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9.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특수공무집행방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사건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photo 뉴스1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검사 시절 함께 일했던 사람들 중에서는 "윤 전 대통령이 분노조절장애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모욕감을 느낄 정도로 혼이 났다는 에피소드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렇게 한번 당하고 나면 다시는 그 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물론 그런 모욕감을 견디고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검사와 수사관을 가리지 않고 가깝게 지냈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사실 그런 문화는 검찰이나 언론사 같은 수직적 관계를 중요시하는 직장에서나 통용됐다. 요즘은 검찰이나 언론사도 그런 식으로 하면 당장 직장 내 괴롭힘으로 문제가 된다. 윤 전 대통령이 화를 냈다는 에피소드는 대통령이 돼서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던 한 정치인은 "혼이 나는 사람 중에 장관이나 참모는 교수, 법조인, 정치인으로 경력을 쌓았던 사람들인데 그렇게 깨지고 나면 다시는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그럴 때는 이렇게 해야 화가 풀린다"며 나름의 대처법을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지난 1월 5일 유튜브로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재판을 잠깐 볼 일이 있었다. 계엄 당일 국무회의와 관련한 윤 전 대통령 변호인단 쪽 질문이 이어지던 중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연결해서 한두 가지만, 피고인이 직접 (질문) 하겠습니다"라며 직접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신문에 나섰다. 이어폰으로 신문을 듣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 화면 쪽으로 눈이 돌아갔다. "근데 총리하고 국무위원들이 와가지고 얘기하는데, 사실은 좀 최소한의 정무 감각이라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면, 오히려 대통령한테 외교관계가 어쩌니 민생이 어쩌니 얘기할 게 아니라 '대통령님 이거 계엄 선포해 봐야 하루이틀이면 저 사람들이 달려들어갖고 계엄 해제할 텐데 그러면 대통령님만 유세 떠는 게 되고 좀 창피스러울 수 있고, 오히려 야당한테 역공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얘기를 사실은 나도 기대하고 그럴 수 있는 상황인데 그런 얘기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날의 상황을 잘 알 수는 없지만, 참모들이 말을 할 수 없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고 본다. 그날의 국무회의에서 정말로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왜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느냐다. 나는 그 이유가 정무 감각의 부족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공기에 있었다고 본다. 의견을 냈다가 모욕을 당하고, 질문을 던졌다가 혼이 나고, 인격까지 부정당하는 일을 반복해서 겪으면, 사람은 더 이상 말을 고르지 않는다. 말을 삼킨다. 침묵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후보자가 보좌진을 향해 폭언을 할 때 보좌진이 별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본다. 리더가 분노라는 손쉬운 도구에 기대어 조직을 운영할 때 돌아오는 것은 침묵이다. 침묵의 원인을 밖에서 찾을 때 관계는 돌이킬 수 없고, 조직은 멍들어 간다.
박혁진 편집장 spaingog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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