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2.
공급 부족·과잉에 속도조절 반복
SK하닉 “시장 둔화 시 재무부담”
적기 생산 능력 확보위해 투자 필요

삼성과 SK가 서남(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해 총 4755조원 규모 초대형 투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실제 집행 속도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업황과 정부의 인프라 지원 진척도에 따라 유동적일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두 기업은 시장 상황에 맞춰 투자 완급 조절을 하며 메모리 산업의 ‘겨울과 열풍’에 대응해 왔다. 다만 AI 시대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핵심 분야에 대한 선제적인 투자 기조는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메모리 업황은 지난 수십년간 여러 차례 공급 부족과 공급 과잉이 반복되는 사이클을 겪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7년부터 두 차례 반복된 ‘D램 치킨게임’이다. 대만 업체들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증설 경쟁이 벌어지면서 D램 가격이 급락했고, SK하이닉스는 대규모 감산과 고강도 자구책을 시행하며 위기를 버텨냈다. 삼성전자는 오히려 이때 생산량 확대를 선택하며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렸다. 이후 원가 이하 출혈경쟁을 견디지 못한 해외 업체들이 파산하면서 메모리 업계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빅3’ 체제로 재편됐다.
2018년 말에는 서버용 메모리 호황이 꺾이며 D램·낸드 가격이 동반 폭락했다. SK하이닉스는 2019년 설비투자를 약 40% 축소하며 투자 속도를 늦췄다. 2022년 메모리 한파 때 SK하이닉스는 2023년 설비투자를 50% 이상 줄이기도 했다.
삼성전자 역시 반도체 부문 적자가 확대되자 2023년에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는 원칙을 깨고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업황 침체가 이어지자 2024년 평택캠퍼스 P5 공사 속도를 늦추며 약 2년간 공사를 중단했다가 지난해 말 재개했다.
메모리 업계의 이 같은 투자 유연성은 지난 30일 SK하이닉스의 정정공시에서도 드러난다. 회사는 서남권 반도체 팹 신설 등 중장기 투자 계획을 포함해 미국주식예탁증서(ADR) 발행을 위한 증권신고서를 정정해 제출했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산업이 공급과 수요 변화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큰 산업이라며 “생산시설이 확충되는 시점에 글로벌 수요가 둔화될 경우 생산시설 투자로 인해 재무건전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중장기 투자의 구체적인 추진 일정과 규모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수요와 주요 고객사 투자 계획, 재무 여건, 정부·지방자치단체와의 인허가 및 인프라 구축 협의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AI 메모리 수요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거라는 데 공감하면서도 장기 업황 전망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마이크론을 포함해 미국과 중국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팹을 증설하고 있어 2028년즈음 메모리 공급 물량이 대폭 늘어나는데, 이 시점 한국의 기술 초격차와 전반적인 시장 상황을 예측하기 쉽지 않은 탓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주요 고객사와 장기 공급계약이 확대되고 있어 투자 예측 가능성도 높아졌고, 적기에 생산능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어 투자 자체를 크게 늦추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HBM 시장 수요는 견조하겠지만 범용 D램과 낸드 등은 2028년 이후 가격 하락과 다운사이클이 전망된다”며 “업황과 인프라 구축 상황에 따라 서남권 투자 일정이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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