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Column

읽는 여성들이 세상을 바꾼다

dalmasian 2026. 7. 18. 07:32

[장은수의 책과 미래] 2026.07.17.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거품이 이는 손이 내 꿀 같은 입을 덮었다./ 나의 가장 아름다운 것이 진흙으로 변했다."

처음에 폭력이 있고, 고통이 있었다. 시는 한 여성이 겪은 잔혹한 사건을 고발하고, 정의를 호소한다. 제목은 '이난나 찬가', 약 4300년 전에 수메르에서 쓰였다. 시인은 여사제인 엔헤두안나, 인류 최초로 시에 자기 이름을 기록한 저작권자였다. "나, 엔헤두안나가 나의 여신에게 간구하고, 내가 눈물을 쏟고, 내가 노래한다."

엔헤두안나는 호메로스보다 1500년이나 앞서서 시를 썼다. 두 시인의 시는 아주 다르다. 호메로스는 남성 지배 공동체의 입술이었다. 그는 전쟁에 나선 남성 영웅의 위업을 전하려 시를 썼다. 그의 작품에서 여성들은 희생당할 뿐, 거의 아무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엔헤두안나는 달랐다. 그녀의 시는 눈물의 언어로 되어 있다. 훼손된 아름다움, 더럽혀진 명예, "가시덤불 속을 걷는" 자신을 위해, 고통받는 약자를 위해 노래했다. 정의를 되돌려서 자신이 고통의 "밤에 읊는 노래"를 영광의 "낮에 가객이 노래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최현미의 '읽는 여성의 역사'를 읽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여성의 읽기와 쓰기는 처음부터 남성과 달랐다. 문자가 발명된 이래 책은 오랫동안 남성 지배 사회의 핵심 도구였다. 남성들은 여성의 독서를 수시로 조롱하고 금지했다. 책에는 우주의 질서, 자연의 규칙, 사회의 지배 원리 등이 담겼기에 책 읽는 자가 곧 세상을 알고 다스릴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읽기와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든 문자를 익혀 노동으로 얻은 지식을 후대로 전하고, 일상 감정을 승화해 공동체의 노래로 바꾸어갔다. 그들은 수도원에 자신을 가두면서까지 배우려 애썼고, 남장하고 대학에 들어가 학문을 익혔고, 비녀를 팔아 소설을 빌려 읽었고, 모여서 함께 읽는 독서회를 조직했다.

문학은 여성이 처음 발명하고, 지금껏 수호해온 영역이었다. 성폭행범을 처단하고 반란군을 몰아내준 여신을 찬미하는 '이난나 찬가'도, 공동체 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는 법을 알려준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도, 금지된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노래한 최초의 서정시 '아프로디테 찬가'도 모두 여성이 처음 썼다. 문학을 쓰고 읽으며 여성들은 고통의 밤 속에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열어갔고, 자기 일상을 기록해 인생의 주인공으로 서는 법을 발명했다. 읽는 여성의 역사를 살핀다는 것은 결국 폭압적 현실 속에서 약자들의 언어로 더 나은 삶을 이룩해온 계몽의 등대들, 자유의 꽃들을 들여다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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