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교회에 가지 않는 은퇴 목사들

dalmasian 2026. 2. 15. 20:40

2026.02.14.

게티이미지뱅크

주변을 돌아보면 은퇴했거나 조기 은퇴한 목회자들 가운데 정작 교회 예배에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돌거나 조용히 발길을 끊은 분들을 적지 않게 보게 됩니다. 어떤 분은 지인이 없는 교회에서 익명으로 예배를 드리고, 어떤 분은 집에서 혼자 혹은 배우자와 함께 온라인 예배로 믿음 생활을 이어 갑니다.

은퇴 목사들은 한국교회의 성장과 신앙 형성에 크게 기여해 온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은퇴 이후 예배 공동체와의 연결이 약화하는 현상은 개인의 신앙 태도 문제로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교회의 구조와 관계, 그리고 은퇴를 준비하는 신학·제도적 장치의 부족이 함께 드러나는 현상이며 교회 공동체의 건강을 점검하게 하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첫째 은퇴 목사와 후임 목사 관계에서 역할 혼선이 생기기 쉽습니다. 은퇴 이후 후임 목회자와의 미묘한 긴장, 성도들의 기대와 오해, 예우와 재정 문제는 쉽게 감정의 골을 만듭니다. 남아 있어도 불편하고 떠나자니 섭섭함과 서운한 감정이 따라옵니다. 결국 교회 출석 자체가 심리적 부담이 되어 현장 예배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둘째 정체성의 전환이 쉽지 않습니다. 평생 말씀을 전하던 목사가 어느 날 듣는 자리에 앉는 일은 단순한 자리 이동이 아닙니다. 후임 목회자의 설교와 행정을 무의식적으로 비교하고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고, 그 유혹 자체가 부담되어 교회를 피하게 되기도 합니다.

셋째 번아웃과 소진의 문제입니다. 말씀 선포, 돌봄, 갈등 조정, 행정과 책임을 수십 년 감당해 온 목회자에게 예배당은 쉼의 공간이 아니라 또 다른 에너지 소모의 공간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 더욱 고립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넷째 환경 변화와 신학적 낯섦도 영향을 줍니다. 거주지 이동 이후 신학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교회를 찾기 어렵고, 예배 문화가 맞지 않으면 소속감을 느끼기 힘듭니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예배가 대체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현장 예배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문제의 밑바탕에는 원로 후임 당회 간 질서 정리의 부족이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섬김이고 어디부터가 개입인지를 명확히 하지 못할 때, 가장 쉬운 선택은 아예 예배 자리를 피하는 것입니다. 이는 개인의 신앙 성숙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교회와 교단이 구조적으로 준비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렇다면 은퇴 목사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첫째 본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에서 예배하는 선택입니다. 현실적으로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방식이며 불필요한 긴장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이는 도피가 아니라 질서 있는 이동이어야 하며, 가능하다면 같은 교단 안에서 공식적인 설명과 축복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둘째 교단 차원의 은퇴 목사 예배 공동체 설립입니다. 신학적 언어와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대안입니다. 하지만 재정과 지속성 문제를 고려할 때 노회 단위의 정기 예배나 모임 형태가 현실적일 것입니다. 은퇴 목회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설교 기도 교제를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셋째 후임 목회자의 안착을 위해 상황에 따라 몇 년 동안 본 교회 출석을 지양하는 선택입니다. 이는 후임 목회자와 성도 모두를 배려하는 지혜로운 선택일 수 있습니다. 가령 후임 목회자의 요청이 없는 한 3~4년간 본 교회에 출석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넷째 은퇴 6~12개월 전부터 동사목회 또는 단계적 이양을 준비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은퇴를 단절이 아닌 과정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예방책이지만, 각각의 권한·책임과 성도들의 혼란을 막기 위한 교단과 교회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은퇴 목회자를 관리 대상이나 잠재적 위험이 아니라 보호와 돌봄의 대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은퇴 전부터 역할 범위를 문서와 정관으로 구체화하고, 감정이 아니라 제도로 돌봄을 준비해야 합니다. 정기적 안부, 상담 연결, 필요한 경우 소그룹 배정은 공동체의 최소한의 책임입니다.

은퇴 이후의 선택은 개인의 미덕 문제가 아니라, 교회와 교단이 미리 준비해야 할 구조의 문제입니다. 은퇴가 단절이 아니라 역할의 전환이 될 때, 목회자는 예배자로서 다시 서게 되고 교회는 세대가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공동체로 자라갈 수 있습니다.


김활 하늘정거장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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