서도 그냥 내어주는 것은 손해에 가깝다"고 말했다.
정부가 관세협상에서 이점을 가져오기 위해 해당 기술들을 대가로 준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철강업계 A 기업 소속 한 임원은 "경영권 분쟁을 이어오고 있는 고려아연과 영풍그룹 간의 다툼이 미국 진출을 촉발했을 수도 있지만 정부의 입김도 있었을 것"이라며 "전략 광물과 제련 분야를 관세협상 카드로만 사용했을 수도 있다"고 평했다.
현재까지 고려아연과 산업부 측은 기술 유출 우려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는 않은 상황이다. 앞서 산업통상부 김정관 장관 측은 "고려아연의 한·미 합작 투자가 양국 희귀광물 공급망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고려아연 측 역시 "미국 제련소 건설은 미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과 상호 신뢰에 기반한 것"이라며 "신속한 핵심광물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빠르게 제련소를 건설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두 기술의 수출 신고 여부에 대해 산업부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측은 "원칙적으로 알려드릴 수 없다"고 답했다.
이황희 기자 hwanghu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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