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혐오할 자유

dalmasian 2026. 5. 31. 07:10

[창]  2026.05.30.

2016년 미국 매트리스 업체 ‘미라클 매트리스(Miracle Mattress)’가 사과문을 냈다. 9·11 테러 15주기를 앞두고 두 개의 매트리스탑을 쌍둥이 빌딩처럼 쌓아 무너뜨리는 ‘쌍둥이 빌딩 세일(Twin Tower Sale)’이라는 광고를 내서다. 해당 업체는 전국민적인 비판을 받고 일주일간 문을 닫았다. 9·11 관련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내고 새 직원을 채용한 뒤 다시 문을 열었다. 동네 작은 매트리스 가게일 뿐인데도 국민적인 비판을 받았고 여러 현지 언론에도 보도됐다. 역사적 비극을 조롱했다는 사실 앞에서는 회사의 크기가 문제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스타벅스코리아가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데이’라는 문구로 텀블러 할인 행사를 홍보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조롱하는 뜻으로 해석되는 ‘책상에 탁’ 문구도 문제가 됐다. 회사 측은 대표를 해임하고 사과했다. 여기까지는 비슷한데, 차이점이 있다. 한국에는 혐오와 조롱이 논란을 확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소셜미디어와 기사 댓글에는 뜬금없이 ‘5·18은 폭동이 맞다’는 내용의 댓글이 수백 개의 ‘공감’이 달렸다. 다른 혐오 메시지는 지면에 옮길 수도 없는 수준이다. 비판의 메시지에 이들은 이렇게 대응한다. “이것도 표현의 자유다.”

표현의 자유가 한국에서 고생이 많다. 지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 추도식이 열린 김해 봉하마을에서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 이용자로 추정되는 청년들이 조롱하는 손가락 표시를 한 채 사진을 찍었다. 스타벅스 댓글창에서 봉하마을 조롱 인증 사진까지, 불과 일주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여기서도 또 등장하는 전가의 보도. “표현의 자유 아닌가요?”

2024년 영국 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사우스포트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영국 전역에서는 난민과 무슬림을 겨냥한 시위와 폭동이 퍼졌다. 이 과정에서 한 여성이 소셜미디어 X(엑스·옛 트위터)에 범인은 무슬림 난민이라며 ‘난민 수용 호텔을 불태워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표현의 자유일까. 영국 법원은 이를 인종 혐오와 폭력 선동으로 판단했다. 그는 징역 31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일각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것이라는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영국 사회는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현대 영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과거에도 그랬다. 19세기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표현의 자유를 강하게 옹호했다. 틀린 의견이라도 공개적으로 논쟁할 자유가 필요하다고 썼다. 하지만 그도 타인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주는 경우까지 자유로 보호할 수 없다고 봤다.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는 누구인가. 댓글러. 그중에서도 누군가를 혐오하는 사람이 즐겨 쓴다. 5·18 희생자를 폭도라 부르는 것은 의견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에 반하는 혐오의 언어다. 우리 사회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유로 이 상태를 너무 오래 내버려뒀다.

방치하면 편하니까. 나를 직접 혐오하는 것이 아니니까. 혐오는 혼자 하면 부끄럽다. 하지만 뭉쳐서 같이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조롱하며 웃는 이들이 내 눈앞에(대체로 모니터 너머에) 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그것이 정상인 척 굳어간다. 일베가 그 공간이었다. 개인의 일탈이 하나의 조직 문화가 되고 부끄러움이 ‘우리만이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고 적확한 안보관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뒤바뀌는 곳. 그 공간을 방치했더니 혐오 문화가 확대 재생산됐다. 온라인에만 있는 줄 알았던 혐오 표현이 오프라인으로 발현되는 것을 우리는 스타벅스 사태로 확인했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다. 절대다수가 선을 추구하지만 마음속에는 편견과 혐오, 차별 등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입 밖으로 꺼내고 행동으로 옮겨 표현하게 되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그 자체로 우리 사회를 망가뜨린다.

오늘도 밤낮없이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도록 혐오 표현을 확대 재생산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지키고 싶은 표현의 자유는 무엇인가. 표현의 자유는 절대 선인가. 죽은 자를 조롱하는 것, 누군가를 혐오하고 배제하는 것이 당신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자유인가.


이광수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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