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5

지난 1월 2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외투를 입은 시민들이 출근하고 있다. photo 뉴스1
2024년 말에 교육자인 필자 입장에서 상당히 충격적인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한국 성인의 인지능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것이다. 한국이라면 불타는 교육열로 빈곤을 탈출하고 이제는 그 부작용을 겪느라 고생하고 있는 나라가 아닌가? 능력이 과잉이면 몰라도 능력이 뒤떨어지다니?
앞서 말한 성인 인지능력 측정은 OECD에서 시행한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Programme for the Inter national Assessment of Adult Competencies)를 말한다. 16세에서 65세 사이 성인을 대상으로 언어능력, 수리력, 문제해결력 등 성인이 현대사회 구성원으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측정하며 10년에 한 번씩 시행하도록 만들어졌다. 첫 번째 측정은 2011년부터 2018년 사이 39개 국가에서 이루어졌으며 두 번째로는 2022~2023년 동안 측정해 2024년 말에 발표했다.
지난해에 뉴스로 다루어진 국제성인역량조사 성과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최근에 국제성인역량조사 자료를 가지고 연구한 것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개최한 포럼에 국내 연구진이 연구한 내용을 발표했는데, 필자도 토론자로 참여했다. 성균관대 최재성 교수,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류지은 박사, 같은 연구원의 김남희 박사가 수행한 연구다.
연구 결과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한국은 개인의 역량과 직무가 잘 맞지 않았다. 성별·직업을 불문하고 10명 중 2~3명 정도가 개인의 역량이 직무에서 요구되는 능력보다 더 높다고 평가했는데, 역량이 부족한 집단은 임금이 낮았지만 역량이 과잉인 집단은 임금이 더 높지 않았다. 또한 성별 간 직종분리가 (예전보다 감소했지만) 여전히 관찰되었는데, 남녀 간 역량 차이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한국의 근로자는 다른 나라에 비해 나이가 들면서 역량이 더 빨리, 더 가파르게 떨어졌다. 다른 나라에서는 일상적인 정보통신기기 사용이 역량 감소를 상쇄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상쇄 효과도 크지 않았고, 절반 정도의 근로자가 일상적으로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적은 반복적인 직무가 주된 직종에 종사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국 성인은 대학 진학률이 높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학교나 학원 등에서 조직화된 교육을 이수하는 정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낮았고, 그나마 행하는 교육도 초기 성인기에 집중되었다. 대부분의 배움은 경험이나 동료와의 협업을 통해 배우는 ‘무형식학습’인 것으로 나타나 직무 외 새로운 지식이나 기능을 습득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요약하자면 한국 성인은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는 우수한 역량을 보였으나 직업을 가진 이후에는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역량을 더 키우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근무시간 길고, 교육이 노동과 무관
그렇다면 한국 성인의 역량이 왜 낮은 걸까? 정확한 이유가 규명된 연구는 아직 없지만 몇 가지 추측은 할 수 있다.
한 가지 가능성은 한국 직장의 근무시간이 너무 길어 제대로 된 배움을 추구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OECD 평균을 훌쩍 넘고 주말 근무도 많다. 그렇지만 지난 몇 년간 한국의 노동시간이 줄어든 데 반해 국제성인역량조사에서 측정한 한국의 역량은 개선되지 않았다.
두 번째 가능성은 한국의 교육이 노동시장의 수요에 맞지 않는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수능시험은 변별력을 키우기 위해 고난이도의 문제를 내는 것으로 악명이 높고,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한 훈련은 실제 직무에 필요한 능력과 크게 관련이 없다. 대학 교육도 노동시장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말이 많이 들린다.
이러한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다 옳지는 않다. 수능시험이 어려운 이유는 수능시험의 변별력을 높여야 하는 사회 구조적 원인 때문이다. 아무리 고등학교나 대학 교육을 개선해도 성인기 학습 저하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세 번째 가능성은 직장의 근무 환경과 경영 문화가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글로벌코리아인사이츠·머니투데이·대한상공회의소에서 공동 조사해 발표한 ‘한국 기업문화 실태조사’에 나온 설문 결과에 따르면 업무 성과에 대한 평가가 공정하지 않다는 응답이 절반에 가까운 45.1%였다. 또한 직장 내 상급자와 하급자 사이, 동료 사이 소통이 잘 되고 있지 않으며, 업무 자율성이 낮고, 성장의 기회가 부족하다고 인식했다.
주어진 업무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소득이 증가하거나 승진을 더 빨리 할 수 없다면 역량을 발휘할 이유가 없다. 직무에서 쓰지 않는 역량은 도태되기 마련이고 따로 배울 필요도 없다. 게다가 변화에 적응하거나 혁신에 도전하려면 기존과 다른 새로운 일을 시도해야 하는데, 말하자면 회의에서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기존의 관행을 바꾸자고 해야 한다는 말이다. 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구성원 사이 유연하게 소통을 해도 될까 말까 한데 경직된 조직문화에서는 모난 돌 정 맞지 않으면 다행이다. 차라리 주어진 역할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업무와 상관없이 동료나 상급자와 관계를 잘 쌓는 게 중요해 보인다.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
경직된 기업문화가 원인인지는 관련 연구를 더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한국의 기업문화가 경직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때문에 성인이 역량을 쌓을 동기가 부족하다는 설명 또한 그럴듯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업 경영자에게 경영을 더 잘하라고 요구해야 할까?
만약 그렇다면 선진 경영을 도입하도록 유인책을 마련하고 경영자들은 경영학 과정을 밟도록 유도하면 될 일이다. 자연스럽게 경영문화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작정 기다릴 수 없다. 그런데 필자는 다른, 덜 주목받는 원인을 언급하려 한다. 회사 구성원이 모두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능력대로 보상을 받고 혁신을 이끌어내면 혁신을 주도한 사람들은 이득을 보지만 도태되는 경우도 생긴다. 말하자면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는 셈인데, 창조는 좋으나 문제는 파괴이다. 도전하다가 실패할 수도 있고, 개인이나 회사의 역량이 혁신의 방향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 사회는 작은 실패에 너그럽지 못하다. 내 삶이 창조적 파괴에 휩쓸려 버릴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역량을 발휘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도전을 용납하기 힘들다. 개인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서 도전할 수 있으려면 실패에 너무 가혹하지 않아야 한다. 소득이 줄거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어야 하며, 회사가 시장에서 퇴출되어도 경영자가 새로운 기회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낮춰야 하고 한 번 실직하면 회복을 어렵게 만드는 호봉제 같은 제도도 없애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려면 사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너그러워져야 한다. 그래야 배움을 추구할 여지가 생긴다.
김준형 카이스트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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