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글, 김낙현)
전국구 깡패가 지역구 깡패와 일반 시민을 불러 명령합니다. "내일까지 상납금 100만 원 가져와."
이때 지역구 깡패가 의리 있게 일반인과 50만 원씩 나눠서 낼까요? 절대 아닙니다. 둘은 필사적으로 자웅을 겨룰 것이고, 결국 싸움에서 진 쪽, 즉 힘이 약한 일반인이 90만 원을 내거나 독박을 쓰게 됩니다. 이것이 냉혹한 힘의 논리이자 시장의 생리입니다.
정부가 아파트에 매기는 세금도 이와 똑같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고지서를 받는 집주인이 세금을 내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세금은 기업의 생산 비용과 같아서, 결국 상품의 최종 가격에 포함됩니다. 부동산 시장에서 이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는 임대인과 임차인 중 누가 더 힘이 센지에 따라 결정될 뿐입니다.
단순한 망상이나 억측이 아닙니다. 경제학적으로 조세 귀착(Tax Incidence)이라는 명확한 근거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의 수도권 아파트 시장을 보십시오. 살고 싶은 집은 한정되어 있고 들어가려는 사람은 줄을 섰습니다. 압도적으로 임차인이 약자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결국 집주인에게 부과된 세금은 전세금 인상이나 월세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이름표만 바꿔 단 채, 임차인의 주머니에서 나오게 됩니다.
정말 아이러니하고 안타까운 지점은 여기입니다. 다주택자를 때려잡고 증세한다는 뉴스에 환호를 보내는 일부 무주택자들의 모습입니다. 본인이 전월세에 거주하고 있다면, 그 세금이 결국 자신의 미래 주거 비용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합니다. 다주택자 규제와 증세가 본인들에게 유리할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불과 몇년 전, 다주택자 규제와 증세가 어떤 참혹한 결과를 불러왔는지 벌써 잊힌 듯합니다. 사실 정부가 속인 것도 아닙니다. 시장의 원리에 대한 무지가 오해를 낳았고, 그 오해가 스스로의 발등을 찍고 있을 뿐입니다.
다주택자 규제로 인해 시장에서 전월세 매물은 씨가 마르고, 늘어난 세금은 고스란히 세입자에게 전가되는 악순환. 표면적인 정의로움과 부자 벌주기라는 감정에 취해 정작 본인이 딛고 서 있는 주거 사다리가 끊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통탄스럽습니다. 이러한 구조를 전혀 모르고 오히려 자신을 해치는 정책에 박수를 보내는 모습은 더욱 안타깝습니다.
경제는 선악의 구도로 움직이는 감정의 영역이 아니라, 철저하게 숫자로 움직이는 생존의 영역입니다. 누군가를 벌주는 정책이 결국 나를 향한 날카로운 화살로 돌아오고 있지는 않은지, 수면 아래에서 작동하는 시장의 원리를 이제는 냉정하게 직시해야 합니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냉혹한 진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칸티용 효과(Cantillon Effect)입니다.
정부가 걷어간 세금과 새로 발행된 화폐는 결코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 돈은 정부와 가장 밀접한 대기업, 금융권, 그리고 대자본가들에게 가장 먼저 흘러 들어갑니다. 그들은 물가가 오르기 전의 돈으로 자산을 선점해 더 큰 이익을 챙깁니다.
결국 힘없는 임차인이 짊어진 세금의 무게는, 돌고 돌아 다시 자본가들의 배를 불리는 밑거름이 되는 셈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부자 증세'라는 달콤한 구호 이면에 숨겨진 잔혹한 돈의 흐름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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