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퇴장의 타이밍

dalmasian 2026. 1. 21. 21:08

2026.01.02.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2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0회 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감사원장(김호철) 임명동의안 투표를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photo 뉴스1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지만 현실에서 가야 할 때를 분명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서 사퇴한 김병기 의원은 한때 민주당 내에서 '국가정보원 인물사전'으로 불렸다. 20대 국회에서 처음 의원이 된 그에게 같은 당 인사들이 국정원 내부 인사들에 대해 물으면 그야말로 '척척' 대답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가 국정원 인물사전이 된 건 1987년 국정원(당시 안기부) 입사 후부터 거의 대부분을 국정원 인사 파트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2013년 국정원 인사처 처장을 하다가 얼마 뒤 정치에 입문했다.

인사 파트에서 오래 일했던 사람들은 여러 인간 군상을 접하기 마련이다. 보안이 생명인 국정원이라고 다르지 않다. 국정원이 어려울 땐 늘 인사문제가 배경에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원세훈 전 원장 시절에는 내부 권력투쟁으로 인해 온갖 잡음이 국정원 밖으로 흘러 나왔다. 덕분에 언론에는 호시절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김규현 원장을 교체했을 때도 내부 인사 문제가 원인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인사 파트에 오래 근무하면 통상 입이 무거워지고, 처신에 신경을 쓰게 된다. 특히 주변 사람들을 조심스레 대한다. 인사 관련 불상사는 언제나 주변인의 입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김 의원도 처음 국회의원이 됐을 때는 입이 무겁고 신중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좌진과의 관계도 좋았던 것으로 동료 의원들은 기억한다. 김 의원이 의혹의 진원지로 전직 보좌진을 지목했을 때 그의 초선 시절 보좌관들과의 관계를 기억하는 동료 의원들은 의아해했다. 보좌관들을 적으로 돌린 김 의원은 여러 의혹에도 버티다가 결국 1억 공천헌금 의혹이 불거지자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의 퇴진 과정은 정치적으로 보면 익숙하다. 하지만 인사를 다뤄온 사람의 선택으로 보면 아이러니한 결말이다. 수많은 사람의 승진과 좌천, 이동과 퇴장을 지켜봤을 그가 정작 자신의 퇴장에서는 가장 불리한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본인은 억울한 것이 많고, 그렇다면 진실은 드러날 것이다. 우리 정치는 늘 버티는 기술에는 능했지만, 떠나는 일에 서툴렀다. 가야 할 때를 고민하는 건 정치인 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크고 작은 '인사'에 얽힌다. 회사를 옮길 때, 인간관계를 정리할 때, 어떤 역할에서 내려올 때, 심지어 한 시절을 접을 때도 우리는 매번 퇴장의 순간과 마주한다. 다만 정치의 영역이 아닐 뿐, 본질은 다르지 않다. 어쩌면 아름다운 뒷모습이란 대단한 결단이 아니라, 조금 일찍 떠나는 용기에서 만들어지는지도 모른다. 정치인의 퇴장처럼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남진 않겠지만 나와 우리의 퇴장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는 남는다. 그들의 기억 속에 남는 건 어쩌면 자리의 크기가 아니라 떠나는 태도일지 모르겠다.

박혁진 편집장 spaingog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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