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2026.01.28.

대배우가 아들에게 남긴 편지
세상에 꼭 필요한 건 착한 사람
착함은 성격이 아니라 선택
비상계엄 때 나선 시민의 용기
결정적 순간마다 제도 지킨 건
평범한 사람들의 착한 선택
안성기의 죽음 앞에서 우리 사회는 드물게 한 방향으로 애도했다. 논쟁도, 분열도 없었다. 평생 대중의 시선 속에 있었던 배우에게 남은 것은 스캔들이 아니라 평판이었고, 논란이 아니라 태도였다. 그는 성실했고 남을 배려했다. 물러나야 할 때를 알았고, 비중이 작아져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의 빈자리를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던 이유다.
영결식 날, 아들이 33년 전 편지를 꺼내 읽었다. 거기에는 겸손하라, 정직하라, 남을 사랑할 줄 알라,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당부와 함께 실패와 슬픔을 마음의 평화로 다스릴 줄 알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은 바로 ‘착한 사람’이란 걸 잊지 말아라.” 이는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자, 세상에 남은 모든 이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착한 사람이라는 건 어떤 걸까. 요즘 들어 새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로 정의한다. 하지만 ‘착하다’는 말은 그 본질과는 달리 저평가돼 있다. 어수룩하고 만만해 보이는 성격, 존재감 없고 순종적인 느낌, 자기 것 못 챙기고 경쟁에서 밀려나는 성향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착함은 성격이 아니라 선택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굳이 외면해도 되는 순간에 외면하지 않는 태도다. 유리한 쪽이 아니라 옳은 쪽을 택하고, 안전한 침묵 대신 불편한 행동을 고르는 결정이다.
성경의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순간에 기꺼이 발걸음을 멈추는 선택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기꺼이’라는 점이다. 이해득실을 계산해 마지못해 내린 결정이 아니라 외면할 자유가 있었음에도 스스로 책임을 떠안는 선택이다. 그래서 착함은 순진함이 아니라 책임이고, 연약함이 아니라 용기다. 불이익이 따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감당하기로 한 태도, 그것이 이 사회가 위기의 순간마다 기대어온 착함의 얼굴이다.
최근 ‘착하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 판결이 있었다. 12·3 비상계엄 당시 국무총리였던 한덕수에 대한 사법 판단이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이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진 폭동’을 수반한 내란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선택, 곧 침묵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판결문을 읽던 재판부의 목소리가 잠시 멈춘 대목은, 그날 밤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에 대한 언급에서였다. 무장한 계엄군에 맞서 맨몸으로 국회를 지킨 시민들의 용기, 위법한 지시와 명령에 저항하거나 최소한 소극적으로 대응한 일부 군인·경찰·공무원들의 행동이 없었다면, 사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라는 점을 짚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눈 감아도 되는 상황에서 눈을 떴고, 침묵해도 됐지만 목소리를 냈고, 나서지 않아도 됐지만 한밤중에 뛰어나왔다. 그날 밤 계엄이 해제된 이후에도 한겨울 내내 광장에 모여 응원봉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이런 선택들이 우리 역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안성기가 말한 착함과, 내란의 밤을 멈춰 세운 착함은 같은 결이다. 그것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행동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남기 위해 선택한 태도였다. 착함은 미담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작동하는 윤리였다. 제도가 흔들리고 권력이 폭주할 때, 마지막으로 사회를 붙잡는 힘이었다.
착함은 결코 사적인 덕목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바닥을 떠받치는 공적 자원이다. 법과 제도는 문장으로 설계되지만, 그 문장이 현실에서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착한 선택이 필요하다. 헌법은 종이에 쓰여 있지만, 민주주의는 사람의 행동으로 유지된다.
다시 안성기가 남긴 문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은 바로 ‘착한 사람’이란 걸 잊지 말아라.” 이 말은 세상을 낭만적으로 보라는 주문이 아니라 세상이 가장 잔인해질 때 무엇이 우리를 구해왔는지에 대한 냉정한 통찰이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제도를 지켜낸 힘은, 다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착한 선택이었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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