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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한국 정치는 공천 장사가 망쳤다"

dalmasian 2026. 1. 23. 22:30

2026.01.23.
"지선 참패할 것, 부산도 넘어갈 판
선거 져도 좋다던 박근혜 전철 밟나"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더불어민주당 강선우·김병기 의원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간단하다. 지역구 지방의원과 자치단체장 공천권을 쥐고 매관매직을 했다는 것이다. 전략공천이라는 명분으로 밀실에서 후보자를 결정하던 정치문화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오래전부터 이 같은 일을 예견한 인물이 있다. 정치 여정 내내 '상향식 공천'을 숙원으로 여겼던 김무성(74) 전 새누리당 대표다.

김 전 대표는 현역 시절 친이·친박 등 계파 정치의 대표격 인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완전국민경선과 안심번호 여론조사 등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희대의 '옥새 파동'도 정부·여당의 공천 개입에 반발해 생긴 사건이다. 주간조선과 만나 "한국 정치를 망치는 것이 바로 이 공천 장사"라고 목소리를 높인 그는 최근 정치 현안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강경 노선을 유지하는 데 대해 "이대로면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것"이라며,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한 제명 처분은 과하다는 의견도 스스럼없이 냈다. 그를 지난 1월 20일 서울 상암동 조선뉴스프레스 회의실에서 만났다.

"초선 때부터 상향식 공천"

- 세간이 강선우와 김병기로 시끄러운데. "여러 취재 요청이 들어오지만 일절 하지 않았다.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당신이 '공천 이야기를 해달라'고 콕 집었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부정은 있기 마련인데 특히 권력이 있는 곳에는 필연적이다. 그래서 삼권분립처럼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가 있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대통령제 국가 중 대통령의 힘이 제일 센 나라다. 이렇게 강한 권력이 공천권을 행사하니 부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직접 돈을 받지야 않겠지만, 큰 권력이 내려오면서 중간에 있는 자들이 돈을 받는다. 그게 우리 정치다."

- 부산에서만 6선을 했는데, '하는 짓'들이 훤히 보이겠다. "뻔하지. 지방선거는 국회의원들의 밥그릇이다. 나는 초선 때부터 전부 상향식 공천을 했다. 나는 다른 건 자랑할 게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자랑할 수 있다."

- 어떻게 했나. "다 여론조사를 돌리게 했다. 출마자들을 지역별로 모두 모아 내가 회의를 주재해서, '나는 지명하지 않는다. 여론조사로 결정하자고 합의하라. 아니면 기회를 주지 않겠다'고 했다. 여론조사를 하면 돈이 들어가지 않나. 그 돈을 N분의1로 내자는 합의를 낸 뒤 결과에 따라 공천했다. 그러니까 여태 아무 잡음이 없잖나. 물론 돈 싸들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한번은 구청장 시켜달라고 트렁크에 1만원짜리를 가득 싣고 오더라. 차 열쇠를 놓고 갈 테니 알아서 하라고. 내가 '도로 안 가져가면 고발하겠다'고 해서 보냈다."

- 명태균 같은 여론조사 업자도 있다. 부작용이 없지 않을 텐데. "그건 상향식 공천을 반대해서 돈 벌겠다는 놈들의 핑계다. 세상에 무슨 제도든 완벽하진 않다. 가능성의 문제지. 과거에는 대의원 투표를 했다. 몇백 명에 불과한 선거인단이 투표하면, 그 절반만 매수하면 당선되는 것 아닌가. 그러니 범위를 넓혀야지. 그게 오픈 프라이머리고."

- 지금도 그게 해답이라고 보나. "공천이란 그 지역에서 누가 가장 경쟁력이 있는지 찾는 거다. 그럼 유권자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 2015년 당 대표 당시 상향식 공천을 일부는 관철했다. "당 대표 선거 때 공천권을 권력자로부터 빼앗아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는 게 내 슬로건이었다. 그것 때문에 당선됐으니 약속을 지켜야 할 것 아닌가. 당원 50%, 국민 50% 비율 여론조사로 경선 룰을 정했다. 책임당원 20%, 일반당원 30%, 국민 선거인단 직접 투표 30%, 여론조사 20%."

- 반발이 컸다. "친박들이 나한테 엄청난 모욕을 하며 달려들었다. 김무성이 자기 당 만들려고 이런다고. 박 대통령은 야당과 내가 선거법을 바꿔 안심번호를 도입하기로 합의하자 홍보수석을 통해 '그런 거나 하고 다닌다'고 나를 매도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공천으로 덕 본 일 없다"

김 전 대표는 2015년 7월 새누리당 대표가 된 이후 여야가 총선 공천을 개방형 국민경선 형태로 같은 날에 하자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야당(새정치민주연합)과 합의도 불발됐고, 무엇보다 청와대가 반대했다. 결국 김 전 대표는 '안심번호 여론조사 공천'으로 물러섰지만, 청와대는 공천권을 행사하려는 의지를 놓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파면 뒤 이때의 공천 개입으로 선거법 유죄를 받았다.

- 야당의 반응은 어땠나. "2015년 추석 때 부산에 내려간 문재인(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과 만났다. 선거법을 바꿔 안심번호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전화번호가 비공개되는 안심번호 여론조사라는 개념이 처음 만들어진 거다. 그런데 문재인 본인도 당 대표가 될 때 공약이 오픈 프라이머리였으니, 내가 그것도 받아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이 '우리 당에는 한 30% 정도 쳐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 된다'는 거다."

- 문 대통령이? "그렇다. 이건 추석보다 약간 앞의 일이다. 내가 주선한 청와대 회담(2015년 3월 17일, 박근혜·문재인·김무성 3자 회담)이 있었거든. 회담이 끝나고 발표문을 만들 때 문 대표를 불러 구석에서 이야기를 했더니 그러더라.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누가 누구를 쳐내나. 무슨 자격으로."

- 결국 청와대는 이한구 의원을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찍었다. "집단지도체제 시절, 내 편을 들어주는 건 김을동 의원뿐이었다. 친박 일색 최고위원들이 재촉하기에 어쩔 수 없이 이한구를 의결했다. 그랬더니 첫 일성이 '당 대표도 공천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다. 공천 파동은 그날로 시작된 거다. 공천을 누굴 주니 마니 하는 것부터 취지에 안 맞는 것이었다."

- 살생부의 존재도 나돌았다. "다 사실이다. 청와대의 누군가 '공천 살생부 42명 명단을 입수했다'며 왔다. '이 XX들, (명단에 있는 사람들이 대통령한테 잘했는데) 나쁜 놈들입니다'라면서. 명단에 고(故) 정두언 의원이 있더라. 본회의장에서 앉혀 놓고 '저쪽에서 이런 걸 만들었는데, 내가 막을 테니 걱정 마라'고 했다. 그런데 정 의원이 이를 언론에 터뜨리며 내가 다 뒤집어썼다. 하지만 내게 정보 준 사람을 보호해야 하니 입을 다물었지."

- 청와대에서 공천권을 어떻게 요구했나. "청와대에서 '할매(박근혜)가 퇴임 이후에 안정적으로 힘을 써야 안 되겠습니까?' 하면서 대구·경북 공천권을 달라더라. 안 된다고 했더니 대구만이라도 달라더라. 퇴임하는 대통령이 공천권을 행사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

- 대통령은 국정 운영에 대한 책임을 혼자 지는 입장인데, 현실적으로 공천에 관여하지 않을 수 있나. "우리 헌법이 자유민주주의인데, 대통령이 공천에 개입하는 게 민주주의인가?"

- 계파 정치의 장본인이라는 평도 듣는데. "나는 계파를 만든 일이 없다. '무대계'라는 이름 들어본 적 있나? 옳은 일을 하면 다 따라오게 돼 있는데, 왜 일부만 데리고 가야 하나?"

- 공천에서 덕 본 일이 없나. "나처럼 공천으로 고생한 사람이 없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두 번 다 공천을 못 받았다. 이 전 대통령 때는 '친박 학살'이 있었지만 친박 무소속 돌풍을 일으켜 당선됐다. 그다음 박근혜가 비상대책위원장이 되니 또 '친이 학살'을 했다. 35석을 데리고 나오려다 우파 분열을 우려해 불출마했다. 그래놓고 대선 지휘를 맡기더라."

- 공천에 영향을 준 적도 없나. "나는 가까운 사람들 한 명도 공천에 영향을 미친 적이 없다. 지금까지도 의리가 없다고 욕을 먹는다. 나는 '개판' 만든 일 없다."

- 새 정부 첫 보궐선거에서 지역구를 옮겨 당선됐는데. "공짜로 얻은 게 아니다. 박 전 대통령 취임식 날 저녁 외빈들을 위한 파티에 오라더라. 퇴장할 때 내가 마지막으로 대통령과 인사했다. 손잡고 악수하면서 이랬다. '나 오늘 밤에 영도 내려갑니다. 공천 달라는 말 안 하겠습니다. 경선을 붙여주시오. 안 그러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내가 영도에 내려가니 기존 예비후보들이 모두 포기했다."

- 그래도 한때 '친이'나 '친박'으로 분류됐다. "언론에서 이름을 붙인 거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공천 못 받아 무소속 당선됐다. 복당했더니 촛불정국 수습할 정무장관을 하라고 하더라. 안 했다. 얼마 안 있다가는 원내대표를 하라더라. 그건 했다. 코미디 아닌가? 자기가 공천 안 주더니 장관도 주고 원내대표도 주고. 박근혜 대통령 때는 대표로서 탕평 인사를 하려고 대통령이 귀여워하는 인물을 대변인을 시켰다. 그랬더니 청와대가 '배신자'라며 그 사람을 다음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웃기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망하지."

- 박 전 대통령과는 왜 그리 안 좋았나. "박근혜 당선의 공과로 따지면 나는 2, 3, 4, 5등도 없는 1등이다. 그래도 굽신거리지 않았다. 1937~1938년생 선배들이 열대여섯 살 밑의 박근혜에게 박정희 대하듯이 하더라. 나는 고개 안 숙였다. 정치적 동지로서 대통령 만들어줬는데 왜 그래야 하나. 다만 박근혜는 예의 바른 사람이고, 나는 직선적인 경상도 사람이다.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 한번 '가시나'라고 했더니, 김무성이 맨날 그러고 다닌다고 주변에서 모함을 하더라. 거기에 넘어가 나를 경계하니 미련 없이 그냥 떠나버린 거지. 2009년 세종시 문제로 부딪친 게 결정적이었고."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영입 제안? 전화 한 통 없었다"

- 거대 여당을 어떻게 견제해야 하나. "우리가 잘못해서 선거에 졌으면 우리가 소수 야당이란 걸 인정하고 타협해야 한다. 10개의 악법 중에 3개라도 빼야지. 그런데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으로 주장만 하고 퇴장하지 않나. 그럼 10개가 통과되는 거다."

- 국회선진화법을 강하게 반대했었다. "오히려 선진화법이 없을 땐 타협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다수결의 원칙만 적용된다. 예전엔 입법 횡포라는 게 없지 않았나. 지금은 악법이 막 통과되고 있다. 다수결도 민주주의지만 합의 민주주의가 한 단계 높은 차원이다."

- 선진화법 이전엔 어떻게 타협을 이끌었나. "나는 여당 원내대표였다. 야당의 체면을 살려줘야지. 정치라는 게 그런 거 아닌가? 박지원(당시 원내대표)의 체면을 내가 다 살려줬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화해 '판판이 당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실리를 다 취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챙길 걸 챙기니 나중에는 대통령이 극찬하더라. 또 이 전 대통령은 수시로 전화해서 막걸리 한잔하자던 사람이다. 자주 만나서 대화를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안 만나줬고…."

- 야당 의원들하고도 막걸리로 만났다. "그렇지. 대표적인 게 한·EU FTA(자유무역협정)를 극적으로 합의 통과시킨 거다. 내가 아니면 안 됐다. 이게 안 되면 한·미 FTA도 안 되는 거였다."

-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박지원 의원은 최근 '청와대가 김무성도 영입한다'는 이야기에 반대한다더라. 입각 제의를 받은 적 없나. "그런 건 나한테 전화 한 통화라도 놓고(하고) 해야 할 것 아니냐고."

- 한 번도 없었나. "나한테는 그런 전화 할 엄두를 못 낸다."

-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정치를 한다'는 측면에서는 좋게 본다. 좌파 정책은 큰 잘못이다. 국가 운영에 제일 중요한 게 경제 성장이다.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 등은 경제를 퇴보시키는 것이다. 삼권분립 정신을 훼손시키고 사법부를 침해하는 입법을 하는 것도 잘못됐다. 그대로 못 갈 것이다. 역사가 증명하는 자멸의 길이다."

- 정치를 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대화를 자꾸 하려고 하니까. (다만) 대통령도 지금 경기동부연합하고 민주노총에 업혀 대통령이 됐는데, 그 눈치를 안 볼 수 있나. 우리가 좀 더 지켜봐야지. 그는 생존 철학으로 여기까지 온 사람이다. 셰셰 외교? 용어는 안 좋지만 맞는 말이다. 우리가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중소국이니, 살려면 양쪽 눈치를 다 봐야 한다. 그렇게 실용주의로 가야 한다."

"한동훈 제명은 잘못… 알면서도 지는 길"

- 국민의힘 지방선거 기획단이 '당심 70%'를 기본 틀로 삼았는데. "농구 경기가 5 대 5 아닌가. 근데 농구 경기를 앞두고 7 대 3으로 하자는 게 말이 되나. 당 대표를 뽑을 때도 마찬가지다. 윤석열과 절연하는 게 민심이잖나. 근데 그러지 않겠다는 사람들(장동혁, 김문수)이 지난 대표 선거에서 1등, 2등 했잖나. 그게 8 대 2 구도로 만들어진 것 아닌가. 극우가 장악한 당을 국민들이 좋아하나?"

- 현역 시절 당내 갈등은 어떻게 융합했나. "원래 시끄러운 게 정치다. 말을 못하게 하면 정치 탄압이다. 반대파들이 막 신나게 비판을 할 수 있어야 살아있는 정당이다. 그걸 놔둬야지, 못하게 하면 밖에 나가서 한다니까. 다 듣고 모욕을 줘도 참고, 소이부답(笑而不答)으로 웃고 넘어가는 거다. 그다음에 설득을 하는 거다. 욕해놓고 나면 그 사람은 속 시원하거든. 그때 설득하면 응하게 돼 있다. 타협해서 하는 게 정치다. 그런데 무슨 한동훈 제명?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 한 전 대표 제명이 잘못됐다고 보나. "제명까지 할 일이 아니잖나. 한 전 대표는 잘못이 없다고 주장을 했으니 밝혀야지."

- 국민의힘이 당명을 또 바꾼다. 어떻게 쇄신해야 하나. "정당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지금 한 전 대표를 제명시키고 윤리위원회에 과격한 사람들을 갖다 놓고… 벌써 비민주적이다. 나는 한 전 대표를 두둔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또 정당은 이념이 중요한데, AI 시대에 기존의 좌우 개념을 그대로 쓰는 것은 시대에 안 맞는다. '중도 실용주의'를 우리가 먼저 가져갔어야 하는데 이 대통령이 선점해버렸다. 당 노선을 그렇게 가야 미래가 있다. 상향식 공천 제도로 바꿔야 하고."

- 예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즐겨 쓰던 단어가 '실용'인데. "그렇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잘했었다. AI 시대에 맞는 실용주의 노선을 이념으로 만들어야 한다."

- 2024년 총선에 출마했다 철회했는데. "당시 우리 당 공천은 이철규와 장제원이 다 짜 놓은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이러면 또 총선을 지는 거였다. 이걸 깨야 되겠다고 생각해 출마선언을 한 것이다. 하루에 인터뷰만 10개씩 하면서 어필을 하니, 윤 전 대통령이 생각을 바꿔 '상향식 공천으로 몇몇 지역은 전환하자'고 했다더라. 그런데 정작 나는 컷오프시킨다길래 내 출마는 접었다."

-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창립 멤버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40년이 지났는데.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는 데 비분강개해 뛰어든 정치다. 그때에 비해 정치가 완전히 타락했다. 나는 은퇴한 뒷방 늙은이라 앞으로 계획이랄 게 없다. 그런데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니 이렇게 인터뷰하러 온 거다. 헌법 정신을 지키려는 노력이 제일 중요하다. 헌법은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이고, 특히 선거 과정은 철저한 민주주의여야 한다. 우리 당이 이렇게 망하는 건, MB 때나 박근혜 때나 권력이 보복을 거듭하며 공천에서 상대방을 죽여 왔기 때문이다."

- 이번 지방선거 전망은. "이대로 가면 무조건 참패다. 볼 것도 없다. 장동혁 대표 체제에서 당이 극우 노선으로 가니, 지금 서울도 부산도 안 되게 생겼다."

- 장동혁 대표에게 당부할 게 있다면. "정치를 해야지. 지금 이건 정치가 아니다. 한동훈을 품어라. 그게 정치다. 반대편 국민들은 우리를 안 찍는 상태에서, 민주당은 단결돼 있고 우리가 분열돼 있으면 무조건 지는 거다. 선거를 위해서라도 화합과 통합을 해야 한다. 장동혁, 한동훈, 오세훈, 이준석까지. 합당은 안 돼도 연합공천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지는 걸 알면서도 이 길을 가고 있다. 박 전 대통령 때도 정무수석이 '선거 져도 좋다'고 하더라. 안 믿어지지?"

이용규 기자 using_ky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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