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잊힌 전쟁'과 한국 외교의 딜레마

dalmasian 2026. 6. 21. 05:57

[4강의 시선] 2026.06.20.
편집자주
요동치는 국제 상황에서 민감도가 높아진 한반도 주변 4개국의 외교, 안보 전략과 우리의 현명한 대응을 점검합니다.

1차 대전보다 길어진 러·우 전쟁
평화종전 불가, 동결 분쟁 예상
韓, 국가별 외교 동시 관리해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한 소방관이 러시아의 미사일 및 드론 공습으로 시장에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AP=뉴시스

러우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국제 언론의 시선에서도 점차 멀어지는 '잊힌 전쟁'의 양상을 띠는 듯하다. 이 전쟁이 이미 제1차 세계대전의 총전쟁 기간인 1,567일을 넘어섰다는 사실은 그 역사적 무게를 새삼 실감하게 한다. 지난 2월 28일 이란 사태가 돌발하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이 분산되고 러시아에 전략적으로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것이라는 관측이 한때 우세하였다. 그러나 전황은 예상과 달리 장기 소모전의 기본 구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오히려 러시아의 진격 속도는 사실상 정체 또는 소폭 후퇴하는 양상을 보인다.

미국과 유럽의 전략적 균열 속에서도 유럽의 우크라이나 지원 의지는 더욱 강화하고 있다. 유럽집행위원회는 지난 4월 900억 유로의 2026-27년 우크라이나 지원안을 공식 승인했다. 이러한 유럽의 지원을 발판으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 능력은 강화되고 있다. 특히 FP-5(플라밍고) 3,000km급 순항미사일 자체 개발과 실전 배치는 러시아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러시아는 여전히 전쟁 수행 여력은 갖고 있지만 과도한 전쟁 예산은 러시아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지난 1분기 GDP 성장률은 -0.3%로 역성장을 기록했고, 재정적자도 GDP 대비 2.5%를 넘어섰다. 전쟁 수행을 위한 고세율, 고금리 정책의 역풍이 시작된 듯하다. 견고하던 러시아 주요 조사기관의 푸틴 대통령 지지도도 연초 대비 5% 이상 하락하였다. 텔레그램 차단과 모바일 인터넷 제한, 물가 상승 등이 주요 요인이지만 러시아 국민의 전쟁 피로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란 사태가 해결 국면에 접어들면서, 재개될 러우 종전 협상의 향배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평화적 종전 합의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이며 장기적 동결 분쟁이나 불완전 정전 행태로 귀결될 가능성이 더욱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유럽의 러시아에 대한 강경 자세가 여전히 확고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종전 합의를 끌어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은 이번 주 프랑스 에비앙레방에서 개최된 G7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러 압박 강화와 우크라이나 지원 지속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3국은 현재 전황이 점차 우크라이나에 유리해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현재의 전선을 기준으로 군사 활동을 동결하고 이후 유럽과 미국이 함께 참여하는 다자간 협상 틀을 통해 확실한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을 관철하려 한다. 포괄적 합의 없는 휴전과 유럽의 우크라이나 안보 개입을 반대하는 러시아가 이 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고강도 군사 지원이 지속되고 러시아의 전쟁 수행 여력이 점차 소진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추가 압박을 가한다면 제한적 휴전을 거쳐 사실상 동결 분쟁이 지속되는 불안정한 정전 상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현재로는 커 보인다.

만약에 평화협정 없는 동결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면, 한국의 외교적 선택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서구와의 공조 지속, 대러 관계 관리, 북러 밀착 대응이라는 서로 모순적인 외교 목표를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 무기 지원(PURL 가입 포함) 금지 원칙 유지는 문제 해결의 최소 조건이다. 이에 더해 서구와의 공조 강화가 대러 관계의 자율적 외교 공간 확대의 토대이며, 대러 관계 개선이 북러 밀착 제동의 선제 조건임을 명심해야 한다.

엄구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석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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