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2026.06.15.
李 정부 임명 재외공관장
57%가 ‘어공’인 특임공관장
전문성 부족, 자질 의심돼
직업외교관도 벅찬 자리
왜 아마추어에게 맡기나
외교경쟁력 추락 자초한다

2025년 9월 23일(현지 시각)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연설을 위해 연단으로 걸어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사법고시 동기인 차지훈 변호사를 주(駐)유엔대사로 임명했다. /청와대 제공
대한민국만큼 외교가 국가의 흥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는 드물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에서 을사늑약에 이르기까지 조선이 겪은 실존적 재앙의 중심에는 외교 실패의 몫이 있다. 그런데 외교가 국가 존망을 좌우하는 나라 가운데 한국만큼 외교를 경시하고 직업 외교관의 전문성을 과소평가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재외공관장 인사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특임공관장 제도의 남용은 직업 외교관 제도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도가 지나치고, 외교 경쟁력의 강화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에 스스로 약화를 자초하고 있다.
특임공관장이란 외무공무원이 아닌 자를 대통령이 특별히 임명한 공관장을 말한다. 주로 학자, 고위 공직자, 퇴역 장성 가운데 발탁해 왔고, 정권이 바뀌면 소환하는 것이 관례다. 많은 제도가 그렇듯 특임공관장 제도도 잘 활용하면 약이 되고, 보은의 수단으로 악용하면 독이 된다. 이재명 정부가 지난 1년간 임명한 65명의 재외공관장 가운데 37명(약 57%)이 특임공관장이다. 역대 정부에 비해 특임공관장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이지만 그 면면을 보면 자질이 의심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대표적 사례로 대통령의 사법고시 동기인 차지훈 변호사의 주(駐)유엔대사 임명이 거론된다. 주유엔대사는 외교부에서 30년 이상 경력을 쌓은 베테랑 직업 외교관 중에도 적격자를 찾기가 어려운 자리다. 유엔에서 다루는 핵심 의제의 쟁점과 이해 당사국 간의 역학관계를 잘 모르고 의사 규칙에도 익숙하지 않으면 영어에 능통한 직업 외교관이라도 임무 수행이 쉽지 않다. 다자 외교 경험이 없는 특임대사가 맡기엔 너무 벅찬 자리다. 경제·사회 정책을 다루는 OECD에 인권법 교수를 대사로 보낸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영어 구사가 어려워 통역을 대동하는 특임대사도 있다고 한다.
선진국 중 특임공관장 제도를 유지하는 국가는 미국밖에 없다. 미국은 대통령이 신세 진 인사들에게 공직을 나누어주는 ‘엽관제(spoils system)’ 전통을 유지해 왔지만 그런 나라의 특임대사 비율도 정원의 30%에 불과하다. 미국이 특임대사 제도를 유지해 온 것은, 외교 없이도 외침을 막고 나라가 흥하는 데 지장이 없었고, 외교 실패도 압도적 국력으로 만회할 수 있는 대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서방 국가들과 일본, 중국 등 외교를 중시하는 국가들은 모두 직업 외교관을 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영국과 호주가 전직 장관을 주미대사로 보낸 적이 있지만 극히 예외적인 사례다.
대한민국에도 외교는 아무에게나 맡겨도 될 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다. 과장급 외교관을 양성하는 데 최소 15년, 주요국 대사 임무를 수행할 수준의 간부로 키우는 데는 30년 정도의 경력이 필요하다. 실무 경험이 없는 특임대사가 수십 년 경력을 쌓은 외국 외교부 간부를 상대하는 것은 아마추어가 프로를 상대로 겨루는 격이다. 영국·캐나다·호주 같은 나라가 영어나 국제 정치에 능통한 인재가 모자라 직업 외교관 제도를 고수하는 게 아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유사시 국운을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직업 외교관들의 국제적 네트워크도 무시할 수 없다. 30년 외교관 경력이 있는 대사는 어느 나라에 가든 그 나라 외교부에 가까운 친구 몇 명은 있기 마련이다. 외교관 세계의 이런 인맥이 때로는 외교력에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낸다.
외교 선진국들이 직업 외교관만을 공관장으로 임용한다고 우리도 꼭 그대로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직업 외교관 가운데도 대사 자질이 부족한 자가 적지 않고, 직업 외교관보다 자질이 우수한 인재도 있을 것이다. 공관의 중요도와 업무 특성에 따라 직업 외교관이 아니어도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외교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될 인재가 있다면 외교부 밖에서도 두루 영입해야 한다. 그러나 특임공관장 제도의 남용을 막는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어학능력 등 최소한의 자질을 검증하는 제도와 함께, 차관급(14등급) 이상의 특임대사 임명에는 청문회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
특임공관장 제도의 남용으로 직업 외교관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으면, 외교부가 우수한 외교 인력을 확보하기 더 어려워지고, 양성해 놓은 인재들의 이직도 늘어날 것이다. 외교는 속으로 중병에 걸려도 결정적 시험대에 오를 때까지는 그 증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 분야다. 프로가 기대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고 아마추어로 대체하는 것은 외교 경쟁력 추락을 예약하는 행위다.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opini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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