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 목사의 우보천리]
2026.04.29.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다가오며 어김없이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이맘때면 찾아가기 전에는 얼굴 보기도 힘들던 정치인들에게 연락이 오기도 하고, 교회에 찾아와 교인들 앞에서 큰절하며 말하기도 한다. “교회 장로입니다.” “안수집사입니다.” 자신은 무신론자나 다른 종교인이 아니요, 기독교 정치인이라는 뜻이다. 기독교적 공복(公僕)이 돼 하나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니 같은 기독교인이 밀어달라는 말이다.
한국교회는 사회적 신뢰도를 상실해 가던 2000년대 초반 이런 열망으로 장로 대통령을 뽑는 데 대대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그 발상은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낮은 지지율에 국정 동력을 찾지 못했고, 기독교 이미지는 그 기간 더 훼손돼 한국교회 선교는 결과적으로 오히려 후퇴했다. 이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해당하는 얘기다. 스스로 크리스천임을 자부하며 기독교계와 연대감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가 진정 기독교적 지도자인가에 대해서는 기독교계 안팎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쯤에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과연 어떤 사람이 진정한 기독교적 지도자인가. 어떤 정신으로 정치할 때 그를 기독교 정치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선거철이 다가오니 분별의 기준 삼아 오늘은 이 얘기를 좀 해보자. 첫째 정치철학과 사상이 기독교 정신에 부합해야 한다. 여기서 기독교 정신이란 특정 교리가 아니라 기독교가 표방하는 보편적 가치를 의미한다. 우리가 뽑는 지도자는 바른 교리를 성도에게 가르쳐야 하는 목사도 아니요, 기독교 신정국가의 통치자도 아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이미 다원적 세속사회다. 기독교인은 좋건 싫건 다른 종교인과 더불어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 고대 이스라엘 같은 신정국가가 아니라 21세기 세속사회 한복판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상대를 정복해 기독교화하려는 십자군 전쟁 방식은 옳지도 않고 더는 가능하지도 않다. 비기독교인에게 특정 교리를 강요하는 것은 선교에 역기능을 초래할 뿐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랑과 온유와 자비의 옷을 입고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고전 1:21) 복음을 전했다. 기독교적 일꾼도 마찬가지다. 비기독교인은 물론 다른 종교인까지 수긍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정치 철학으로 가져야 한다. 자유 민주 인권 박애 정의 평등 화해 평화 번영 등과 같은 가치다. 이런 가치들은 다른 종교에도 존재하지만 이를 가장 명료하게 표방한 종교는 단연 기독교라고 확신한다. 기독교는 인간애에 대한 지극한 충성과 헌신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진보든 보수든 기독교인이라면 이 인류 보편의 가치에 충성해야 한다.
오해해서는 안 된다. 동성애나 창조 신앙 같은 특정 교리를 공론의 장에서 옹호한다고 해서 기독교적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필자 역시 동성애를 반대한다). 중요한 건 그의 정치 행동이 전체적으로 기독교적 가치에 충실한가 하는 점이다. 창조신앙을 위배한다고 반동성애를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셨던 나그네를 홀대하고 이민자를 쫓아내며 서민들보다 소수 특권층만을 위한 정책을 편다면 그는 결코 기독교적 지도자가 아니다. 그저 교회에 다니는 정치인일 뿐이다.
둘째 그 정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의 도(道)에 부합해야 한다. 세속 국가의 공복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명시적으로 표현할 필요는 없다. 표명했는데 성공한 지도자가 못되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 하지만 그 정책에서는 예수의 향기가 나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 정신을 가진 지도자의 본질이다. 교회 장로다 안수집사다 권사다 자처하면서도 화해보다 갈등을 일삼고, 용서보다 호전적인 태도로 국가를 분열로 몰아간다면 이는 예수의 정신에서 먼 것이다.
근현대사에서 기독교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정치인을 꼽으라면 필자는 에이브러햄 링컨을 꼽고 싶다. 그는 노예 해방을 이룬 인권과 박애의 지도자였고, 남북의 대통합을 이뤄 미국 부강의 기초를 닦은 화해의 지도자였다. 전쟁 중에도 기도를 쉬지 않았던 대통령이었지만, 정치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인류의 보편 가치에 충실했다. 그렇기에 노선이 다른 정치인들도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가 인류사에 미친 선교의 영향력은 탁월한 목사 1000명을 합한 것보다 크다. 하나님은 언제 한국사회에 이런 기독교 정신을 가진 공복을 주실 것인가.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이다.
(새문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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