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30.
LIV 골프부터 네옴·‘더 라인’까지 줄줄이 손절
PIF 곳간에 비상등
“쓸 곳만 골라 쓴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도는 호황 속에서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 사우디아라비아가 간판 소프트파워 사업 ‘LIV 골프’에서 손을 뗀다.
LIV 골프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독점 체제를 깨기 위해 사우디가 2022년 출범한 프로 골프 리그다. ‘돈으로 세계 질서를 흔들겠다’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무제한 베팅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1년 1월 10일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 네옴에 건설될 탄소 제로 도시 '더 라인(The Line)'을 발표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연합뉴스
29일(현지 시각) 주요 외신에 따르면 사우디 국부펀드(PIF)는 이번 2026 시즌을 끝으로 LIV 골프에 자금 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LIV는 사우디가 PGA 투어에서 브라이슨 디섐보, 존 람, 더스틴 존슨 같은 정상급 골프 선수를 거액 계약금으로 PGA에서 빼내며 출범시킨 신생 리그다. PIF는 리그 출범 이후 4년간 50억 달러(약 7조4000억원)를 쏟아부었다.
LIV 골프 이사회 의장직을 맡았던 PIF 총재 야시르 알루마이얀은 자리에서 물러난다. 골프 리그 후속 운영은 독립 이사회가 담당할 예정이다. 이사회는 앞으로 매각이나 외부 투자 유치 같은 전략적 대안을 검토해 운영 자금을 스스로 마련할 방침이다. 지난 15일 PIF가 이사회 의결을 거쳐 발표한 새 5개년 전략 보고서에서도 LIV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PIF가 장기적으로도 LIV에서 손을 뗄 가능성이 높다는 신호다.
아랍걸프국가연구소(AGSI) 수석연구원 팀 칼렌은 WSJ 인터뷰에서 “이번 결정은 사우디가 과시형 사업을 더 이상 떠안지 않겠다는 선언”이라고 했다.
이달 PIF가 발표한 2026~2030년 새 전략 보고서를 보면 사우디는 ‘걸프 연맹 큰 형님’이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지갑을 닫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분석에 따르면 PIF 운용 자산은 2024년 말 9413억 달러로 세계 5위 국부펀드 규모다. 다만 2024년 PIF 현금 보유고는 약 150억 달러로 4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차입금은 5700억 리얄(약 232조 원)까지 불어났다. 순이익도 전년 대비 60% 급감(急減)했다. 자산 외형은 거대하지만, 정작 다른 곳에 투자할 실탄이 빠듯한 구조다.
PIF는 2030년까지 운용 자산 1조 7300억 달러를 추가로 끌어모아 2030년 자산 2조 6700억 달러를 만들 계획이다. 이를 위해 급성장을 추구하는 대신 ‘지속 가능한 가치 창출’로 투자 방향을 틀었다. 자산 비중도 다시 짰다. 현재 30% 수준인 해외 투자 비중을 20%로 낮추고 대신 사우디 국내 투자를 80%까지 끌어올린다.
알루마이얀 총재는 16일 기자회견에서 “모든 투자에 같은 우선순위로 접근하지 않겠다. 시기와 규모에 맞춰 자본을 배치하겠다”고 했다. PIF는 이미 2024년 12월 이사회에서 산하 100여개 포트폴리오 기업에 일제히 최소 20% 지출 삭감을 지시했다. 일부 사업은 예산을 60% 깎았다.

칼바람은 LIV에만 머물지 않았다. 사우디가 국가 차원 경제 계획이었던 ‘비전 2030′ 상징이자 빈 살만 왕세자 야심작으로 내세웠던 건축물 ‘더라인(The Line)’ 역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더 라인은 사우디 북서부 사막 한복판에 세운 길이 170km, 높이 500m짜리 거울 외벽 직선형 신도시다. 발표 당시 거울 외벽 두 동이 마주 보는 미래형 도시 설계가 전 세계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알루마이얀 총재는 이달 알아라비야 인터뷰에서 “2030년까지 더라인이 꼭 필요하진 않다고 본다. 있으면 좋겠지만 필수는 아니다”라고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냈다. 더라인 공사는 지난해 9월 16일을 끝으로 이미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계획된 170km 가운데 기초공사를 마친 구간은 단 2.4km에 그친다. 진척률로 치면 1.4% 수준이다. 입주민 목표 역시 기존 150만명에서 30만명 미만으로 축소됐다. WSJ는 PIF 내부 감사 자료를 인용해 더라인 완공 시점을 2080년으로 추산했다. 처음 발표 당시 목표였던 2030년보다 50년이나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뜻이다.
축구도 예외가 아니다. PIF는 사우디 프로축구 리그 명문 구단 알힐랄 지분 70%를 민간 자본 킹덤홀딩스에 14억리얄(약 3억7320만달러)을 받고 매각했다. 올해 정부 예산도 지방·도시 서비스 지출 부문에서 21.2%, 교통·인프라 지출에서 14.9%를 깎았다. 미국 주식 포트폴리오에서도 발을 뺐다. PIF는 최근 게임사 액티비전 블리자드, 크루즈 운영사 카니발 등 18개 종목 약 130억달러어치를 모두 정리했다고 공시했다.

사우디는 중동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가만히 앉아서 거액을 벌어들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4월 보고서에서 호르무즈 흐름이 막히면서 원유 현물 가격이 전쟁 발발 이전보다 배럴당 60달러가량 뛰었다고 분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이상이면 사우디가 재정 균형을 이룬다고 예측한다. 현재 유가는 118달러를 웃돌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 입장에서 중동 지정학적 위기는 구조적 호황이라기보다 언제 꺼질지 모를 일회성 전쟁 프리미엄이다. 실제 사우디 살림은 유가 상승과 별개로 적자 수렁에 빠져 있다. 사우디 재무부가 짠 2026년 예산에 따르면 올해 예상 재정 적자는 1650억리얄(약 44조원)에 달한다. PIF에 가장 큰 국내 자금줄이었던 사우디 국영 석유사 아람코 기본 배당도 3분의 1이 깎였다.
여기에 기존에 추구하던 비전 2030에 묶인 청구서가 앞으로 줄줄이 날아들 예정이다. 2030년에는 엑스포 2030, 2034년에는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이 기다리고 있다. 걸프 국가 경쟁국인 아랍에미리트(UAE) 수준의 청정에너지 시설, 공항·항공 물류, 첨단 제조설비 구축에 들어갈 자본은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알루마이얀 총재는 현지 매체 알아라비야 인터뷰에서 “이제는 자체 자본이 아니라 외부 자본을 더 많이 끌어와야 한다”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사우디가 과시형 트로피 자산이나 글로벌 소프트파워 지출은 빠르게 정리하고, 국내 산업·고용·인프라와 직결된 분야로 자본을 몰아주는 구조 조정을 당분간 강도높게 추진할 것으로 예상했다. PIF는 석유 의존도가 높은 사우디 경제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비석유 부문 GDP에 2430억달러를 기여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사우디 비석유 경제 기여도는 약 10%포인트 뛰었다. 향후 투자 방향도 이 수치를 더 높이는 데 맞춰졌다. 사우디 산업통상장관 칼리드 알팔리는 PIF 산하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연단에서 “기가프로젝트가 정부 자원을 너무 많이 빨아들였다”고 했다.
채텀하우스 닐 퀼리엄 선임연구원은 “비전 2030이 정상 가동되려면 사우디가 외국인 고위 임원을 유치하고, 글로벌 기업들이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 거점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 동력이 약해졌다”고 평가했다. 사우디가 더 이상 모든 사업을 이전처럼 동시에 밀어붙일 여력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유진우 기자 oj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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