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시각] 2026.04.02.

한 달을 넘기고 있는 중동 전쟁의 여파가 국민의 일상생활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원유에서 뽑아내는 나프타 확보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종량제 쓰레기 봉투’ 사재기 조짐까지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부 장관이 지난 1일 오전 “좀 안정될 때까지 (코로나) 마스크처럼 (종량제 봉투도) 1인당 판매 제한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틀 전에 “종량제 봉투 물량이 충분하니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말한 것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가슴이 철렁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가 극심했던 시기에 노부모와 어린 자녀가 착용할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되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앞으로 종량제 봉투가 없으면 쓰레기를 집 안에 쌓아 놓고 살아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는 말도 들었다. 불안해서 쓰레기 봉투를 사러 나갔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같은 날 저녁 청와대가 김 장관의 말을 뒤집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장관이 종량제 봉투 구매 제한이 있을 수 있다고 아침에 언급을 잘못하신 것 같다”면서 “종량제 봉투 전체 수급이 부족해지거나 구매 제한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김 장관이 ‘쓰레기 봉투 판매 제한’을 유튜브에서 말한 건 아침 7시 40분이었다. 이 말을 청와대가 뒤집은 건 저녁 6시 10분이었다. 국민 일상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청와대가 입장을 밝히는 데 10시간 30분이나 걸린 것이다. 이날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비상경제 점검 회의도 열렸는데 쓰레기 봉투 판매 제한에 대한 입장을 서둘러 밝혔다면 혼선이 줄어들지 않았겠나.
또 온라인 게시판에는 ‘일선에서는 쓰레기 봉투 구매 제한이 사실상 이뤄지고 있는데 정부만 모르는 것 같다’ ‘정부가 현실을 모르면서 뒷북만 치는 것 아니냐’ 등의 글이 올라와 있다. 실제로 기자가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세종시 내 수퍼마켓, 마트에 가봤더니 ‘1인당 1매’로 구매 제한을 하는 곳이 이미 있었다. 품귀 조짐도 보였다. 한 편의점 직원은 “쓰레기 봉투를 팔지 않는다고 안내 문구를 붙여놨는데도 ‘정말 봉투가 없느냐’ ‘한 장만 사게 해달라’고 하는 손님이 적지 않다”고 했다.
중동 전쟁이 언제 끝날 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향후 2~3주간 이란에 강력한 군사 공격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석유를 사라”고도 했다.
앞으로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파도는 지금보다 훨씬 거칠어질 수 있다. 이번 ‘쓰레기 봉투 판매 제한’ 혼선은 정부 차원의 사전 조율과 사후 대응에 빈틈이 있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복합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정확하고 신속하게 국민과 소통하지 못한다면 불신과 혼란으로 직결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세종=이현승 기자 nalh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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