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6.
아르헨티나에 2대3 석패
카보베르데 시드니 로페스 카브랄(13번)이 4일 북중미 월드컵 32강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연장 전반 2-2를 만드는 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인구 52만명의 서아프리카 섬나라로 처음 월드컵


카보베르데 시드니 로페스 카브랄(13번)이 4일 북중미 월드컵 32강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연장 전반 2-2를 만드는 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인구 52만명의 서아프리카 섬나라로 처음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카보베르데는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에 2대3으로 졌지만, 시종일관 투지 넘치는 경기로 전 세계 축구 팬들의 환호를 자아냈다. /로이터 연합뉴스
“FIFA(국제축구연맹)는 카보베르데를 위해 특별상이라도 만들어서 줘야 합니다. 경기를 보며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는 기분이었다고요.”
프랑스 축구의 전설 티에리 앙리가 호들갑을 떨 만큼 카보베르데의 도전은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기적 같은 승리를 따내진 못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들의 투지는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지난 4일(한국 시각) 북중미 월드컵 32강전에서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를 맞아 두 차례나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끈질긴 저력을 보여준 끝에 2대3으로 석패한 아프리카의 소국 카보베르데를 향해 전 세계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인구 52만의 서아프리카 섬나라 카보베르데는 이번 대회가 첫 월드컵 본선 무대였다. 자원과 인프라가 부족하고 일자리도 넉넉지 않아 해외 이주민이 많은 이 나라는 유럽 등지에서 성장한 이중 국적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며 본선행의 토대를 마련했다. FIFA 랭킹 64위 약체로 조별리그에서 고전이 예상됐지만, 강호 스페인·우루과이와 비기는 등 3무를 거두며 조 2위로 토너먼트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32강 상대는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 전반 29분 메시가 자신의 월드컵 통산 20번째 골이자 이번 대회 7번째 득점을 뽑아낼 때만 해도 아르헨티나의 낙승이 예상됐다. 하지만 카보베르데도 후반 14분 두르아 두아르트의 동점골로 맞섰다. 연장에서도 아르헨티나가 리산드로 마르티네스의 골로 리드를 잡자 카보베르데는 이번 대회 최고의 골로 꼽힐 만한 시드니 로페스 카브랄의 그림 같은 중거리 슛으로 다시 균형을 맞췄다. 아르헨티나는 연장 후반 6분 상대 자책골로 다시 앞서간 끝에 가까스로 승리를 거뒀다.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10번)가 카보베르데 골키퍼 보지냐 앞에서 슈팅하고 있다. 이 슈팅은 보지냐의 선방에 막혔다. /로이터 연합뉴스
경기가 끝난 뒤 메시는 카보베르데 수문장 보지냐에게 다가가 포옹하며 격려했다.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2500만명을 넘어서는 등 이번 대회 최고의 깜짝 스타로 떠오른 보지냐는 “월드컵에서 메시와 맞붙고 싶다는 꿈을 이뤘다”며 “메시가 날 안아주면서 ‘당신은 정말 훌륭한 골키퍼다. 국민들이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그는 이날 세 골을 내줬지만, 메시의 결정적인 슈팅을 포함해 8개의 선방을 펼치며 끝까지 팀을 지탱했다. 보지냐가 이번 대회에서 기록한 18개의 세이브는 40대 골키퍼의 단일 월드컵 최다 선방 3위에 해당한다. 부비스타 카보베르데 감독은 “우리는 작은 나라지만 세계 최고와 맞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는 나라의 위상을 높였고, 우리의 정체성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고 말했다.
500년 가까이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노예무역의 중계 기지라는 아픈 역사를 지닌 카보베르데에서는 이날 패배에도 환호가 울려 퍼졌다. AFP통신은 수도 프라이아에서 시민들이 거리 응원과 자동차 퍼레이드를 벌였고, 아르헨티나에 패한 뒤에도 새벽까지 부부젤라 소리와 음악이 끊이지 않는 축제가 이어졌다고 전했다. 디 애슬레틱은 “카보베르데 국민들은 1975년 독립 이후 지금이 역사상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입을 모은다”고 전했다.
카보베르데가 써 내려간 ‘월드컵 동화’는 세계 축구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 시대를 풍미한 스트라이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스웨덴)는 “이 경기는 역사에 남을 아름다운 이야기다. 사람들은 때로 월드컵 우승보다 이런 이야기를 더 오래 기억한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국가대표 출신 제임스 맥파든은 BBC를 통해 “마치 영화 ‘록키’ 같았다. 카보베르데는 졌지만 이겼다”며 “이번 월드컵의 진정한 우승팀”이라고 극찬했다. 적장인 리오넬 스칼로니 아르헨티나 감독도 “쉬운 상대는 없다고 늘 말하지만, 오늘 카보베르데는 훌륭한 팀이라는 걸 스스로 증명했다”고 했다.
배준용 기자 junsam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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