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책방 이웃이 강사가 되는 곳

dalmasian 2026. 5. 31. 07:12

[오늘의 책방]  2026.05.30.
한미화 출판평론가

서울 마곡지구의 한 도서관에서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함께 글을 썼던 서향라씨가 동네책방에서 ‘AI 사용법’을 강의한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동네책방 ‘게으른 오후’가 마련한 ‘이웃과 함께하는 슬기로운 문화생활’ 프로그램이었다. 이름난 저자나 유명 강사가 아닌, 책방의 단골 독자가 강사가 되는 기획이 신선하고 반가웠다. ‘게으른 오후’는 마곡나루역에서 걸어서 20여 분 거리에 있다. 빌딩과 아파트 숲으로 변한 마곡지구를 지나 방화동 쪽으로 들어서니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이곳 사람들이 “마곡은 강서구가 아니라 마곡신도시”라고 했던 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을버스가 간간이 다니는 좁은 길을 따라가니 다세대주택과 소규모 아파트 그리고 작은 상가들이 이어졌다. 신도시와 사뭇 다른 옛 동네였다.

‘게으른 오후’의 전미경 대표는 스스로를 ‘오래된 편집자’라고 부른다. 1990년대부터 편집자로 일했으니 그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오십대에 암으로 고생한 뒤 예순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자녀가 건넨 “엄마, 환갑 기념으로 남들 다 가는 여행 말고 멋진 걸 해봐!”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인생 후반에 자신을 위한 보람된 일을 고민하다가 책방을 열었다. 실패해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규모를 줄이면 해볼 만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10평이 채 안 되는 아담한 공간을 발견했고, 이곳을 1인 출판사의 작업실이자 1인 책방 ‘게으른 오후’의 터전으로 삼았다. 2022년 책방 문을 열었지만 찾는 사람은 없었다. 오래된 편집자는 직접 미래의 독자를 찾아 나섰다. 책방이 자리한 방화동 골목길은 한때 동네의 중심지였고, 이 길이 끝나면 개구리 울어대는 논이 펼쳐졌다. 전 대표는 이 골목길에 있는 식당, 미장원, 카페, 부동산중개소 등을 먼저 찾아가 인터뷰를 했다. 그 기록을 정리해 ‘우리 동네 사장님은 매우 친절하다’라는 책으로 펴냈다. ‘게으른 오후’는 이렇게 동네와 함께 숨 쉬는 공간이 되었다.

오늘날 동네책방의 부흥을 이끈 세 가지 요소는 ‘공간, 큐레이션, 커뮤니티’다. 이 중에서 커뮤니티는 동네책방의 꽃이다. 하지만 커뮤니티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고, 쉽게 경험하기도 어렵다. 책방에서 이웃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자랄 뿐이다. 이 책방을 자주 찾는 서향라씨는 ‘게으른 오후’를 알고 난 뒤부터 조금 멀지만 마곡신도시에서 이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다. “어디서나 만날 수 없는, 중년을 위한 깊이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 책방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단골인 김윤정씨는 “작은 책방에서 만나는 한 분 한 분이 따뜻하고 배울 점이 많아 좋다”고 말했다. 내로라하는 유명인이 아니어도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 많다. 다만 단절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그런 이웃을 만나고 공동체를 경험할 자리가 점점 줄어들 뿐이다. 그래서 동네책방에 가야 한다. 동네책방에서 우리는 책보다 먼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한미화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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