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2026.03.07.
쿠르드족은 튀르키예와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에 거주하고 있는 이란계 민족을 가리킨다. 3000만~400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인구는 중동 지역에서 아랍인과 페르시아인, 튀르키예인 다음으로 많지만 독립 국가는 없다. 이들이 살고 있는 튀르키예 동부와 이라크·시리아 북부, 이란 서부에 걸친 지역을 쿠르디스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럽과 중동, 러시아 사이의 지정학적 요충지에 있지만 독립 국가가 없어 강대국에 협력하다 실익을 챙기지 못한 채 버림받는 민족의 이미지가 강하다.
대표적인 게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세브르 조약이다. 영국 등 서방 연합국은 오스만 제국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쿠르드족의 지원을 받았고 보상으로 쿠르드족의 독립국 구상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3년 후 체결된 로잔 조약에서 이 조항은 사라졌고 쿠르드족은 흩어져야 했다. 이후에도 강대국들의 배신은 이어졌는데 가장 최근에 쿠르드족이 버림받은 사례는 2019년이었다.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민병대는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서 몇 년간 서방의 최전선 파트너로 싸웠으나 미군이 철수하면서 튀르키예의 군사 공격에 노출됐다. 미국이 인종 학살을 방조했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첫 번째 집권 중이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철군 결정 후 “쿠르드족의 삶을 보장해주자는 합의에 동의한 적 없다”고 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돕기 위해 쿠르드족이 지상군 참전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5일(현지시간) 인터뷰에서 쿠르드족의 이란 공격 가능성에 대해 “훌륭한 일”이라며 “전적으로 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요청을 쿠르드족이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6년여 전 시리아 북부에서 물러나는 미군을 향해 “가라, 배신자”라고 일갈했던 쿠르드족이 입장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대로 된 보상을 약속한 것일까. 아니면 또다시 배신당하는 쿠르드족의 아픈 역사가 반복될 것인가.
정승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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