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저격] 2026.07.02.
청년 탈모 급여화 둘러싼 4년반 논쟁
李대통령 “탈모, 미용 아닌 생존 문제”
희소질환 환자들 “잘못된 우선순위”
건보 적자에 최대 年 7000억 추가 필요
일단 중단, 다음 총선 前 또 꺼낼 수도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분수대 인근에서 탈모 치료제 급여화 숙의 과정 추진 관련 환자단체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장경식 기자
“이재명을 뽑는다고요? 이재명은 심는 겁니다. 앞으로, 제대로. 심는다! 이재명! 나의 머리를 위해.”
2022년 1월 이재명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이 14초 분량 유튜브 영상에 등장해 이렇게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모인 젊은 층 사이에서 화제가 됐고, ‘탈모 치료 건강보험 적용 확대’는 그의 대표 공약 중 하나가 됐다. 이후 두 번의 대선을 거쳐 4년 6개월 간 사회적 논쟁을 불러온 탈모 치료 건보 적용이 정부의 본격 추진을 앞두고 최근 거센 반대 여론에 직면해 제동이 걸렸다.
탈모 치료 급여화는 이 대통령이 작년 12월 “탈모는 이제 미용이 아닌 생존 문제”라며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추진을 검토하라고 주문했던 것이다. 이어 올해 2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도 공론화를 지시할 정도로 ‘대통령 관심 사안’이었다. 이 대통령은 2020년 경기지사 재임 시절에도 “젊은이들이 코로나 회복 후 탈모 등 후유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청년 탈모’를 언급한 적이 있다.
작년만 해도 건보 재정 부담을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던 정은경 장관은 태도를 바꿔 지난달 11일 탈모 치료 급여화를 하반기 중점 추진 과제로 꼽았다. 7월 4일 국민 참여형 토론회(‘모두의 토론회’)에서 숙의하는 모양새를 갖춘 뒤 강행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달 29일 “탈모 급여 확대에 관한 공론화 논의를 중단한다”며 예정됐던 토론회를 돌연 취소했다. 탈모 건보 적용을 둘러싼 부정적 여론이 최근 더욱 높아지면서 추진 강행 시 따를 정치적 부담도 덩달아 커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결정적으로 ‘우선순위’와 ‘건보 재정’을 무시한 정책이란 비판을 넘지 못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2년 대선 당시 유튜브를 통해 탈모 공약 관련 추가 제안을 받는다고 알리는 장면. /유튜브 ‘이재명 TV’
“우선순위 잘못됐다” 환자들 호소
현재도 원형 탈모 같은 일부 질환성 탈모 치료에는 건보가 적용된다. 이에 정부는 유전적 요인인 ‘안드로겐성 탈모(M자형 탈모)’까지 범위를 넓히되 취업과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20~34세 청년층을 우선 적용 대상으로 검토해 왔다. 최근 몇 년 새 여권(與圈)의 ‘약한 고리’로 꼽혀온 청년 남성을 타깃으로 삼은 만큼 곧바로 ‘모(毛)퓰리즘’이란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중증·희소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 의료계가 한목소리로 “의료의 우선순위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아들(14)이 양쪽 다리 길이가 다르게 자라는 선천성 희소 질환 ‘KT(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으로 투병 중인 서이슬(42)씨도 그중 한 명이다. 서씨는 “치료비 걱정에 ‘쓰리잡’을 뛰는 부모들이 있고, 아픈 몸으로 태어난 것을 미안해하는 어린 환자들이 있다”며 “건강보험은 사람의 삶을 보장하는 제도여야 한다”고 했다. 예컨대 희소 질환인 폐동맥고혈압에 쓰이는 신약 ‘소타터셉트(제품명: 윈레브에어)’는 3개월 치료에 약 5000만원이 들고, 악성 폐암인 소세포폐암 치료제 ‘임델트라’는 한 달 치료비가 약 5000만원에 달한다. 모두 건보 적용이 안 되기 때문이다. 국내 소아 희소 질환자는 4만5000명에 육박하지만, 최근 5년간 건보 급여 대상에 새로 포함된 소아 전용 희소 질환 치료제는 소아 구루병 치료제인 ‘크리스비타주’ 하나뿐이다. 이 대통령은 작년 12월 탈모 치료 급여화 검토를 지시하며 “젊은 사람들이 (건강)보험료만 내고 혜택을 못 받아 억울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중증·희소 질환 환자들은 “우선순위는 청년 탈모가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질환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환자 단체인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지난달 16일 “수많은 중증·희소 난치성 질환 환자와 말기 암 환자들은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하고, 돈이 없어 죽음을 맞이한다”며 “탈모 급여 확대는 건강보험의 근간인 ‘의학적 필수성’과 ‘급여 우선순위’를 정면으로 뒤흔드는 정책”이라고 했다.


건보 적자인데 탈모에 연 최대 7000억?
고갈될 우려가 큰 건보 재정의 현실을 무시했다는 비판도 거셌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건보 재정은 올해 적자로 전환된다. 올해 기준 약 26조원 수준인 누적 준비금 역시 2029년에는 소진될 전망이다. 준비금이 소진된다는 얘기는 쉽게 말해 건보 ‘비상 재원’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보험료율 인상이나 국고 지원 확대, 급여 목록 조정 같은 재정 건전화 대책이 뒤따르지 않으면 건보 제도 근간이 흔들리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탈모 치료 급여화에 소요될 건보 재정 규모를 두고 약 1800억원부터 최대 7000억원에 이를 수 있다는 다양한 추산이 나오고 있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의사가 처방한 탈모 치료제 시장 규모(공급액 기준)는 약 2568억원이었다. 본인 부담률 30%(건보 부담 70%)를 가정하면 건보 부담분은 약 1800억원이다.
정재훈 고려대 의대 교수는 안드로겐성 탈모 치료제 급여화 시 건보 부담이 연간 1150억원 수준에서 최대 7050억원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연간 치료 인원을 100만명으로 가정하면 1500억원 아래로 추산되지만, 잠재적으로 치료 대기 중인 수요자까지 포함하면 최대 7050억원(500만명 가정)의 건보 재정이 소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청년층 탈모 치료를 지원하겠다면 건보 재정이 아니라 별도의 국고 재정으로 추진하라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는 일단 ‘공론화 중단’으로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2년도 채 안 남은 다음 총선 전 국가 재정을 투입하는 ‘청년 지원책’ 카드를 다시 꺼내 들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탈모 지원이 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안준용 기자 jahn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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