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2026.04.26.
|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사회적 참사의 해결에는 신속한 조사와 투명한 공개가 핵심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은 흐려지고 사실은 왜곡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서울고법은 송기호 변호사(현 청와대 경제안보비서관)가 대통령기록관장을 상대로 낸 세월호 지정기록물 목록 비공개 처분 취소 환송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참사 당일 구조 활동 및 대응과 관련해 대통령비서실, 경호실, 국가안보실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문건 목록’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2년이 지났고, 정보공개 청구를 접수한 지 9년 만이다. 피해자들이 받았을 고통을 생각하면 너무 늦은 결정이다.
2007년 제정된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르면 대통령지정기록물에 대한 공개는 전직 대통령의 해제 요구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검찰이 고등법원 영장을 받아서 압수수색을 할 수는 있어도 외부적 공표는 제한된다. 대형 참사가 발생해도, 대통령 퇴임 이후 15년 동안 비공개를 유지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이제 대통령지정기록물을 공개할 수 있는 법 개정을 검토할 때가 되었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아니더라도 참사 피해자의 정보 접근권이 제한되고 있다. 참사와 관련된 기록물에는 개인 정보, 의사결정 정보, 조사 및 수사 정보, 비밀 정보가 포함돼 있다. 해당 기록 생산기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해도 대부분 비공개 처분한다. 다행히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사건 당사자, 유가족인 경우, 공개로 전환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최종 판결을 받기까지 최소 3~4년은 소요된다. 공공기관도 소송 없이 비공개 대상 정보를 자발적으로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법적 책임이 따를 수 있고, 비밀정보 및 대외비가 유출될 경우 기관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종 조사위원회도 비슷한 처지다. 위원회는 참사와 관련해 해당 기관에 필요한 정보에 대한 열람 및 사본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피해자에게 공유하는 것은 다른 문제가 따른다. 기록을 제출하는 기관들이 비공개를 명시하는 경우가 많고, 각종 법상으로 공개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조사 단계에서 소외되는 구조이다.
가령 이태원참사진상규명법이 개인정보보호법, 보안업무규정, 수사·재판 기록 비공개 등에 우선하는지도 모호하다. 이 경우 피해자들의 알권리가 침해되며,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성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너무 답답하고 괴로운 상황이다.
조사위원회 활동기간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자. 이태원참사진상규명법은 추모 사업에 활용되도록 그 자료의 사본을 추모시설에 보내도록 하고 있지만 수집한 행정기록을 외부로 공표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아울러 공공기록물법에 따르면 조사위원회는 존속 기간이 경과하면 ‘폐지 기관’이 된다. 해당 공공기관의 장은 기관 폐지와 동시에 지체 없이 그 기관의 기록물 진본 및 원본을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이 경우 국가기록원에서 공개 및 비공개로 재분류하는데, 기록물의 성격상 대부분 비공개로 처리된다. 물론 조사보고서 등은 피해자와 국민에게 공개되지만 보고서의 바탕이 된 기록물은 정보공개 소송으로 해결해야 한다. 정보공개 청구, 비공개 처분, 행정소송이 반복되면서 실체적 진실은 저만치 멀어지는 것이다.
2009년 설치된 호주 빅토리아 산불 왕립위원회는 모든 자료를 웹사이트에 공유해서 보고서 작성 과정 및 근거가 투명하게 공개되도록 했다.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위원회 활동 자체를 기록을 공유하는 것부터 시작한 것이다. 이 위원회는 참사 조사위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관련 부처는 이 사례를 참고해 법·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신뢰는 신속한 공개로 시작된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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