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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생파·소풍 다 금지…학창시절 ‘추억’이 사라진다

dalmasian 2026. 4. 25. 06:28

2026.04.25.

챗gpt로 생성한 학교 운동장 이미지
서울 성동구의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김모(42)씨는 최근 사설 축구 아카데미를 알아보고 있다. 점심시간과 방과 후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축구하는 걸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올해부터 학교가 안전사고 책임과 학부모 민원을 이유로 교과 외 스포츠 활동을 전면 금지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노는 것조차 학교에서 제대로 할 수 없어 집집마다 알아서 챙겨야 한다”며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속상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축구만이 아니다. 최근 일선 학교에서는 소풍, 생일파티, 승부를 가르는 운동회마저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학교와 교사에 대한 학부모의 고소·고발이 일상화되고 학교가 몸을 사리면서, 교육 현장은 생존 전략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교육이 학생에게 보장해온 경험의 평등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소풍은 반토막, 무승부 운동회…사라지는 학교 경험

            정근영 디자이너
25일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이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초등학교(인천 제외) 5920곳 중 287곳(4.85%)이 교과 시간 외 축구·야구 등 스포츠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서울은 605곳 중 101곳(16.69%), 부산은 303곳 중 105곳(34.65%)에 달했다. 안전사고 위험과 주민 소음 민원이 주된 이유였다.

금지 조치는 학생들 간의 사적 관계와 경쟁 경험 자체를 지우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생일파티를 자제해달라는 가정통신문을 발송해 논란이 일었다. 특정 친구만 초대하는 일이 따돌림 시비로 번졌고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에 신고되는 사례가 잇따르자 갈등의 싹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내 아이가 기죽으면 안 된다’는 민원에 승부를 가리지 않는 무승부 운동회를 열거나, 상을 받지 못하는 아이가 위축된다는 이유로 시상식을 생략하는 학교도 늘었다.

학교 밖 활동 축소는 수치로 더 분명히 드러난다. 서울 지역 초등학교 605곳 중 1일형 현장체험학습을 실시한 학교는 2023년 598곳(98.8%)에서 2025년 309곳(51.1%)으로 2년 만에 반토막 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지난달 전국 분회장 78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도 모든 형태의 현장체험학습을 사실상 중단했다는 응답이 7.2%였다.

“옆 학교도 금지했데”…위축되는 교육 현장


학교 행사가 도미노처럼 취소되는 배경에는 학부모 민원과 고소·고발의 일상화가 있다. 서울의 한 중학교 담임교사는 “예전에는 항의 전화를 하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교사와 학교를 상대로 한 고소·고발로 이어진다”며 “소풍 중 사고가 나면 인솔 교사가 법정에 서야 하는 게 현실인데, 당연히 안 가는 게 합리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러다 보니 교사와 학교는 위축되고, ‘금지 목록’은 계속 늘어난다. 민원이나 소송이 없었는데도 선제적으로 활동을 줄이는 학교도 적지 않다. 체험학습이나 스포츠 활동 여부는 학교장 재량이지만, 모든 책임이 개별 학교로 돌아오는 구조에서 재량은 사실상 ‘하지 않을 재량’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장은 “옆 학교에서 문제가 됐다는 이야기만 들려도 일단 ‘우리도 금지하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경험 공백, 가정 간 격차로…“학교·학부모, 동반자 돼야”
전문가들은 학교 활동이 점차 사라지면 그 공백을 아이들과 개별 가정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서울의 한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운동장 축구가 금지되면 여유 있는 가정은 월 10만~20만원짜리 사설 클럽에 아이를 보내고, 소풍이 없어지면 주말마다 부모가 직접 데리고 다닌다”며 “시간적·경제적 여유나 정보가 부족한 가정의 아이들은 이런 경험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공교육이 보장해온 경험의 평등이 기울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장 교사들과 전문가들은 교사에게 모든 법적 책임을 지우는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교조 조사에서 교사들이 꼽은 개선책 1순위도 교사 형사책임 면책 강화(80.9%)였다.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은 지난 21일 보고서를 통해 교사 소송 국가책임제 또는 교육청 전담대리제 도입을 제안하며 “정당한 교육활동 중 발생한 민·형사상 분쟁에 대해서는 국가 또는 교육청이 전담 변호인을 자동 배정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교사 면책은 출발점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학교 활동에 따르는 위험을 학교와 교사에게만 떠넘기지 않고,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을 나누는 공감대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시도교육청은 학생·학부모·교사가 함께 책임을 나눠 지겠다고 약속하는 ‘학교문화 책임규약’을 운영 중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는 “학교가 아이들에게 경험을 돌려주려면 학부모와 지역이 학교의 동반자로 돌아와야 한다”며 “지금처럼 학교만 법적 방어에 몰두하는 구조에서는 어떤 제도를 도입해도 교육활동의 위축을 막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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