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2026.07.02.

지난 8일 열린 나고야 우먼스 마라톤 대회에서 풀코스 주자들이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All Sports Community
지난 3월 42.195㎞ 마라톤 완주 후 많은 사람이 삶의 변화를 물어왔다. “풀코스를 달렸으니 못 해낼 일이 없겠다”고 하는 이도 있었고, “체력이 진짜 좋아지는지” “몸무게는 얼마나 빠졌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먼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마라톤 직후 1.5㎏ 정도 줄었던 몸무게는 사흘 만에 원래 체중으로 돌아왔다. 요즘엔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치트키가 있다지만, 기본적으로 몸무게란 먹고 쓰는 양의 덧셈 뺄셈식이 아니던가. 에너지를 많이 쓰는 만큼, 채우는 양도 많아졌다. 새벽에 10㎞ 달리기를 하고 오면 입맛이 너무 좋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먹지 않던 아침을 20년 만에 처음으로 꾸준히 챙겨 먹게 됐다. 이전엔 다 비워 내지 못하던 공깃밥도 한 그릇 뚝딱이고, 라면 한 가닥도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 오히려 몸무게가 더 늘지 않는 것에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체력은 달리기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인데, 어느 날 한 모임에서 이 얘기를 했더니 ‘플라시보 효과 아니냐’고 누가 반문했다. 검증되지 않는 것에 대해선 말을 아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풀코스를 해냈다고 ‘이 정도쯤이야’ 하고 다른 일을 쉽게 해내는 경우도 드물다.
그렇다면 나는 왜 달리는가. 한동안 사람들이 ‘달리기를 왜 하느냐’고 물으면, ‘운동의 정직함이 좋아서’라고 답했다. 1㎞도 못 뛰던 내가, 그저 매일 나가서 뛰었을 뿐인데, 어느 날은 3㎞, 그다음엔 10㎞, 그리고 하프 마라톤에 이어 풀코스까지 완주할 수 있게 되었다. 살면서 내가 노력한 결과가 고스란히 성과로 이어지는 일이 얼마나 되던가. 그런데 달리기는 사람을 배신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풀코스를 완주하고 나니 달라졌다. 달리기가 시들해져 버린 것이다. 달리기는 여전히 정직하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혼자 할 수 있으며, 최고의 명상인데도 더는 달리고 싶지 않아졌다. 결국 나는 풀코스 완주라는 목표만을 위해 달린 것일까? ‘정직함’ 속 어딘가에 실은 목표 지향적인 야심이 함께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일까?
그 좋다는 한국의 봄 달리기를 다 놓치고, 오전 6시에도 기온이 20도를 넘는 여름의 한복판에 들어서야 나는 다시 달리고 있다. 딱 30분만 더 자고 싶은 마음을 이기고 운동화 끈을 매고 있는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왜 다시 달리는가.
일본 작가 하리카이 유카가 쓴 책 ‘제3의 시간’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국가 경쟁력 1위이면서 행복 지수 역시 세계 2위인 덴마크 사람들이 성공과 행복을 동시에 누리는 비결엔 ‘제3의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업무도 집안일도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다. 별것 아닌 줄 알았던 이 시간이 삶의 완충 지대 역할을 해, 더 열심히 일하고 가정에도 최선을 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어쩌면 달리기가 내 삶의 완충 지대이자 제3의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하루 중 유일하게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내, 직장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 오늘 하루 내가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 말이다.
남정미 기자 nj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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