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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아이 영재 같다고 부러워마요…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는데

dalmasian 2026. 1. 28. 08:33

2026.01.28.

대한민국 국가대표 쇼트트랙 선수들이 지난 1월 7일 충북 진천선수촌 챔피언하우스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photo 뉴스1

영재는 언제부터 영재일까.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는 이야기들을 쉽게 떠올린다. 율곡 이이는 세 살에 천자문을 뗐고, 모차르트는 다섯 살에 작곡을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사례들은 '영재성은 일찍 드러난다'는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훗날 큰 업적을 이룬 모든 인물이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보였던 것은 아니다. '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다윈은 학창 시절 성적이 뛰어나지 않았고, 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교수 역시 어릴 때는 수학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부터 영재를 선별해 집중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주장은 여전히 설득력을 얻는다. 수학에 재능이 있다면 수학에, 음악에 소질이 있다면 음악에 가능한 한 이른 시기부터 몰입하게 해 재능을 빠르게 꽃피우자는 논리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아이의 재능을 조기에 발견해 집중적으로 키워 과학이나 경제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라도 배출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영재를 빨리 찾아내고, 빨리 몰입시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영재는 끝까지 영재일까

하지만 이러한 상식을 뒤집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12월 사이언스지에 아르너 귈릭(Arne Gullich) 교수 연구진의 논문이 실렸다. 연구진은 어린 시절 운동 경기, 음악, 학업 등에서 두각을 보인 이들이 성인이 되어 세계 최고 수준의 성취를 이뤘는지를 살폈다. 반대로 성인이 된 뒤 올림픽 메달 수준의 성과를 낸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지도 함께 분석했다. 학업 분야의 경우에는 성인기 소득이 상위 5%에 속하는지를 성취의 기준으로 삼았다.

결과는 통념과 달랐다. 어린 시절 두각을 보인 영재 집단과 성인이 되어 천재적 성취를 이룬 집단은 거의 겹치지 않았다. 운동 종목에서는 어린 시절 챔피언이었던 선수가 성인이 되어서도 챔피언 자리에 오른 경우가 전체의 13%에 불과했다. 학업 분야에서는 격차가 더 컸다. 12세에 수학 성적 등을 기준으로 측정한 인지 능력이 상위 1%였던 이들 가운데, 30대 중반에 소득 상위 5%에 오른 비율은 약 1%에 그쳤다.

특히 연구진은 성취를 비교하기에 가장 객관적 사례인 운동선수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20대 이후 세계적 수준에 오른 선수들은 10대 시절 성적이 두드러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어린 나이에 대회에서 수상하며 주목받은 선수들은 대체로 일찍부터 훈련을 시작해 한 종목에 집중했다. 반면 성인이 되어 세계 최정상에 오른 선수들은 아동·청소년 시절 주 종목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종목을 최소 9년 이상 경험한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어린 시기에는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성인이 된 뒤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이와 비슷한 흐름은 학문 분야에서도 확인됐다. 노벨상을 수상한 학자들은 단순히 노벨상 후보에 오른 학자들보다 교수 임용 시기가 늦은 편이었고, 조교수 시절 논문 발표 속도도 상대적으로 느렸다. 대신 전공 분야를 넘어 다른 학문이나 비학문 영역에도 폭넓은 관심과 경험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패턴은 작곡, 체스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물론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분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성취 수준 역시 평균보다 훨씬 뛰어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어린 시절 좋은 성과를 낸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중요한 점은, 세계 최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이들에 비해 다양한 분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어린 시절부터 한 분야의 교육과 훈련에만 매달리지 않았던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연구자들은 몇 가지 가설을 제시한다. 첫째는 어린 나이에는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를 경험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마이클 조던은 어린 시절 야구에서 상당한 재능을 보였고, 농구는 고등학교 입학 당시 팀에 선발되지도 못했다. 만약 그가 야구에만 집중했다면 오늘날의 '농구 황제'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둘째 가설은 다양한 경험이 유연한 사고와 적응력을 길러 주어 결국 주 종목에서 더 높은 성취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한 분야에만 몰두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새로운 발상이나 혁신을 이루기 어렵다.

셋째는 여러 분야에 노출되는 과정이 위험을 분산시켜 준다는 설명이다. 부상이나 흥미 상실로 기존 종목을 지속할 수 없게 되더라도, 다른 경험이 있다면 비교적 수월하게 전환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재능을 발견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MIT 수학 교수 존 어셸(John Urschel)이 수학 연구를 시작하기 전까지 프로 미식축구 선수였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조기 집중보다 강력했던 다종목 경험

이런 이야기는 다소 놀랍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는 않다. '소년등과일불행(少年登科一不幸)'이라는 말이 있다. 너무 이른 나이에 급제하면 오히려 인생이 불행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어린 시절 또래보다 높은 성취로 주목받은 뒤, 한 분야에만 매달리거나 폭넓은 노력을 기울이지 못해 장기적으로 뛰어난 성취를 이루지 못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진정으로 큰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겸손함과 더불어 주변의 도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성 역시 중요하다.

그렇다고 뛰어난 소질을 보이는 아이에게 영재 교육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 역시 상대적인 비교 결과일 뿐이다. 실제로 나중에 큰 성취를 이룬 사람들 역시 어린 시절부터 여러 분야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어린 시절이나 경력 초반의 성취만으로 한 사람의 잠재력을 단정해 버리는 일이다.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한 가지 능력에만 의존한 사람이 환경 변화나 부상으로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 책임을 과연 누가 질 것인가.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의 등장과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우리 사회는 기술 발전과 인재 양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AI 인재 10만 양병'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과 같은 구호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영재 교육을 강화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신기술에 일찍 노출되는 교육 자체는 분명 바람직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이른 시기부터 한 분야에 매몰되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

공부에도 책으로 하는 공부가 있고, 경험을 통해 배우는 공부가 있으며, 사람과 교류하며 익히는 공부가 있다. 한 가지 방식에만 국한돼서는 안 된다. AI 교육과 더불어 세상을 넓게 바라보는 법, 타인을 이해하고 돌아볼 줄 아는 법을 함께 가르치는 것이 개인을 위해서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더 바람직한 교육일 것이다.

김준형 카이스트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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