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용 목사의 스티그마]
2026.07.02.

다수 의사를 반영하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의심받고 있다. 냉전 종식 후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많은 국가는 자본주의 기반의 민주주의를 종교적 신념처럼 받아들였고 그것이 국가적 선(善)과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일부 지도자는 봉건시대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겉으로는 법과 절차를 유지하는 듯하면서도 자기를 비판하는 언론과 정당 및 시민단체를 공격하고 사법기관을 압박하며 반대파를 반국가세력으로 몰아붙여 민주주의 가치와 규범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들은 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잡았다는 이유로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법을 활용해 자기 권한을 넘어서는 힘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에게 민주적 선거 결과는 민주주의를 위한 책임이 아니라 권력을 정당화하는 면죄부이자 보험에 불과했다.
그런 가운데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재선을 경험하면서 깊은 자괴감에 빠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분명 민주적 선거를 통해 다수 국민의 선택을 받아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많은 미국인과 세계 시민은 그가 보여준 반민주적인 통치 방식 때문에 미국을 비롯해 세계의 민주주의 질서마저 위협을 받고 있다고 우려한다.
2016년 당시 정치 경험이 전혀 없고 TV 쇼 진행자에 불과했던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을 통해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독재자 식별법을 알려줬다. 먼저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가 민주주의의 규범을 존중하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라고 했다. 또 정치적 경쟁자를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하는지, 자신의 정치 행위를 위해 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하지는 않는지, 그리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반대 세력을 억압하려 하지 않는지도 보라고 했다. 책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나열한 기준 대부분에 해당하는 인물로 평가됐다.
이런 현상은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여러 국가도 오랜 세월 종교처럼 신뢰해 온 민주주의 제도에 같은 의문을 품고 있다. 민주주의의 다수가 오히려 가장 비민주적인 지도자를 선출하고 그 지도자는 반민주적인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역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살았던 로마 제국은 다수의 의견이 필요 없는 제국주의적 군사 통치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디오 빌라도 총독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군중의 의견을 반영하는 민주적 절차를 이용했다. 이처럼 뒤틀어진 민주적 절차는 괴물 한 사람의 범죄로 끝날 일을 다수가 함께 손에 피를 묻히게 만들고 개인의 일탈을 집단의 광기로 만들어 괴물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
책임은 민주적 절차 속에서 다수에게 분산되고 그렇게 분산된 책임은 심각한 사회 문제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에 대한 어떤 대안과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인류가 그토록 선망하던 민주주의의 모습이었던가.
교회도 세상처럼 민주주의 제도와 절차를 적극적으로 적용하길 원한다. 많은 교회가 건강한 거버넌스를 구축해 소통과 대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는 운영 체계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묻고 싶다. “다수가 모두 옳은가.” “군중이 모여 큰 소리를 내면 그것이 선이 되고 의로움이 되는가.”
사사의 시대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은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삿 21:25) 행했다. 지금 교회와 세상은 다수가 옳은 대로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 그러나 다수가 결정했고 민주적 절차를 거쳤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결정이 옳다고 말한다면 세상은 또 다른 괴물과 같은 지도자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교회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이 아니라 51% 교인의 의견을 복음과 진리로 받아들이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격동과 혼란의 시대다. 그러나 믿음의 진리는 언제나 신앙의 가장 깊은 곳에서 조용히 흐르고 있다. 분별과 성찰을 잃지 않고 낮은 자와 작은 자, 약한 자의 자리에서 진리를 붙드는 한국교회가 되길 소망해 본다.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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