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2026.04.27.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창사 이래 첫 파업 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노조는 임금 14% 인상과 인당 3000만 원의 보상금을 요구하며 내달 파업을 예고했다. 사측 제시안인 6.2%와는 간극이 크다.
다행히 최근 법원이 공정의 ‘변질 및 부패 방지’를 위해 파업에 제동을 거는 결정을 내렸지만, 사태의 본질은 여전히 위태롭다.
바이오 의약품 생산은 일반 제조업과는 차원이 다른 공정이다. 살아있는 세포를 키우는 배양기는 단 한 순간만 멈춰도 수개월의 노력이 담긴 배양액 전체를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반도체 라인은 멈추면 수율이 떨어지는 수준이지만, 바이오는 곧장 ‘전량 폐기’다.
더욱이 엄격한 품질 관리를 요구하는 미 FDA나 유럽 EMA 규정상, 공정 중단은 단순한 손실을 넘어 생산 시설 전체의 재검증이라는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파업이 곧 환자의 생명줄을 위협하는 행위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법원의 판단은 노동조합법 제38조 2항이 규정한 ‘변질 방지 작업’의 범위를 바이오 산업에 처음 적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동안 바이오 의약품 생산 공정은 일반 제조업과 달리 연속적이고 유기적인 특성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쟁의행위 시 보호받아야 할 필수 유지 업무에 관한 법적 기준이 모호했던 것이 사실이다.
재판부가 공정 중단으로 인한 막대한 손해가 헌법상 쟁의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할 수는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면서도, 동시에 바이오 공정의 특수성을 고려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인정한 것은 노사 양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쟁의권이 헌법상 보장된 권리라 할지라도, 산업의 특수성과 공정 위험에 따라 무제한일 수 없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는 향후 K-바이오 전체의 노사 관계를 가르는 중대한 이정표가 될 선례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대외 신뢰도의 추락이다. 현재 글로벌 CDMO 시장은 매출 기준 1위가 스위스 론자(Lonza)이고 삼성바이오로직스, 우시바이오로직스, 캐털런트(Catalent)가 2위 경쟁을 해왔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파트너를 고를 때 1순위로 꼽는 것은 공급의 안정성이다. 실제로 삼성바이오가 추진하던 글로벌 제약사와의 수주 계약이 노사 갈등 리스크 탓에 불발됐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우리가 내부 힘겨루기에 함몰된 사이, 경쟁국인 인도는 ‘무(無)분규 인프라’를 무기로 빅파마들을 유혹하고 있다. 미국 생물보안법 통과로 중국 우시바이오 등이 밀려난 천재일우의 기회를 우리 스스로 걷어차고 있는 셈이다.
노조는 높은 보상 수준 뒤에 가려진 내부 소통의 부재와 불투명한 성과 지표를 문제 삼고 있다. 외형 성장에 걸맞은 세밀한 조직 관리와 합리적인 합의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경영진의 책임 또한 가볍지 않다. 그러나 산업의 특성을 외면한 과도한 단체행동은 결국 기업과 노동자 모두의 터전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제 국내 기업을 넘어 글로벌 산업 표준을 제시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 멈춰선 배양기는 다시 돌릴 수 있어도, 한 번 무너진 글로벌 신뢰와 환자와의 신뢰는 그 어떤 자본으로도 다시 배양해낼 수 없다. 노사 모두 눈앞의 계산기를 내려놓고 ‘K-바이오’라는 국가적 자산을 지키기 위한 성숙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유윤정 바이오벤처중기부장 you@chosunbiz.com
Copyright ⓒ 조선비즈.
'Opinion &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진정한 기독교적 공복(公僕)이려면 (0) | 2026.04.29 |
|---|---|
| 삼성전자 돈 잔치, 李대통령이 막아야 한다 (1) | 2026.04.29 |
| 정독도서관에서 배우는 주택 정책 (0) | 2026.04.28 |
| 6·3지방선거 막판 판세 좌우할 3대 변수 (0) | 2026.04.28 |
| 지방선거 맞춰 졸속 개헌하는 나라, 선진국일 수 없다 (0) | 2026.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