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을 하며] 2026.01.23.

서울동부지검에 파견돼 3개월간 '세관 마약수사 은폐 의혹'을 수사한 백해룡 경정이 14일 오전 서울 송파구 동부지검에서 파견 종료 입장을 밝히고 있다. photo 뉴스1
한국 사회에서 음모론이 일반화됐던 건 팟캐스트방송 '나는 꼼수다'가 인기를 얻으면서라고 기억한다. 네 명의 출연자는 '합리적 의심' 내지 '정치적 상상력'이란 이름의 포장으로 음모론을 쏟아냈다. '나꼼수'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다. 당시 '나꼼수' 진행자 김어준씨와 가까웠던 한 인사는 김씨와 이야기할 때면 넓은 운동장 한가운데서 만났다는 이야기를 내게 들려줬다. 주변에서 자신을 도청할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의 음모론적 사고방식이 얼마나 일상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는지에 대한 에피소드는 이것 말고 많았다. 그는 이후에는 부정선거 의혹, 세월호 고의 침몰설, 오세훈 서울시장의 생태탕 의혹 등을 계속해서 제기했지만 사실로 드러난 건 하나도 없었다.
나꼼수 이후 이런 유의 음모론에 '합리적 의심'을 가져다대면 이를 어느 정도 허용하는 사회가 됐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의 합리적 의심이란 건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음모론을 뒷받침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된다. 사실 합리적 의심이란 용어는 법원 판결문에서나 볼 수 있던 용어, 그중에서도 형사재판 판결을 위해 정교하게 다듬어진 개념이었다. 이 법정의 언어는 어느 순간 대중의 언어, 그중에서도 뉴미디어의 언어가 됐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의심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허용되고, 허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합리적 의심과 의심할 권리는 다른 개념이다. 합리적 의심은 형사재판 유·무죄 판단을 위해 생성되고, 사라진다. 법정에서 증거가 인정되면 합리적 의심이란 단어는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합리적'이란 단어와 '의심'이란 단어는 그 자체로 주관성을 가지고 있어서 증거 내지 반박할 만한 결과가 제시되면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반대로 음모론은 증거라고 보기 어려운 정황들로 출발한다. 그리고는 정황 내지 증거가 늘어날수록 '더 큰 음모가 있다'는 식으로 확장된다. 합리적 의심은 막연하게 의심할 권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말이 아니다.
지난 2년 백해룡 경정의 마약수사 외압 의혹이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합리적 의심이 드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의 합리적 의심은 또 다른 음모론자를 만나고, 유튜브 플랫폼을 타고 유통되면서 변질되어 갔다고 나는 합리적으로 의심한다. 이번주 이황희 기자와 이성현 기자의 기사는 그것이 어떻게 확대재생산됐고, 누가 그를 부추겼는지를 보여준다. 합리적 의심은 범죄자를 단죄하지만, 음모론은 피해자를 양산한다. 유튜버들이 백해룡 경정의 말을 조각내서 편집해 업로드하고 수익을 벌어들일 때, 마약 사건에 엉뚱하게 연루된 세관원들은 월급으로 거액의 변호사비를 충당하며 버텼다. 합리적 의심이 대중의 언어로 사용되려면 의심할 자유뿐만 아니라 의심을 증명할, 그리고 증명하지 못했을 때의 책임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박혁진 편집장 spaingogo@chosun.com
Copyright ⓒ 주간조선.
'Opinion &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 AI 시대에 공무원, 공기업 직원 대폭 늘린다니 (0) | 2026.01.28 |
|---|---|
| ARE YOU READY? (0) | 2026.01.27 |
| 그린란드를 보며 평택을 걱정하는 시대 (2) | 2026.01.27 |
| 한국 제조업 혁신은 왜 번번이 멈춰 서는가 (0) | 2026.01.26 |
| 주한 미군 역할 변화 못 막아, 대응 방안 찾아야 (0) | 2026.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